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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진상규명하기엔 못미더운 과거사법 시행령

국가폭력 피해사건 16건, 과거사위에 진상규명 공동신청

10일 '해방이후 국가폭력 피해자 모임'(아래 피해자 모임)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아래 과거사법)의 한계와 시행에 있어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여운형 암살 사건, 반민특위 습격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법살인 사건 등 국가폭력피해사건 총 16건에 대해 공동으로 진실규명신청을 했다.

피해자 모임은 "이번 공동신청을 통해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충분한 규모와 인력을 무시한 채 부당하게 만들어진 과거사법 시행령(아래 시행령)의 문제점을 알리고자 한다"라고 공동신청의 취지를 밝혔다. 과거사법은 과거 위법한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사법살인, 조작간첩 등 인권침해의 행위를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지난해 5월 3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어 12월 1일에는 시행령이 공포되고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아래 과거사위, 위원장 송기인)'가 출범한 바 있다.

10일 과거사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 10일 과거사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과거사법은 법 제정 단계에서부터 '진실 규명 범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도 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한다'(제2조 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어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진실 규명의 범위를 축소시켰다고 비판받았다. 또한 주요기관들이 자료제출과 동행명령을 거부해도 과태료에 처하는 것밖에는 대응 방법이 없어서 예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처럼 조사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시민사회단체는 과거사법을 '누더기 과거사법'이라 칭하면서 과거사법의 개정을 위해 노숙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동시에 잘못된 과거사법이라고할지라도 과거사법의 범위 내에서 위원회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가동될 수 있도록 하는 시행령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막상 시행령이 공포되고 나니 그 또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진상 규명 이전에 시행령 개정 투쟁 먼저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 12월 6일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아래 범국민위)'에서 주최한 '과거사위 구성과 시행령에 관한 공청회'에서 김희수 변호사는 '현행시행령의 문제점과 대안' 발제를 통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의 경우 확인된 내용만 해도 820건인데 120명의 위원회 정원으로는 진상규명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애초에 범국민위에서 제시한 인원은 최소 430명이었다. 그 밖에도 과거사법 제30조 제3항의 '위원회는 참고인이나 감정인의 보호, 관련된 자료의 확보 또는 인멸의 방지에 필요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는 규정에 대해 시행령 제11조는 정보제공자 보호 등으로만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은 위원회가 관련된 자료의 확보 또는 인멸의 방지를 위해 국가기록원 등 관계기관에게 그 대책 마련을 요청하고, 위원회의 요청을 받은 기관이 이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 시행령 제7조 제2항은 '조사대상자 및 참고인에 대한 진술청취는 법 제23조 제3항의 규정에 의한 실지조사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원회 사무실에서 하여야 한다. 다만 위원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에는 제3의 장소에서 이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에 의하면 실제 조사를 거의 전국적인 단위로 각 학살지역에서 진행 할 수밖에 없는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서도 위원회의 의결로서만 위원회가 아닌 다른 제3의 장소에서 조사를 할 수 있다. 위원회 소집 통고에서부터 결정까지 최소 1주일 정도 걸린다고 보면 이 조항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과거사법 제33조 제1항은 '위원회의 업무 수행을 위하여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 단체 등 관계기관은 적극 협조하고 진실규명에 필요한 편의 제공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사 권한이 지극히 미약한 위원회가 이런 미약한 권한을 그나마 최대한 활용 할 수 있으려면 위 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시행령에는 관련되는 규정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시행령에는 위원회 외에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와 같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과거청산 관련 국가기관과의 협조에 있어서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한다.

공동신청에 앞서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모임 측은 "얼마나 많은 국가폭력사건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지 드러내고, 현재 과거사 위원회의 규모로는 어떠한 의혹사건도 그 진실을 규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내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동생으로서 신청자로 참여한 조용준 씨는 "현재 과거사위원회의 규모와 인력으로는 수많은 의혹사건의 진상규명은 허망한 것"이라면서 "과거사법의 한계를 드러내기 위해 모든 피해자들이 힘을 합쳐 2차, 3차 공동 신청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동신청 이후에는 송기인 과거사위 위원장과의 면담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