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 시작한 도서 <재난불평등> 책 읽기 모임을 마쳤습니다. 책 읽기는 노란리본인권모임의 주특기 같은 활동이에요. 다만 이번 책 읽기는 노란리본인권모임의 새로운 구성원 모집과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조금 특별했습니다. 그 덕분에 노란리본인권모임에 새로운 멤버들이 많이 합류하게 되었네요.
이 책은 2019년 노란리보인권모임이 만든 핸드북 <잊지 않고 싶은 당신에게>이 추천하는 도서 중 하나예요. 책 읽기는 5월 말부터 시작되었는데,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탓에 모임 날짜를 정하기도 만만치 않았죠.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재난을 겪는 한 가운데 모인 성원들의 관심사는 자연스레 책의 제목처럼 재난과 불평등에 집중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왜 재난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가혹할까’ 처럼 책은 주되게 아이티, 미얀마, 미국 뉴올리언스 등 자연재해를 겪은 국가와 도시 사례를 소개하면서 자연재해 이후 사회 재건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재난을 겪는 사람들의 계급적 특성과 지역적 차이를 추적하고 있어요. 작가가 제시하는 사례들은 자연재해가 단순히 자연과학을 넘어 사회과학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짚어 주었답니다.
모임이 회를 거듭할수록 거대한 재난을 완벽하게 대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던 거 같아요. 그 불가능성을 확인하면 확인할수록 국가의 역할은 분명해졌어요. 재난을 미리 막을 수 없어도, 이미 벌어진 재난에 대응할 역량은 갖출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재난 상황에서 사회가 어떤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는 재난 이후 재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감염만이 재난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 생계가 막막해지는 것 역시 재난의 결과라는 점에서, 방역 체계 바깥에 존재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계기가 모임 안에서 형성됐던 거 같아요.
책은 재난으로 한 사회가 흔들리는 것은 재난의 물리적 속성 때문만이라기보다, 재난 후 불거지는 사회 불평등에 대처할 수 없는 혹은 대응할 의지가 없는 국가의 부패나 무능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도 집중합니다. 독재정권의 경험을 가진 칠레와 아이티 지진 사례를 비교한 장은 지구물리학적으로 비슷한 자연재해를 겪는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특징이 다르다면 재난으로 인한 결과(사망자 수, 경제적 후퇴)는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어요. 좌절스럽게도 두 국가 모두 재난 이후 가난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불평등한 결과는 비슷했답니다.
책은 재난 이후 붕괴한 도시가 소위 ‘돈 있는 사람들’의 좋은 투자 공간이 되기도 한다는 노골적인 사실도 숨기지 않았어요. 세계 최대 부호 국가인 미국의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사례는 재난이 불평등과 맺는 관계를 잘 드러내 주었는데요. 익히 알려진 대로 뉴올리언스는 미국 내 가구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도시인데요, 카트리나로 인해 물에 잠긴 지역은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대로 저소득 가구들, 인종적으로는 흑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한 주거지역이었죠. 부유층이 거주하는 지역은 해수면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수해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이 책이 말하는 재난 불평등의 어떤 초상이 아닌가 싶었어요. 카트리나 피해가 있기 이전부터 그 지역의 주거, 교육, 보건, 공공서비스 수준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습니다.
한편 뉴올리언스가 미국 도시 중 부패 정도가 가장 심한 도시이며, 그런 사실이 재난과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점을 짚은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경제적 상황이 판이한 아이티, 미얀마 정부의 부패한 모습과 루지애나 주정부의 부패나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정부 관료들의 모습에서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은 모임에 많은 시사점과 한국의 역대 정권들이 재난에 대처했던 무능과 무책임을 떠올리게 했던 거 같아요.
저자는 재난 상황에서 약탈이나 반사회적 행동이 언론에 의한 집중 보도가 만드는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도 지적했는데요. 최근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해 미국 정부는 분노한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언론은 이들의 이미지를 약탈을 일삼는 사람들로 끊임없이 재가공했지요. 실제 그런 보도들은 부당한 죽음의 원인을 가리고, 문제의 원인을 피해 집단이 된 흑인 커뮤니티에 돌리는 효과를 낳고 있기도 하지요.
재난 속 불안과 공포는 정치적 기획에 의해 조장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과 재난의 개인화에 대한 구성원간 토론도 흥미로웠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생떼 부리는 유가족’, ‘돈 받으려는 유가족’, ‘종북’ 프레임 등은 사실상 국정원의 기획하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었잖아요. 또한 ‘이태원 클럽’ 확진자 중 ‘인천 학원 강사’ 로 알려진 사람이 역학 조사 시 자신의 동선과 직업을 숨겼다는 이유로 사회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사건을 떠올리며, 재난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릴 때 교묘하게 가려지는 국가의 책임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습니다. 이른바 한국 정부의 방역이 차분하고 피해자 낙인 여론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K방역이라는 브랜드를 창출해내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 정부는 방역의 대상으로 비감염인만을 호명하고 있다는 모임 구성원의 비판은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정작 감염인들이 이 재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현실을 꼬집은 셈이지요.
책은 총 세 번에 걸쳐 읽고 발제와 토론을 진행했는데요, 이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과 고민을 조금 더 발전시켜 나가보기로 했어요. 그 일환으로 인권의 원칙에 기반한 방역과 안전에 대해 고민하는 단체들이 모여 작성한 <코로나19와 인권 -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함께 읽고, 코로나19라는 재난의 시대, 감염에 대한 공포와 방역이라는 이유로 보편적인 인권이라고 여겨왔던 권리들이 불가피하게 침해되어버리는 순간과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파해야 할지에 대한 토론을 이어가 보려고 해요. 다음 모임은 8월 27일 (목) 저녁 7시예요.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분들 언제라도 사랑방 문을 두드려주세요. 미리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