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가자, 체제전환!

요즘 신문을 보면 타임 루프를 도는 것 같다. 몇 달 전 기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사들이 반복된다. 무슨무슨 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 거쳐 폐기됐다… 총선 이후 예상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욱 고민이 깊어진다. 운동이 똑같이 타임 루프를 돌면 안 되는데…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는 7월 전체회의에서 ‘가자! 체제전환’ 공동행동을 벌이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 거창한 계획은 아니었다. 정치대회 이후 긴 호흡으로 움직일 채비를 하며 조직위로 모인 운동들이 거리에서 광장에서 함께 구호도 외치고 행진도 하는 경험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매년 11월 전태일정신 계승 노동자대회가 열리니 같이 참가해서 체제전환의 요구들을 함께 말해보자는 계획이었다. 체제전환운동포럼에서 나눈 이야기, 정치대회에서 나눈 기대를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전하며 체제전환운동의 동료가 되자고 제안하는 활동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움직일 때가 다가오니 운동 안에서는 윤석열 퇴진이 거의 모든 요구를 수렴하는 구호가 되어가고 있었다.

국정 지지율이 충분히 보여줬듯 윤석열이 대통령으로서 자격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많지 않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은 윤석열 정부 들어 펼쳐진 현실에 불만과 분노를 쌓아두고 있다. 그래서 윤석열 퇴진 구호가 설득력을 얻지만 선뜻 내키지 않는 마음 또한 널리 퍼져있다.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의 경험도 그렇거니와, 윤석열 정부 들어 제1야당이 보여주는 모습 또한 사람들로부터 기대를 모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윤석열이 퇴진해야 하는 이유만 말하는 것이 운동의 전부여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퇴진 다음이 보이지 않아서 더욱 각자의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므로.

공동행동을 시작하기 전 함께 외칠 체제전환의 구호를 만들자고 준비한 워크숍에서 윤석열 퇴진 투쟁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조직위에 함께하는 단체 중에는 윤석열 퇴진운동본부 참여를 제안받고 깊이 논의 중인 단체부터, 윤석열 퇴진 투쟁의 분위기가 거의 전해지지 않는 단체까지 다양한 단체들이 있었다. 윤석열 퇴진 운동이 제기된 경과와 앞선 대통령들에 대한 탄핵 결정(한 번은 기각, 한 번은 파면)의 요지를 살피며 토론을 이어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분노를 어떻게 세상을 바꿀 힘으로 모아낼 것인가였다. 퇴진을 시킨들 그것조차 과정일 것이므로, 이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갈지가 운동의 과제다.

돌이켜보니 루프 안을 맴도는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매 순간 우리를 힘겹게 하는 것들과는 많이 떨어져 있었다. 종류를 달리하며 가격이 치솟는 농산물도, 누구나 ‘능욕’ 당할 수 있는 딥페이크도,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불안정노동자의 과로와 빈곤도, 모두 루프 밖에 내팽개쳐져 있다. 양당은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우면서도 상속세를 완화하거나 금융투자소득세를 후퇴시키는 데서 별반 입장 차이가 없다. 평등을 향한 도전은 무력화하고 불평등의 조건은 심화시키는 정치다. 보수양당의 어느 한 편이 아니라 양당이 배제하고 방치한 자리에 굳건히 서는 일이 더욱 절실하다.

‘퇴진이 답이다’라는 구호가 귀에 착 붙었는데 의문이 생겼다. 퇴진이 답이 되는 질문은 무엇일까. ‘윤석열 어떻게 해야 돼?’ 매일 신문을 보며 나도 퇴진 말고 답이 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는 동안 정작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었다.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해?’ 이렇게 묻는다면 퇴진이 답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길이 당장 뚜렷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답을 찾는 일을 미루며 우회하지는 말자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워크숍에서는 함께 외칠 구호를 정하는 데까지 가지는 못했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거니와 여러 운동의 요구를 그저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전망으로 만드는 일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질문을 놓치지 말자고 함께 마음 모으는 시간이 되었다. 전쟁으로 돈 버는 세상을 바꾸자. 젠더폭력 조장하는 세상을 바꾸자…. 어떻게? 세상의 문제들을 윤석열 퇴진의 이유로 열거하는 대신 우리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고 나니 더욱 입에 붙는다. 가자, 체제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