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서 비켜갈 수 없는 생각 하나. 만약, 성판매 여성이 강남역 한복판에서 살해를 당했어도 우리는 이렇게 추모하고 함께 분노했을까? 성판매 여성과 나는 다른 여성이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은 내가 당할 수 있는 죽음이라고까지 연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유영철이 출장마사지 여성들을 살해한 이유를 ‘함부로 여자들은 몸을 놀리지 말아야한다고’ 말하면서 그녀들을 비하하고 혐오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성판매 여성과 내가 같은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성판매 여성은 나와 다른 여성인 것이고, 여기서 동질적인 연대 의식은 생겨나지 않는다.
성판매 여성의 죽음은 늘 가려져있다. 성매매가 일어나는 곳이 우리의 상상 밖에 있듯이, 그 곳에 있는 여성들 또한 우리들의 인식 밖에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대우를 받고, 무엇을 팔고, 누구에게 시중을 들고, 어떤 인간의 비위를 맞춰야하는지. 그 속에서 그녀들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위협을 받고 있는지를. 그저 쉽게 그녀들이 선택한 일이기에 오롯이 감당해야한다고, 아니면 다른 일을 하면 된다고 그녀들에 대한 비난만이 난무한다.
이런 사회에서, 박유천 사건이 터졌다
한계점에 다다르면 무엇이든 터지게 되어있다는 걸, 영원한 비밀은 없고, 영속한 권력도 없다는 세상 이치를 아마 박유천은 몰랐나보다. 한 여성의 폭로로 다른 여성들의 폭로가 줄줄이 이어졌고, PD 수첩을 통해 다섯 번째 제보자까지 증언을 했다. 그의 질 나쁜 수법은 놀랍게도 똑같았다. 여성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연예인이라는 특권을 이용해서, ‘너도 나를 좋아하잖아’, ‘우리는 앞으로 사귈 거야’라는 말로 달래면서 성폭행을 했고, 여성들은 그 과정에서 심한 굴욕감과 모욕감을 느꼈다고 인터뷰했다. 어떤 여성은 사건 직후 경찰에 신고를 했고, 어떤 여성은 울면서 친구에게 사실을 알렸다. 이 사회에서 업소에 다닌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약점이고, 박유천은 그것을 이용하였다.
박유천만 여성의 입을 막은 것이 아니다. 우리 또한, 이 사회 또한 동조했다. 많은 성폭행 가해자들이 사용하는 무고죄를 박유천도 이용하였다.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강력한 한수까지 놓으면서 그는 자신의 죄 없음을 주장하고 언론의 물타기를 시작했다. 맞고소는 여성들을 위축시키고, 자신의 피해를 꼼꼼하게 입증해야하는 부담을 지워준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박유천의 동조자들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하면서도 일관됐다. 누구는 이 사건으로 인해 묵직한 정치적인 사안들이 덮혔다고 말하면서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겨버린다. 폭력사건의 진실은 온데간데없고, 가해자와 이것을 지켜보는 집단 사이를 핑퐁질하면서 진실을 허공으로 날려버린다. 이렇듯 또 한 번 이용당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성매매 하는 여자에게 무슨 성폭력이냐면서 여성들을 비하하기 시작한다. 성판매 여성에게 가해지는 집단적 혐오와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에 더해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역시 박유천 사건을 성매매와 사기 혐의로 송치를 했다. 성폭행 건은 혐의 없다고 명백하게 결론지었다. 돈을 받고 서비스를 하는 그 시간동안 때리면 맞고 강제추행하면 가만히 있어야하고, 성폭행을 시도해도 이건 일이니까 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가? 돈을 받았으니 폭력은 감수하라고 한다.
이 사건은 현장에서 실제 상담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큰 상실감을 준다. 성매매를 조건으로 선불금 문제를 해결하는 법률지원 과정에서도 법은 여성들에게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많은 피해가 있음에도 법적으로 여성들이 입증해야하는 상황들이 워낙 복잡하고 어려워서 활동가들과 당사자들은 발을 동동 거릴 때가 많다. 성매매를 하는 장소 안에서 벌어지는 성추행과 성폭력 사례들은 꾸준하게 있어왔다. 룸 안에서 평범하게 이뤄지는 성추행 누드쇼와 질펀하게 성과 놀이를 접목시키는 남성들의 성문화 안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그 곳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되기 어려웠다. 이번 박유천 사건이 성판매/성적서비스를 하는 여성들이 겪는 일상적인 폭력을 덮는 선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성판매하는 여성들은 돈을 받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인격권이 침해당해도 거부할 수 없고, 서비스란 이름으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법의 심판까지 성판매 여성들에게 가혹하게 적용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덧붙임
고진달래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