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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의 인권나무 키우기] 가정폭력 저지른 자가 떠나라

오스트리아의 가정폭력방지법에서 배울 것

교육자 집안 출신의 친구 한 명은, 세 남매가 모조리 서울로 진학해서 평상시에는 부모님만 고향집에 계신다고 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술을 마신 뒤, 말릴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밀폐된 집에서 가끔 어머니를 구타한다고 한다. 언제 어느 때에 부모님밖에 없는 넓은 집에서 어머니가 일방적이고 굴욕적으로 매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은, 이미 친구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었다. 친구는 즐겁게 놀다가 갑자기 시무룩해진 뒤 조용히 떠나곤 했다. 교편을 잡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야만적으로 구타하는 이미지가 고문처럼 따갑고 고통스럽게 친구를 할퀴고 있었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어머니가 호젓한 방에서 울부짖으며 이튿날 학교 출근을 위해 상처를 수습할 것을 떠올리면, 결코 유유자적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 <똥파리> 개봉 이후 제작진들이 받았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절절한 편지들처럼, 우리 주변에는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 이들은 남편,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등에게 일상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있다. 가정은 모름지기 화목하고 단란하다는 관념이, 이들에게는 지독히 공허한 말로 튕기며 상처를 가중시킨다고 한다. 만일 누군가 수시로 자식을 구타하는 부모를 만났다면, 만일 누군가 온갖 잡다한 핑계를 대며 주먹질을 해대는 남편을 만났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더러운 팔자를 운명론적으로 탓하며 비참한 삶에 순응해야 할까.

가장 흔한 인권 스캔들, 가정폭력

통상적으로 집안에서 약자가 되기 쉬운 여성들과 아이들이 남성들에게 매를 맞는 일은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여권과 아동인권이 상대적으로 발달되었다는 선진국에서조차,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이 남편이나 친권자에게 맞다가 죽는 일이 드물지 않다. 가정폭력에 관한 여러 조사에 의하면, 독일여성 가운데 25%, 영국 여성 가운데 21%, 핀란드 여성 중 20%가 남성파트너에게 최소 1회 이상 매를 맞았다고 답하였다. 우려스러운 점 중의 하나는, 가정폭력은 폭력의 대물림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을 종국에 범죄자로 전락시키는 악마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텍사스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하거나 어머니가 구타당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 아동들이 장차 범죄를 일으킬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무려 74배 높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폭력의 피해자들은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아동들을 학대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최소 6배 이상 높다는 결과도 발표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영국에서는 장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여성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중 상당수가 어린 시절에 근친 성폭행과 반복적인 구타를 겪다가 조기 가출한 공통점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어린 나이에 가출한 청소녀들이 부닥치는 현실은 처절할 정도로 위험천만해서, 성매매와 도벽, 홈리스 생활, 마약 남용, 그리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귀결되는 악순환이 끝내 치명적인 범죄로 비화된다는 서슬 퍼런 보고였다. 더불어, 기혼여성 가운데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장에 선 여성들 중 상당수가, 장기간 가정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이라는 보도도 종종 나오고 있다.


일부 빈민계층 사이에서나 일어날 법한 개인사라고 치부해온 가정폭력은, 여러 조사에서 나오는 것처럼 기실 모든 계층에 만연한 문제로 광범위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낳고 있다. 실비아 월비(Sylvia Walby)는 사회학자로서 가정폭력을 경제학적인 비용으로 계산하였다. 그는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가정폭력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는데, 매년 230억 가량의 돈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각종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지출된다고 밝혔다.

