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구금시설 인권문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감시와 통제장치 없이 방치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일본 감옥법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한 행형법은 인권처우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기능을 애당초 갖고 있지 않다. 현행 행형법은 그 동안 수차례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50여년 전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법규정이 수용자의 인권침해가 문제되는 사항들을 소장의 재량에 위임하고 있어 현행 행형법은 기본권제한에 관한 법률유보의 원칙 및 과잉금지 원칙 등 인권보장을 위한 요청을 담아내기에는 그 ‘그릇’이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인권에 둔감한 행형법에 대응하여 최근 5-6년 동안 우리 사회는 구금시설 수용자의 인권침해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인권침해의 이슈별로는 부분적으로 상당한 진전을 이루어 왔다. 이 과정에서는 인권단체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말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권고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 6년여 동안 구금시설 수용자의 인권문제에 관하여 수많은 결정을 통해 행형의 밀행성을 극복하고 수용자인권보장의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주도적으로 기여해왔다. 계구 중 사슬을 폐지라는 권고, 집필사전허가제의 폐지권고, 금치의 포괄적 개선을 위한 권고, 미결수용자의 종교의 자유 보장 권고, 정보결정권의 보호권고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일부는 행형실무에서 당장 반영된 것도 있지만,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의 상당부분은 행형법의 개정이 필요한 사항들이기 때문에 행형법의 전면개정은 이제 더 이상 미루기 어렵게 된 상황이다.
아울러 금치 집행 중 운동과 집필을 금지한 행형법시행령 제145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등 수용자의 인권에 대한 사법부의 적극적인 판단도 행형법 전면개정을 추동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의 행형법개정안 - 과정과 문제점
법무부는 내부적으로 2004년경부터 행형법개정작업을 진행하여 2005년 8월 행형법개정시안을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인권단체 및 학계에서는 법무부의 행형법개정안이 수용자 인권에 관한 전향적인 개선안을 담을 것을 촉구하였지만 정작 공개된 개정시안은 현재의 행형법보다 진전된 내용을 거의 담고 있지 않았다. 인권단체들의 연대로 구성된 행형개혁네트워크는 2005년 10월 법무부의 행형법개정시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장문의 의견서를 법무부에 전달하고 행형법개정을 통해 구금시설 개혁과 수용자 인권의 획기적인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였다. 하지만 법무부가 2006년 4월 국회에 제출한「행형법전부개정법률안」은 최초의 개정시안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의 행형법개정안을 들여다보면, “수용자의 인권신장”을 도모한다는 제안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실제로는 보안조치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정부가 제출한 행형법개정안의 근본적인 문제는 현재의 구금시설 실무관행에 대하여 실질적인 개혁을 도모하는 내용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계구(보호장비)나 징벌의 영역에서는 현행법의 수준보다 더욱 보안중심의 행형을 강화하려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수용자의 권리에 관한 부분도 그동안 행형에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뿐이지 실무에서 허용되는 수준을 행형법에 근거규정을 둔 정도에서 크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제출 행형법개정안의 특징은 한마디로 “보안행형의 강화”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이다.
인권의 관점에서 의미있는 개정이라고 거론할 만한 사항은 기껏해야 계구의 종류에서 사슬을 폐지한 것, 귀휴의 요건을 다소 완화하고 귀휴일수는 1년에 20일 이내로 확대한 것, 서신검열의 원칙적 폐지를 규정한 점 정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경비등급별 시설구분, CCTV 설치근거 마련, 수갑·포승·안면보호구 외에 구속복 등의 다양한 계구의 도입, 보호실과 진정실제도의 도입, 다양한 징벌유형의 도입 등은 수용자 인권의 측면에서 보면 개악의 소지가 다분하다.
정부의 행형법개정안에 대한 대응
정부안에 상당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전개되고 있는 행형법 전면개정의 국면은 흔치 않은 기회이기에, 인권운동 진영에서는 정부안의 법사위심의를 앞두고 대안마련에 착수하였으며,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노회찬 의원(민주노동당)이 대표발의한 「행형법 전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6902호, 2007.6.19. 발의)이다. 노회찬의원안은 정부안의 개악요소에 대응하는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용자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공간확보규정이라든가, 개인정보의 보호문제, 수형자의 처우참여권, 작업임금제의 도입, 금치의 제한, 징벌재심제도의 도입, 행형감시기구로서 시민위원회의 설립 등 보다 근본적인 행형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사항들은 정부안에서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정부안의 국회통과가 예상되면서 인권운동진영에서는 다소 급하게 대안을 마련하게 되었는데,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이 2006년 4월이기에 그 사이 1년여의 기간 동안 인권운동 진영에서 행형법 개정에 대하여 충실한 논의와 사회적 공론화과정을 거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인권단체의 대안이라 말할 수 있는 노회찬의원안이 발의되면서 국회의 행형법개정안 심의는 예상보다 늦춰지게 되었으며, 17대 국회는 이제 이번 정기국회와 내년 2월의 임시국회 정도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에 있다. 17대 국회에서 행형법개정안이 통과될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행형법의 전면적인 개정은 매우 시급한 문제이고 지금이 적기이기는 하지만, 정부안은 개악의 소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인권운동진영에서는 노회찬의원안의 통과에 힘을 싣기 보다는 일단 정부의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는 것을 차단하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재까지의 상황이다. 이제는 이와 같은 소극적 대응을 넘어 노회찬의원안이 국회 심의과정에서 주법안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을 필요성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17개 국회의 남은 회기가 얼마 없지만 말이다.
구금시설개혁과제의 지형에 대하여
법 통과도 중요하지만, 구금시설 인권의 개혁과제에 대한 인권운동진영의 인식공유도 매우 중요하다. 구금시설 인권문제의 지형과 쟁점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개정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 통과를 담보할 만한 추진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며, 설사 인권운동진영이 제안한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그 성과를 지속적으로 담보하고 여타의 성과와 결합할 수 있는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4~5년간의 경험을 더듬어보면, 굵직하고 중요한 인권현안에 비하여 행형개혁 내지 구금시설 수용자 인권문제는 인권운동 진영에서 주력 논제는 아니었던 듯싶다. 사형제폐지라든가 보호감호제폐지, 국가보안법폐지 등의 이슈는 인권운동진영의 적극적 문제제기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법안제출로 이어졌지만, 행형인권에 관한 문제제기는 늘 있어 왔으면서도 이슈파이팅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으로 행형개혁 및 수용자인권의 문제가 다른 인권운동 영역과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분절적인 이슈로 다루어져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구금시설 수용자의 인권문제는 많은 경우에 교도관의 적나라한 폭행 내지 가혹행위사건으로 이슈화되고 있지만, 사실 구금시설 인권의 문제는 삶의 구석구석에 대한 권력의 통제시스템에 대한 도전과 문제제기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 점에서는 구금시설의 인권문제는 정신병원이나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제기되는 인권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행형개혁의 과제는 정신병원, 출입국 관련 보호시설,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운동과 횡적 결합이 가능하고 또한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구금시설의 개혁은-장기적이기는 하지만-국가형벌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와 통제를 한층 끌어올린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형폐지-보호감호폐지-치료감호개혁-구금시설개혁 등의 인권운동과제들은 종적으로 결합될 수 있다.
분절화된 문제제기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구금시설 인권문제는 범죄자라는 가장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사회집단에 대하여 가해지는 적나라한 폭력을 인권문제로 이슈화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구금시설 인권문제의 지형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 성과를 지속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인권운동진영 및 시민사회의 연대를 한층 강화하는 방향에서 구금시설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대응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덧붙임
◎ 이호중 님은 서강대 법학부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