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주] 모든 죽음은 산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어떤 죽음은 산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런 죽음은 죽은 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 생물학적 죽음을 수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회적 죽음도 있다. 죽음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을 부르는 한국사회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죽음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인권오름>은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죽음 가운데 점점 잊히고 있지만 산 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한국사회 인권의 현실을 점검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비정규직법(기간제법/파견법)을 만들고 2007년 7월 비정규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 법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랜드-뉴코아의 대량해고와 그에 맞선 투쟁으로 드러났다.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투쟁에도 자본과 정부가 비정규직법까지 만들면서 비정규직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정착시켜 비정규직을 ‘당연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자본과 정부의 시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은 철폐되어야 한다고,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있음을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하면서 증명하려 했다.
이어지는 비정규직의 죽음
최복남(당시 44세, 화물연대) 2003년 5월 7일 부산 김해인터체인지에서 화물노동자의 열악한 삶을 알리고 파업동참을 호소하는 선전전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용석(당시 32세,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2003년 10월 26일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분신, 31일 사망했다. “노예와 같은 비정규직 관리세칙을 파기하고 고용안정을 외치는 우리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며 마땅히 쟁취해야 한다.” 이용석 열사가 남긴 유서의 일부다. 근로복지공단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한 건 돌아오는 재계약을 위해서 불안에 떨지 않고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것,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전부였다.
정종태(당시 41세, 재능교육교사노조) 1999년 입사와 함께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해서 투병 전까지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 교사도 노동자라고 노동조합을 인정하라고,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도 노동자의 권리가 있다고 쉬지 않고 투쟁했다. 2003년 10월 노조 상근을 마치고 현장에 복귀하지만 회사는 수업을 주지 않았고, 월 20~30만원 수준의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라면이 주식이 된 그는 2004년 8월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05년 2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박일수(당시 51세,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원청으로부터 받은 소급분을 노동자에게 주지 않자 원청을 찾아가서 사실을 확인하고, 이 사실을 동료들에게 폭로하고 하청업체 사장에게 집단행동으로 대응하여 소급분을 쟁취했다. 그 자리에서 친목모임을 구성하고, 노조를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측의 탄압과 업체 동료들의 침묵 속에 고립되어 갔고, 2003년 12월 원청은 모든 전산자료를 말소시키고 강제 해고해 버린다. 2004년 2월 14일 분신 후 운명했다.
김춘봉(당시 50세, 코리아타코마/현 한진중공업) 사측이 자신이 담당하던 업무를 촉탁직에서 외주용역으로 넘기려 하자, 외주용역만은 막아보려고 그에 저항하기 위해서 2004년 12월 27일 공장입구에서 목을 매고 자결했다. “벌써 혼자서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잠을 자며 생활한지도 21일째다.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구나. 나도 지쳐간다. 저번에 다친 허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꼭 이렇게 하여야만 회사는 정신을 차리는지... 지금 밖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꼭 그 사항이 이뤄지길 간곡히 원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나같은 사람도 인간대접 받을 수 있지... 한진중공업에서도 비정규직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 현재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좋은 대우를 해주겠지”라고 유서에 썼다.
김동윤(당시 49세, 화물연대) 생활이 어려워 부가가치세를 체납했지만 관할세무서와 체납한 세금을 매월 분납하는 방식으로 갚아나가기로 약속하고 이행각서까지 작성했다. 하지만 부산시로부터 환급받은 유류보조금을 세무서는 압류해 버렸다. 살아갈 길이 막막해지자 화물노동자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2005년 9월 10일 부산 신선대 부두 앞에서 분신했고, 3일 만에 사망했다. 특수고용노동자라는 껍데기를 쓰고 이런저런 세금을 노동자 스스로 내야했고, 세금을 체납하자 유류보조금을 압류하여 살 길을 막아버린 정부를 향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류기혁(당시 31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월차를 쓰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 때문에 노조에 가입했지만, 노조활동을 이유로 하청업체 관리자들로부터 심한 횡포와 왕따에 시달렸다. 2005년 6월 12일 업체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고 살길이 막막해져 2005년 9월 4일 노조 임시 사무실 옥상에서 목을 매고 자결했다.
하중근(당시 45세, 포항건설노조) 포항건설노조는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없애고, 하루 8시간 노동 등 건설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걸고 파업을 시작했다. 그러자 사측은 300명을 대량 해고해 버린다. 포항건설노조는 실질적인 사용자인 포스코에게 책임을 물으며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다. 그러자 정부는 건설노동자의 투쟁을 잠재우기 위해서 폭력적으로 탄압한다. 포항건설노조 노동자들은 포스코 본사 안에서 투쟁 중인 동지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려는 평화적 시위를 원했지만 경찰은 집회를 허가하지 않았고 그래서 불법집회가 되었다. 2006년 8월 1일 당일 집회에서 경찰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고, 그 폭력에 목숨을 잃었다.
정해진(당시 46세, 전국건설노조 인천지부) 전봇대 위에서 하루 13시간 가까이 일하는 전기원 노동자들이 주 44시간 노동,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걸고 130여일 파업을 했다. 그 파업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2007년 10월 27일 영진전업 파업현장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파업투쟁 정당하다, 단협 체결하라, 유해성(영진전업 대표)을 구속하라”고 외쳤다.
최복남, 이용석, 정종태, 박일수, 김춘봉, 김동윤, 류기혁, 하중근, 정해진의 공통점
이들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았지만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누가 우리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만들었는지, 무엇 때문에 억압받고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 이들은 노동자로서 권리선언을 하고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답을 찾아냈다. 그리고 세 번째 공통점은, 투쟁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을 하다가 병을 얻게 되어, 투쟁 중에 사고를 당하게 되어, 투쟁을 진압하려는 경찰의 잔인한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비정규직 투쟁을 제대로 알리고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분신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시작한다. 그러면 예상되는 상황이 몇 가지 있다. 직접고용 계약직의 경우 돌아오는 재계약 시기에 이런 저런 핑계로 재계약이 되지 않고 해고된다. 하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노동조합 활동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은 하청업체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하청업체의 경우는 업체 자체가 폐업하기도 한다. 기간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 원청과 하청으로 나눠진 파견·용역 등의 간접고용, 정규직이던 업무를 개인사업자로 만든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사실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규정하고 투쟁하는 순간부터 그들의 발목을 잡는 꼬리표가 된다. 자본과 정권은 이것을 노린 것이다. 계약이 만료되었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한 회사는 하청회사이지 원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한다. 또한 당신들은 개인사업자이니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이라고 우긴다. 이렇게 투쟁 자체를 막기 위해서, 손쉽게 자르고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는 것이다.
열사들의 소원이었던 비정규직 철폐!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새해 들어선다. 일자리를 늘리겠단다. 하지만 그 일자리가 어떤 일자리일까? 노동자들이 원하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니라면, 성장률 7%로 경제를 살려봐야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마저도 희생하면서까지 열사들이 원했던 것은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 노동자들이 기계의 부속품이 아니라 사람대접 받으며 사는 세상일 것이다. 열사들의 투쟁과 희생정신은 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일 것이다. “일자리가 늘어나면 되지 않을까? 경제가 살아나면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가 아니라 “어떤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하나? 누구를 위한 경제 살리기일까?”라고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덧붙임
◎ 박현진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