가정폭력에 책임이 있는 자가 떠나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가정폭력방지 법안을 시행 중이다. 오스트리아는 흔히 북유럽에 비해서 보수적인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 수많은 여성들과 아동들이 때리는 남성들의 폭력으로 인해 심각한 외상을 입는 일이 줄을 이었다. 가정폭력은 지극히 사적인 개인사라는 왜곡된 관념이 지배적인 세태, 아이양육을 비롯한 보살핌노동 책임감 (여성들은 가정폭력에 위태롭게 노출될 때 자식들로부터 두 가지 역할을 기대 받는다. 가부장의 폭력을 굳세게 막아야 할 보호 역할뿐만 아니라, 자식들이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집안을 지킬 것을 동시에 요구받기에, 적잖은 여성들이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제권을 움켜쥔 남성에 대한 권력관계의 열세로 인해 많은 여성들은 폭력을 감수하며 참도록 강요받았다. 하지만 끔찍한 폭력을 방치하는 사이에, 가정폭력은 더욱 가학적이고 극단적이고 습관적인 형태를 띠며 피해자들의 삶을 파괴해갔다.

여성인권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나라에서조차 아직까지는, 피해자들이 안전한 쉼터에서 일정 기간 보호를 받는 것이 관례로 여겨져 왔다. 이와 달리, 오스트리아에서는 폭력에 책임이 있는 가해자가 집으로부터 축출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법제화시켰다. 이 법은 만일 남성(배우자와 동거인을 포함한 광의의 개념)이 여성과 아동들을 구타해서 경찰이 출동하면, 피해자의 판단에 상관없이 남편을 집으로부터 한동안 강제로 솎아내는 데 핵심을 둔다. 가해자 퇴거과정에서 피해여성의 선택을 배제한 이유는, 실질적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을지언정, 여성들이 동거인을 법적으로 내쫓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된 처사이다. (남성 파트너와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은 욕구, 혹은 보복의 두려움이 작용할 수 있다.)

최장 이혼 성립까지 발효될 수 있는 강제퇴거 조치

임시 퇴거명령은 일반적으로 10일 동안 시행된다. 이때 가해 남성들이 자신의 물건이나 옷 등을 집에서 챙기고 싶을 때도 피해자에게 미리 알려서 동의를 구해야 하며, 제한된 시간 동안만 집에 들를 수 있다. 만일 가해자가 규정을 어기고 임의로 집에 드나들거나, 지정된 시간을 넘겨서 머물 경우 벌금을 부과 받는다. 여성이 퇴거명령 기간에 임의로 남성을 집에 머물게 하는 행위도 동일하게 벌금형을 받는 금지행위이다.

만일 여성이 통상적인 임시퇴거명령 기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추가적인 가택출입금지를 통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느낄 시에는 기간을 20일로 연장할 수 있다. 여성들이 특별한 증거서류들을 관계당국에 제출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경우 기간연장 신청이 받아들여진다. 만일 여성이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최장 세 달까지 퇴거명령이 연장될 수 있다. 피해여성이 이혼을 원할 경우, 이혼소송이 끝날 때까지 남성들은 집에 출입할 수 없다. 임시퇴거명령을 선고받은 가해남성들은 스스로 숙식을 해결해야 하며, 단지 집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직장, 아동들이 다니는 학교나 유치원에도 방문할 수 없다. 이를 어길 경우에는 벌금형뿐만 아니라 최대 인신구속형까지 받을 수 있다. 이 법이 최초 시행된 1997년에 비해, 임시퇴거명령을 받고 일정 기간 집에서 격리된 남성들의 비율이 약 네 배 이상 증가했다.

가해자 재범금지교육도 동시에 중요

이 법은 단순히 가해남성들을 집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피해가족들뿐만 아니라 가해남성들 역시 중재센터의 도움을 다각적으로 받을 수 있다. 피해여성들은 무료로 상담을 받으며 앞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를 침착하게 숙고하게 된다. 만일 여성들이 가해자에 대한 형사고발이나 이혼을 원할 경우, 중재센터는 피해자들의 법률적인 구조도 도맡는다. 가해남성들 또한 중재센터에서 가정폭력방지 재활프로그램을 이수하며, 가정폭력이 피해자 및 자식들에게 미치는 극심한 악영향에 대해서 학습하게 되며, 폭력 충동을 다스리며 억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가정폭력이 일어난 뒤에 성인지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적절하게 예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가정폭력은 양성 사이의 평등과 존엄성을 극단적으로 훼손시키는 폭력으로써 절대로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퍼뜨리며, 타인의 인권에 대한 존중을 드높이는 교육과 다각적인 캠페인을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캠페인을 통한 문제 알리기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음에는, 가정폭력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가려내어서 문제를 제거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예컨대, 텔레비전에서 가정폭력을 문제의식 없이 다루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가정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 가해자의 변명이나 핑계를 전하기보다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도하는 언론지침을 내놓고 있다.

