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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우경화가 걱정이라고?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한 이용석 교사 징계에 반대하며

지난 9월 3일, 경기도교육청은 부천 상동고등학교의 이용석 교사에게 정직 3개월이라는 징계처분을 내렸다. 정직은 해임 다음으로 무거운 징계이다. 경기도교육청의 징계의결통보서 내용에 따르면, 이용석 교사가 수업시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이 학생들에게 국가관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국가교육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초래할 수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교육공무원의 품위유지의 의무(국가공무원법 63조)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또한 군대 문화와 이순신 장군에 대한 평가를 통해 폭력성에 대한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수업내용에 대해 “학생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가치관을 갖도록 할 소지가 있으며”, 개인적인 편견을 학생들에게 전파한 것으로 판단되어 교육기본법 3조의 학생 학습권 침해, 6조의 교육 중립성 훼손, 국가공무원법 56조 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의미하는 것

국가주의는 전체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우익이데올로기이다.<출처; www.theory.org>

▲ 국가주의는 전체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우익이데올로기이다.<출처; www.theory.org>

얼마 전 한 시사주간지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의 유래를 찾는 기사가 실렸다. 대한민국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우고 있는 “우리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문구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편향적, 일방적으로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강요하면서 국가주의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에서도 선언된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국가주의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이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국가주의와 군부독재 시절 국기 하강시간이 되면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길가에 멈춰서있던 기이한 퍼포먼스를 돌이켜볼 때, 이번의 이 교사 징계 건은 과거 군부독재의 망령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까지 한다. 사실 우리에게 국가주의란 결코 낯선 대상은 아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 뿐 아니라 애국가 4절 모두 외우기, 국민교육헌장 외우기 등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매일 가슴에 새긴다. 유신때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실상 ‘헌법’이라는 허울을 유지하기 위한 장식이었을 뿐이다. 국가와 국가원수에 대해 함부로 말을 꺼냈다가는 간첩으로 몰리거나 경찰에 끌려가기 일쑤였다. 어떠한 집단보다도 가장 우선적인 권리를 부여받으며 국가의 존재 자체가 목적이다보니 개인의 생각과 자유는 당연히도 묵살 될 수밖에 없었다. 나치즘이나 파시즘, 군국주의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맹목적인 국가/민족주의가 얼마나 끔찍한 파멸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어떠한 조건이나 단서도 없이 태극기는 ‘자랑스런 것’이며 나보다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온 몸을 바칠 것을 약속하라는 것이다. 그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의 조건은 무엇이고 목표는 무엇인지 따지는 것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모욕하는 것이다. 경례를 하는 이들은 조용히 한 손을 가슴에 올리고 맹세를 외우면 된다.

국가주의에 대한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사회

일본의 국가주의보다 더 경계해야할 것은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우경화이다.<출처; www.geocities.jp>

▲ 일본의 국가주의보다 더 경계해야할 것은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우경화이다.<출처; www.geocities.jp>

서주석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총리와는 한일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전범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또 다른 정치적 사안으로 엄중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일련의 사건 들이 일본 내에서의 군국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의 부활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들은 이제 생소한 이야기도 아니다. 일본의 한 여교사가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일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일제히 일본의 우경화 경향에 대해 우려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의 피해자라는 이유로, 일본에서와 똑같이 그릇된 국가주의를 강요하는 교육이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다들 무감각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주의 강요 교육을 정당화하는 경기도교육청

경기도교육청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얼마나 중요한 교육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례는 비단 이번 이용석 교사 징계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4년 의정부의 모 고등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학생을 입학거부조치 한 방침에 대해 경기도 교육청은 학교 측의 조처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경기도 교육청은 학생이 ‘학교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앞서 설명한 정부의 방침과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기도교육청은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주의 강화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이용석 교사의 징계 사유의 근거로 든 교육공무원 법에는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게 함’이라는 교육이념이 실려 있다. ‘국기, 국가, 국가원수에 대한 예절교육’으로 살아있는 국기에 대한 경례가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과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이번 징계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 조선일보의 사설 보도가 ‘전교조 교사 편향교육’ 등의 내용으로 이용석 교사의 민주적 교육방식을 반공/냉전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비화시킨 내용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봤을 때, 경기도 교육청이 가진 교육관은 과연 얼마나 ‘정치적 중립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적 기본권까지도 부정한 징계 조치

민중들의 단결된 힘으로 인종주의, 전체주의와 더불어 국가주의를 깨자는 내용의 그림<출처; www.united.non-profit.nl>

▲ 민중들의 단결된 힘으로 인종주의, 전체주의와 더불어 국가주의를 깨자는 내용의 그림<출처; www.united.non-profit.nl>

미국에서는 이미 1943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할 수 있는 것도 헌법적 기본권이라는 판례가 확립된 바 있다. 미 연방대법원은 '월터 바네트 대 웨스트 버지니아 주교육위원회' 사건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학생들을 학교에서 내쫓을 수 있도록 한 웨스트 버지니아 국기경례법이 무효라고 선언했다. 잭슨 판사는 당시 판결문에서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어떤 관리도 정치, 조국애, 종교 또는 기타 의견이 갈리는 문제에 있어서 정통성을 부여할 수 없으며, 시민들에게 그들이 품고 있는 신념을 말이나 행동으로 고백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국가안보의 특수성의 이유 때문에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조차도, 병역의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천부인권인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후퇴시킬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2004년 병역거부자에 대한 첫 무죄판결이 선고된 바 있다. 하물며 ‘올바른 국가관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강제적으로 국가주의를 내면화하는 수단인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와 성실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이라는 이유로 한 교사의 징계사유가 된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의 진정한 국가관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덧붙임

레이 님은 평화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