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 이야기

N번방 이후에도 계속되는 온라인 성착취, 운동 앞에 펼쳐진 과제들

2023 사랑방 반성폭력교육 후기

유튜브를 자주 보는 편이다. 근래에는 여성 BJ와 ‘큰손 시청자‘들이 모종의 관계를 맺는, 그런 컨텐츠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다. 속히 꽃뱀과 순진/불쌍한 남성이라는 오랜 구도에 더해, 거세된 남성성을 돈으로 과시하며 동시에 자신이 경험해본 적 없는 ‘돌봄'을 여성으로부터 갈구하는 남성의 모습은 어딘가 짠한 감정을 자아내려는 의도인지 진실인지 헷갈리게 한다. 아프리카TV 같은 음지에서나 판치던 ‘벗방’이 “페이크(각본)”이라는 구실로 양지의 컨텐츠 시장으로 나오고, 자발적인 수행/노동에만 주목하게 되며 성착취 문제는 가려진다. 얼마 전 유명 OTT인 W사가 성인(AV)영화를 전격적으로 들인다는 소식에 우려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건 우연만은 아닐테다.

인권운동사랑방은 매년 반성폭력교육을 진행한다. 올해에는 <N번방 이후, 온라인 성착취에 맞서는 운동>이라는 주제로 교육이 마련됐다. 교육 준비에 함께했는데, 그중 ‘N번방 이후 온라인 성착취’에 개인적으로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위에서 말한 고민들에서였다. 교육 강연자로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의 효린 활동가를 모셨다. ‘반사이버성폭력 운동'을 표방하는 한사성에서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텔레그램 N번방을 거쳐 최근 ‘벗방’을 중심으로 젠더 위계구조 하에서 벌어진 한국사회 주요한 사건들에 대응하며 갖게 된 깊은 고민들을 나눠주었다. 강연은 한사성이 가진 특성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는데, 이는 하나의 사안에 함께 대응하는 사회운동 안에서도 각 조직마다 나름의 방향과 리듬이 있다는 점에서 한사성의 활동과 고민이 마치 정답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길 바란다는 세심한 고려에서였다.

 

법제도에 여성의 피해를 기록하고, 권리를 기입한 역사

한사성이 나눠준 고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는 ‘법제도’를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의 역사였다. 한사성은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2018년 정부의 불법촬영 편파수사와 같이 2017년을 전후로 한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의 실제 사건사고에 유사한 정서와 태도를 보이게 된 여성들이 자체적으로 모인 게 시작이었다고 한다. 즉, 처음부터 명확한 지향과 활동 방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조직’의 형태가 띈 것이 아니라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모인 여성들이 점차 주요 활동을 갖게 되고, 그렇게 지금에까지 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젠더 위계 구조 하에서 여성의 오래된 공포는 철저히 무시하며 남성의 폭력을 방치하는 사회에서 ‘여자라서 죽었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국가가 버린 우리(자매)를 서로가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여성들 간에 널리 공유되었다. 그중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불법촬영] 문제는 단순히 ‘비동의 촬영'의 문제만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비동의 유포'되는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유포되는 영상에 대한 여성의 불안과 공포가 극에 달해도 국가는 아무런 대응 체계가 없었기에, 한사성 등 여성운동에서 직접 피해 상담과 함께 삭제 지원을 조력해야 했다.

이와 더불어 ‘더 이상 단 한 명의 여성도 잃을 수 없다'는 생존의 시급함을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기 위해 여성(운동)들은 관련 입법에 몰입하는 흐름을 보이기도 했다. 엄벌을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서 중요한 건 가해자 개인에 대한 엄벌 그 자체보다도 성차별적 구조 하에서 공포와 폭력에 쉬이 노출되는 여성의 취약성을 여태껏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국가에 대한 분노였다. 그 하나의 성과로서 2017년 9월, 국가는 <디지털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법제도에 기입된 권리는, 권리를 법제도 중심으로 설명하고 인정받게 되는 어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 지워지는 피해

먼저, 법을 통한 가해의 금지는 ‘불법’에 한해서만 다뤄지고, 그 결과 특정 가해가 ‘법에서 규정한 심각한 폭력’인지 아닌지를 두고 싸워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또한 중요한 싸움임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가해를 만드는 성차별적 구조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쉬이 망각하게 된다는 거였다. 피해를 경험한 여성들은 끊임없이 생기고, 지난 피해 경험이 해결되지 않고 오랜 기간 이어질 때, 피해 여성과 직접 접촉하며 함께해온 한사성은 당장 우리 앞에서 불안을 호소하는 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도 한다.

