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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꿈꾸는 자유도 없는 사회

지난 8월 13일 서울지방법원은 작품 <모내기>를 그린 이유로 10년 동안 재판으로 시달려 온 화가 신학철 씨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이 1, 2심의 무죄 선고를 뒤집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환송시킨 것이 “문화대통령”을 자임한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이 채 안된 3월 13일의 일이었는데, 이제 지방법원이 “이적 표현물”을 제작한 혐의로 화가에게 징역 10월에 선고 유예를 내린 것이다.

변호사가 위헌을 제청하고 국제재판소에 제소한다고 하니 사건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나 이번 재판으로 우리사회의 인권, 특히 표현의 자유의 실상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판결에서 쟁점이 된 것은 그림에 대한 해석이었다. 재판부는 그림 상단이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하단이 남한을 지옥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본 검찰측 증인이자 공교롭게도 전향간첩 출신인 홍종수씨의 해석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림을 본 사람이라면 이 그림이 “상하” 구도보다는 “안팎” 구도로 되어 있다는 미술평론가 성완경씨의 해석을 수용할 것이다. 그림 속의 농부가 그림 “안쪽”에 묘사된 지상낙원을 오염시킬 핵무기, 레이건 미국 대통령, 김일성 등을 포함한 쓰레기 더미를 쓰레질로 “바깥”으로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안팎”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믿지만 이번 판결에는 해석 이상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실 예술 작품을 해석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예술적 표현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나, 그것을 굳이 현실에 대한 주장으로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논문이나 사설과는 달리 예술작품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꿈과도 같은 것이다. 그림의 상단에 있든 안쪽에 있든 신학철 씨의 “지상낙원”은 주장으로 제출된 것이 아니라 꿈처럼 표현되어 있다고 해야 한다. 화가가 작품을 통해 조국통일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 말을 “주장”이 아닌 “꿈”의 형식을 빌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그렇다면 작가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내린 셈이 된다.

“국민의 정부”는 최근 들어 “지식기반사회”를 건설한다는 포부를 부쩍 자주 피력하고 있다. 최근에도 김대중 대통령은 서기 2000년을 100일 앞두고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면서까지 지식기반사회 건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신 화백에 대한 유죄 판결은 “문화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지식기반사회를 건설하려면 사회적 창조성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고 어떻게 창조성을 높일 수 있겠는가. 꿈꾸는 자유가 억압된 사회, 그런 사회는 창조성 일반이 위축된 사회일 뿐이다. 정부는 지식기반사회를 건설하려면 사회적 창조성을 높이는 표현의 자유를 먼저 보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