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을 찾아
지난 12월 13일 오전 18대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은 ‘형님예산’, ‘대운하예산’, ‘부자감세안’으로 대변되는 내년도 예산안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통과시켜 버렸다. 이러한 새해 예산안에서 주목되는 부분이 또 있다. 바로 남북협력기금의 3천억 원 삭감이다. 이는 역대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을 바탕으로 한 대북 인도적 지원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일정한 기여를 한 것이라면, 현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과거와는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고 하겠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북한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기존의 ‘대북인권단체’의 바람을 담은 ‘북한인권’ 관련 법안 등 가뜩이나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를 더욱더 상호불신과 갈등, 반목과 대결을 조장할 수 있는 방안들을 속속 내어놓고 있다.
출범 초부터 6·15 및 10·4 남북공동선언을 인정하지 않고 지난 10년의 남북관계 성과를 부정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의 비방과 불신으로 이어져 급기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을 계기로 급속하게 남북관계가 얼어붙게 된다. 점점 남북관계의 경색이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공히 상호비방과 불신의 대결주의적 적대정책을 멈추지 않고, 결국 12월 1일부터 각종 교류협력과 경제거래를 위한 남측 인사의 육로 통행을 차단하는 한편 개성관광, 경의선 철도 운행, 남북경협협의사무소를 각각 중단 또는 폐쇄키로 한 북의 ‘12·1조치’로 인해 아홉달 남짓 만에 남북관계가 전면적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다.
심지어 세계식량계획과 유엔식량농업기구 등 북한의 식량위기와 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고에 대해서도 외면하고 있어 ‘인도주의 문제조차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올해 말까지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1999년 이후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대북 식량지원이 ‘0’을 기록하게 된다. 현 정부 들어 악화일로인 남북관계의 상징적 단면인 셈이다. 이같은 당국차원의 대화 중단은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과 대북지원 사업도 부분적으로 차단될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개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월 유엔인권이사회를 통해 “한국 정부는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의 중요성에 입각해,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 북한이 적절한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같은 달 27일에는 유엔인권이사회 본회의에서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임기를 1년 연장하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같은 변화는 결국 지난 10월 30일 제63차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 채택을 목표로 유럽연합, 미국, 일본 등 50여개국과 함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번의 공동제안국 참여는 단순한 찬반 입장 표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같은 이명박 정부의 ‘대결주의적 대북관’과 ‘대북인권관’은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관련 법안의 입법추진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05년 8월 11일 한나라당의 김문수 의원 외 28명이 함께 입법발의한 ‘북한인권법안’이다. 이후 제18대 국회에 들어와 2008년 7월 4일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대표발의한 ‘북한인권법안’과 7월 21일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이 대표발의한 ‘북한인권증진법안’이 있다.
‘북한인권’ 관련 법안의 반인권성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관련 법안은 모두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이들 법안은 북한주민을 우리의 동포이자 헌법에 따른 대한민국 국민임을 전제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납북자의 생사확인과 송환문제, 이산가족 상봉문제, 북한이탈주민의 불안정한 지위를 악용한 인권침해 문제 등 각종 북한 인권현안에 대하여 국가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북한인권 개선 등에 관한 국가의 책무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북한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이바지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일시대를 열고자 하는 것이라고 제정이유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본원칙 및 국가의 책무, 북한인권개선위원회, 북한인권자문위원회 설치, 북한인권대사,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북한인권실태조사 및 국회보고,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문제 해결, 북한이탈주민의 인권보호, 인도적 지원, 북한주민에 대한 정보전달 등을 그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북한인권’ 관련 법안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면면이나 그 법안을 비호하는 세력들의 반인권성은 물론, 인권의 보편성과 인권의 상호의존성, 인권의 상호불가분성 등 인권의 개념과 그 특성에 있어서도 결코 인권적이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첫째,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관련 법안은 냉전적인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화해와 협력이 아닌 인권을 무기로 긴장과 대결을 부추긴다. 김문수 법안과 황우여 법안 모두 기본원칙 및 국가의 책무에 대해 국가와 정부는 “북한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기본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헌법의 영토조항과 대법원의 판례에 근거하여 북한지역은 미수복지역으로 그곳에 살고 있는 북한주민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기존의 판례와 학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것은 남북한이 모두 국제사회에서 독립된 국가로서 1991년 9월 UN에 동시가입하고 북한이 외교적으로 실체를 가진 국가일 뿐 아니라, 1991년 12월 남북의 당국자가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이후 2000년 6월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10월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 등 평화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라고 하는 남북관계에 대한 설명과는 상호간의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임을 전제로 헌법상 보장된 기본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는 ‘북한인권’ 관련 법안들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우리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냉전적 사고를 반영한 결과라고 하겠다.
