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 명동에서는 “집회한다 허가하지 마시라”라는 특별한 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가면과 각종 재기발랄한 소품 등을 갖고 나온 참가자들이 각자 집회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나 인권 현안들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전경 기동대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집회는 끝까지 큰 마찰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경찰이 집회를 사찰하고 채증하는 모습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목격되었다.
이 집회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아래 집시법)에 규정된 집회 신고를 거부한 비신고 집회로서 신고제의 형식을 갖고 있으나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현행 집시법과, 집회에 대한 사찰과 채증 강화 등 집회 시위에 대한 통제 방안을 강화해온 경찰에 대해 항의하고 불복종하기 위한 집회였다. 실제로 경찰은 지난해부터 한미 FTA 범국민운동본부의 집회 등에 대해 폭력 시위 전력, 주요도로 행진 금지 등과 같은 집시법의 독소 조항을 들어 신고된 집회를 자의적으로 금지시키고 진행 중인 집회에 대해서는 폭력적으로 탄압한 바 있다.
불복종 집회를 통해 드러난 집회 신고제의 부당성
하지만 집회 시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의 일환으로서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이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집회 시위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 요소이기도 하다. 즉 민주주의 체제에서 집회 시위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의 성격을 띤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그때 의사 표현의 주체는 개인이 될 수도, 집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인민들은 집회 시위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권력집단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 권력을 통제할 수도 있다. 즉 집회 시위는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 중 하나다. 실제로 민중들의 ‘자유로운’ 집회 시위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 4.19 혁명에서부터 5.18 광주민중항쟁, 87년 6월 항쟁 등이 그 예다.
인권단체들은 4.19를 맞이하여 집회 시위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행 집시법의 문제점을 알려내고 이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기 위해 집회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경찰에 대한 집회 신고를 거부하는 불복종 집회를 가졌다. 그날 불복종 집회는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잘 치러졌고, 끝까지 경찰의 개입은 필요하지 않았다. 현행 집시법 상 옥외 집회는 반드시 사전에 신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은 집회는 무조건 금지하도록 한 집회 사전 신고의무 규정이 사실상은 과도한 통제라는 사실이 불복종 집회를 통해 드러났다.
교류와 소통이 가능한 집회를 위해
집회는 정치적 저항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회구성원들 간의 정치적 교류와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난 불복종 집회에서는 미리 정해진 순서와 연설이 이어지는 일방향의 중앙집중적 집회 대신 참가자들 간의 자유로운 소통을 지향하는 다른 형태의 집회 형식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는 어쩔 수 없이 중앙집중적인 형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고 또 그 자체로 악이거나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중앙집중적인 집회에서는 집회를 통한 구성원들 간의 정치적 소통이라는 기능은 희미해지고 집회 참가자들은 정작 집회에서 소외된다는 느낌으로 집회 자체가 활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최대한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집회의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진행된 첫 번째 불복종 집회는 익숙하지 않은 탓에 다소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집회 참가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참가자 수가 통상적인 집회에 비해 현저히 적었던 탓에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현행 집시법의 문제점을 알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집회 시위 자유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환기시키고 집회를 정치적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내려는 문제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한 번의 돌발적인 집회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집회 신고 거부뿐만 아니라 소음규제나 권력기관 주변 집회 금지, 주요도로 행진 금지 등 대표적인 집시법 독소조항들에 대해서도 불복종 기획을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꾸준하고 정기적인 비신고 집회를 기획해 집시법 불복종 운동의 한 전형을 만들어 나간다면 집시법의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인 의식이 높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불복종 운동에 동참하게 되지 않을까?
5월 30일 다시 한 번 열릴 집시법 불복종 집회
5월 30일 12시, 종로 제일은행 앞에서 다시 한 번 “집시법 불복종의 날”을 통한 비신고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번에는 집회 사전신고제 뿐만 아니라 집시법 상의 소음 규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 소음 측정도 직접 실행할 예정이다. 물론 이번 집회의 형식도 지난번과 같이 참가자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주장이 담긴 피켓이나 가면 등, 재미있는 소품들을 만들어 참가하면 된다. 공연을 준비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러한 실천이 일부의 실천으로만 그친다면 불복종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집시법을 개정 혹은 폐기하고 자유로운 정치표현과 소통의 장으로서의 집회 시위를 회복하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집시법 불복종의 날”의 문제의식과 실천에 동참해야 한다. 민중들의 기본권적 자유를 보장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집시법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