세 번째로는, 전국 각지에 여성쉼터를 널리 세워서 피해자들이 편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재 오스트리아에는 여성쉼터가 주요 대도시에 밀집돼 있어서, 지방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도움을 받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주장이 쇄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정폭력방지법을 더욱 강화해서 문제가 되는 행동들을 법에 의해 엄격하게 처벌하도록 이끌고 있다. 더불어, 일선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투입되는 경찰이 성인지적인 관점을 견지한 채 피해자 중심적인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끌고 있다.

임시퇴거명령 상당 부분 효과 있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 가정폭력방지 법안은 어떠한 결실을 낳고 있을까. 이 법이 시행된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법의 취지에는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도, 가해자들을 집에서 강제로 쫓아내는 것에 대해서 반발하는 여론도 없지 않았다. 특히 가해 남성들 중에서는 자신들의 행위가 임시퇴거명령을 받을 만한 짓이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 채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도 잦았다. 하지만 현재 이 법은 상당 부분 소기의 성과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오스트리아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전 세계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일례로, 오스트리아보다도 훨씬 여성인권이 발달된 아이슬란드에서는 줄지 않는 가정폭력의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오스트리아 법안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아직 오스트리아 법안은, 여성쉼터의 열악한 재정, 주요 도시 위주로 분포된 쉼터, 그리고 이민자나 난민 여성들처럼 더욱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여성들에 대한 특별 대책 부족, 이혼 후 자력으로 살기 어려운 여성들의 빈곤문제 등이 연거푸 지적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이주여성들은 제아무리 심각한 폭력에 노출될지언정, 남편과 이혼하면 오스트리아 거주 자격을 잃을 위기에 봉착해 있어서 문제를 쉬쉬하기 일쑤였다. 최근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정폭력으로부터 심각하게 위협을 받은 이주여성들이 임시퇴거명령이나 이혼을 원할 시에, 다른 방도로 거주허가를 내주는 방안도 시행되고 있어서 차츰 해결의 길에 근접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여성들은 이 법안을 크게 반기고 있다. 강제퇴거를 받았던 남성들 중 상당수가 집에 복귀한 뒤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줄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은 범죄’라는 당연한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아내나 아이들을 구타하는 행위가 도저히 수용될 수 없는 위법행위라는 점이 확고부동하게 굳어지고 있다.

사회적 개입으로 해결해야 할 가정폭력

최근 차츰 개선되는 중이기는 하지만, 가정폭력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사건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점증하는 아동학대의 원인으로 대가족 붕괴를 제시하는 시각 또한 문제적이다. 이는 여전히 문제해결의 일차적인 방법으로, 집안의 어른이 개입해야 한다고 설정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정폭력이 증가하는 이유로 여러 가지 원인들을 지적할 수 있으나, 전반적인 양성평등 부족과 약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을 쉽사리 여기는 그릇된 태도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남성이 아내나 자식들을 잔악무도하게 때려 죽여도, 처벌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제라도 한국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소기의 성공을 얻고 있는 가정폭력방지법안을 취사선택해서 도입하는 것은 어떨지 고민해야 한다. 가정폭력을 절대로 묵과하지 않겠다는 법의 의지가 또렷하고 일관성 있게 유지될 때, 쉽사리 주먹질을 해대는 행태는 줄어들 것이다. 개인의 불행을 오로지 불운한 사람들의 삶으로 치부할 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무관심과 무지는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귀결되어서,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안겨준다.
덧붙임

나이테 님은 인권운동사랑방을 후원하는 자유기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