둘째,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관련 법안은 ‘인권의 보편성 원칙’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황진하 법안에서는 김문수 법안과 황우여 법안의 내용처럼 당연히 북한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임을 전제로 헌법상 보장된 기본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황진하 법안은 북한주민을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인권증진은 대한민국 국민이라서가 아니라 인도주의, 동포애의 정신과 자유민주주의, 인권의 보편성 원칙에 입각해서 기본적 생존권은 물론 자유권과 사회권까지 아우르는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여기서 말하는 ‘인권의 보편성 원칙’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인권의 보편성이란 어떠한 사회적 조건에 있든 모든 인간이 누구라도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평등하고 양도불가능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근대 시민권의 전제는 그것의 보편성만큼이나 허구적이라고 하겠다. 현실의 경제적·사회적 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인권 그 자체로서 생각할 때 인권은 현실을 떠난 허황된 지배의 이데올로기가 될 가능성이 큰 반면, 현실의 경제적·사회적 힘 관계를 적극적·실질적으로 고려하고 인권을 생각할 때 비로소 인권은 현실을 반영한 정직한 개념이 될 수가 있다.
이처럼 보편성 개념은 지배세력의 시각에서 구성된 입장이 마치 전체 인간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강자의 권력수단이 되기도 한다. 누구의 입장이 보편적인 인간의 입장으로 대변되는가는 언제나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다. 남성/여성, 비장애인/장애인, 이성애자/동성애자, 내국인/외국인,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실존과 입장의 차이와 다름이 존재한다면 보편성이라는 개념은 결국 차이와 다를 수밖에 없는 모든 존재를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 재정립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인권의 보편성이 이와 같다면, 북한과 같이 우리사회와의 차이와 다름이 존재하는 사회의 경우 강자의 권력수단으로서의 인권이 아닌 차이와 다름을 존중하고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인권의 잣대로 이들 사회를 분석하고 평가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셋째,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관련 법안은 ‘북한’만의 인권상황을 문제시하고 대상화하고 있다. 남과 북 각각은 물론 상호간의 인권문제는 지난 5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분단상황과 일정부분 연관관계가 있다라고 한다면, 이를 극복하는 것 또한 분단상황의 극복과 해소라는 그래서 남북의 인권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권의 상호의존성에 기초한 남북의 인권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고자 하는 ‘한반도인권’ 개념이라고 하겠다. 인권의 상호의존성의 관점에서 나의 인권과 타인의 인권, 나의 인권과 공동체의 인권, 한 공동체의 인권과 다른 공동체의 인권은 연결된다. 그러므로 북한사회의 인권을 남한사회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으면 그 역도 성립할 수 있다. 그리고 인권을 위해서는 그 목표뿐만 아니라 수단과 방법까지도 지극히 인권적이어야 하고, 인권의 관할권과 시행을 국내와 국외로 나누지 말고 하나의 관점에서 통일해야 하며, 지역공동체 수준의 인권과 전 지구적 차원의 인권을 내재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관련 법안은 그 실제 내용에 있어서도 그들의 주장과 상호모순되거나 북 당국을 대화와 협력의 주체로 인식하기보다는 대결과 극복의 대상으로, ‘북한주민’을 ‘도탄에 빠져있는’ ‘무지몽매’한 존재로 대상화하여 이들을 선동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여진다.
인도적 지원의 경우에도 분배 투명성의 확보 및 군사적 용도로 전용되지 않도록 방지조치를 취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경우 사전에 국회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강력한 규제 장치를 두고 있다. 이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사업과 인도적 지원을 연계하도록 하여 정부가 판단하기에 북한인권 개선의 정이 보이지 않을 때 과감하게 인도적 지원을 줄이거나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주민의 기본적 생존을 위해 지원을 하는 것인데 이를 상황에 따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북한주민의 기본적 생존조차 외면하겠다는 의미로 밖에는 볼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논리는 가장 비인도적 주장이라고 하겠다.
최근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자유의 풍선 날리기 및 소형 라디오 지원’ 등의 명목으로 반북단체의 ‘삐라 살포’ 행위를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북한인권’ 관련 법안들은 미국의 북한인권법과 일본의 북한인권법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주민’에 대한 인권보호와 개선과는 거리가 먼 북한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또다른 수단으로 인권을 정치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이들이 북한사회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겠다며 온갖 ‘북한인권’ 관련 법안들을 준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 내용은 이와 같이 전혀 인권적이지 않다. ‘북한인권’ 관련 법안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면면이나 그 법안을 비호하는 세력들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에 대한 진심어린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다시 노둣돌을 놓자
이와 같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대결주의적 대북관’과 ‘대북인권관’을 바탕으로 한 각종의 대북정책들은 지난 10년 동안의 남북 화해·협력의 성과들을 무산시키고 다시금 남북대결로 치닫게 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에 의해 입법이 추진하고 있는 ‘북한인권’ 관련 법안들은 과거의 냉전적 사고와 반북이데올로기에 바탕으로 한 역사관과 남북관계에 얽매여 ‘북한자유화’와 민주화의 토대 구축을 통한 북한의 체제변화를 꾀하고 있어 ‘북한주민’에 대한 인권보장과 개선이라는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남북관계의 악화를 돌이킬 수 없게 하고, 이로 인해 외부의 자극을 빌미로 ‘북한당국’은 ‘인민’들을 더욱더 억압하고 통제하여 오히려 이들의 인권상황이 악화될지도 모른다. 급속도록 냉각한 남북관계를 완화하기 위해 지금현재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남북한 당국 모두 이성을 되찾고 서로를 대화와 협력의 주체로 다시금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남과 북을 다시금 만나게 하는 노둣돌이 될 것이다.
덧붙임
* 조백기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