 [웹하드 카르텔]은 합법의 경계에서 수혜를 받았다. 피해영상은 ‘불법’촬영물로 인정 받아도, 웹하드 카르텔은 ‘합법’사업자의 손에서 공공연하게 돌아갔다. 웹하드 운영 ─ 관리(필터링) ─ 삭제, 이처럼 웹하드 내 크게 세 범주의 산업이 굳건한 카르텔을 이루고, 그 삼각형에서 책임은 법제도를 기준으로 섬세히 쪼개지고, 분산됐다. 피해자가 드러나지 않으면 그저 음란물 ‘유포’에, 유포물을 보았어도 실제 유포 행위자가 아니면 ‘유포 방조’에 그치는 식으로 말이다. 이처럼 법제도의 맥락에서 ‘범죄’로 인정되는 ‘불법’에 한해서 문제를 설명해야 할 때, 현행법 밖으로 밀려난 피해는 구제되지 못한 채로 방치된다.

거기 더해 국가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 대응 체계인 ‘피해 지원’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가령, 대부분의 지자체에선 피해영상 삭제지원은 3개월 정도의 집중 지원, 그 다음에는 느슨한 모니터링 수준의 전환으로 이뤄진다. 누가 저장해놨을지도 모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금 유포할지도 모르는 ‘이어지는 불안’에는 턱없이 부족한 체계인 거다.

 

자발성 - ‘진짜' 피해와 ‘가짜' 피해 사이에서

여성이 겪는 공포와 폭력의 경험이 법제도가 규정한 피해로서 인정 받아야만 비로소 ‘진짜’ 피해가 된다는 사실 또한 큰 어려움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건 여성의 ‘자발성’이다. 완전무결함, 즉 완전한 비자발성을 입증해야 비로소 피해자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강한 대한민국에서 조금의 ‘동의’와 ‘동조’의 여지가 보이면 그는 피해여성이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성산업 집결지의 폐쇄가 이런 고민을 갖게 한다. 국가가 집결지를 폐쇄하면 생존 터를 잃게 되는 여성들에게 ‘일자리 지원' 등을 하겠다고 하지만, 이러한 지원을 받기 위한 자격 요건이 셀 수 없이 많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이 많은 상황에서, 새로운 일자리뿐 아니라 주거지를 찾고, 일자리 교육 등의 적응을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치고, 과거에 대한 오랜 낙인을 뛰어넘어야 하는 어려움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지 않은 채로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국가의 ‘친절한’ 협박으로 여성의 권리는 쉬이 철거된다.

근래 ‘벗방’이 횡행하고 점점 양지로 나오는 사태를 보면서도 유사한 고민을 하게 된다. 성산업화가 이뤄지는 장소에 직접 들어가고, 영상물 불법 기록과 유포에 대한 피해를 호소해도 방송을 유지하고픈 여성은 ‘가짜’ 피해자인가? 나아가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항상 여성이 ‘피해자’ 위치로 안착되어야만 말해질 수 있나?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현안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질문을 던지는 운동

법제도의 언어와 정책 대응이 갖는 한계를 마주하며, 한사성이 나눠준 고민들은 사랑방이 현재 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에서도 마주하는 문제들이었다. 가령 재난피해·생존자들의 법제화 운동과 차별금지법제정운동, 기후정의운동에서 취약한 자리에 있는 존재들과 어떤 만남과 투쟁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동시에 피해의 경험에서 중요한 건, 피해를 겪었던 특정 순간만이 아님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다. 그 피해를 만들어온 ‘더 오랜 과거’, 여전히 피해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재’. 한사성 활동가들이 해준 말처럼, 쏟아지는 현안에 그저 휩쓸리지 않고, 운동이 내야 할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질문을 꾸준히 던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은 또 다른 피해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