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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용산참사 100일에 생각하는 인권

오늘은 용산참사 100일이 되는 날이다. 100일을 맞으니 언론도 조금은 관심을 갖고 보도하고 있고, 용산참사 현장에 분향하러 오는 이들도 늘어났다. 농성에는 지금까지 소극적이던 단체들까지 결합하고 있고, 오늘 하루는 용산참사 현장과 서울시청 광장에서 추모행사가 연이어 열린다. 그나마 다행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나가버린 사건이 아니라 기억되는 사건으로 남아 있음을 확인하였으니 말이다.

나는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지금은 수배 중에 있다. 100일 동안의 나의 궤적을 살펴보면 인권운동의 관점에서 용산 문제를 대해 왔는가 하는 반성이 인다. 올해 가장 큰 인권 사안이고, 용산문제는 집약적으로 우리 사회 인권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용산문제를 인권적 관점에서 제기하고, 인권운동의 관점으로 풀려고 노력해왔는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나부터 인권운동으로 접근하지 않으면서 이 문제에 인권활동가들이 소극적으로 결합하는 것에 대한 서운함부터 가졌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그래서 오늘은 용산참사를 인권의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참사 전의 인권

용산참사가 발생하기 전까지 용산4구역 철거민들은 각종 폭력에 노출되었다. 도심재개발 사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주민들, 특히 세입자들은 소외되거나 배제될 수밖에 없다. 건설자본의 이익에 맞춘 재개발 사업으로부터 철거민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할 것을 강요받게 된다. 그런 뒤에도 철거과정에서는 용역깡패들의 공공연한 폭력으로부터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경찰과 검찰, 심지어는 법원조차도 건설자본의 편이다. 덩치 큰 깡패들에 의해서 심각한 폭행을 당한 철거민들이 오히려 사법 처리되는 일은 일반화된 상황이었다. 외출 나간 사이에 집을 부수거나 아이들이 있음에도 부모를 폭행하고, 그 아이조차도 공무원들이 폭행하는 일조차도 있다. 공포가 지배하는 무법천지를 만들어 철거민들의 투쟁을 무력화하는 일에 모든 권력기관이 한편이 되어 움직이는 현실이 용산4구역에서도 그대로 재연되었다.

철거민들은 폭력으로부터 도망하여 마지막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망루를 만들고 화염병을 만들어 재놓게 된다. 그런 저항이 있기까지 그들은 주거권을 비롯한 인신보호를 위한 인권보장체계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당한 위치에 있었다. 우리가 흔히 주장하는 사회권과 자유권 모두로부터 총체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에게 공권력은 폭력의 또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며, 국가는 늘 부자들의 편이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분노와 설움만을 안기는 원한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참사와 인권

용산참사는 극단적인 국가폭력의 전형을 보여준다. 철거민들의 망루 농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로 한 정치권력의 판단과 지시에 의해 경찰은 특공대를 투입하는 강경진압을 결정하고, 농성 돌입 25시간 만에 어떤 대화와 설득도 없이 진압에 들어간다. 이때 철거민들은 기본권을 지닌 국민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진압대상이 되고, 따라서 이후 화재로 죽어갔지만, 경찰에게는 면죄부가 부여되었다. 6명이나 죽인 국가공권력이 정당했다는 이런 결론, 그리고 ‘도의적 책임’만 지고 김석기가 사퇴하는 것, 그리고 철거민들은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시켜 법정에서 재판 받도록 한 것은 극명하게 국가가 인권보장을 위한 역할을 포기하였음을 보여준다. 용산참사는 국가의 부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국가권력의 만행, 국가에 의한 부정의의 강요를 거부하는 일은 인권운동이 제기해야 할 문제다.

경찰과 검찰, 정치집단, 그리고 그들과 늘 한편인 보수언론에 의해서 건설자본은 철저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다. 철거민들은 주검으로 돌아왔고, 지금도 영안실에서 장례의 날을 기다렸다. 또 철거민들은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지닌 채로 분노를 안은 채 구속되어 구치소에 있거나 병원에 있다. 이런 심각한 차별이 지속되는 현실을 인권운동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참사 후의 인권

용산참사 이후에 이런 인권침해의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거나 강화되고 있다. 추모제는 불법집회로 ‘불허’되었고, 거리시위는 봉쇄되었다. 헌법마저 부정하는 이런 국가공권력의 자의적 행사로 인해서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였던 많은 이들은 소환조사의 대상이 되거나 구속, 수배의 상태에 빠졌다.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고인들을 모독하는 막말을 하는 정치인들과 보수언론, 청와대 앞 1인 시위마저 불법화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또 용산참사가 일어났음에도 용산4구역에서 용역깡패들의 폭력과 경찰들이 폭력, 강제철거는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철거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종합적으로 가져오는 일이므로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뉴타운, 재개발 지역에서 용산과 같은 참사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살인개발의 구조와 시스템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오늘을 맞고 있다. 더욱이 용산참사 100일이 되는 현재 전국철거민연합을 비롯한 철거민들의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인권의 출발은 철저하게 부정되고 있으며, 그 부정 위에서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인권의 주체일 수 없다.

이처럼 용산참사는 주거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 사회권의 전 권리 항목, 그리고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비롯한 자유권 영역의 모든 권리들이 무시되거나 부정되는 우리 사회 인권현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아울러 가난한 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하는 심각한 사회구조도 드러낸다. 그러므로 국가의 존립 근거 자체를 의문시해야 한다고 용산참사는 제기한다.

그렇다면 인권운동은 어떻게 용산참사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지금이라도 용산참사를 풀기 위한 워크숍을 개최하고, 이로부터 용산참사를 인권의 눈으로 분석, 정리하여 인권침해 보고서를 내는 일, 그리고 인권침해 상황과 구조를 깨기 위한 전략을 논의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용산참사를 해결하는 과정은 ‘철저하게 소수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복무하고 작동하는 대한민국 국가’를 개조하는 일로 나아가야 하기에 다른 영역의 진보운동과 연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이슈, 사안들과 연대하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새롭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용산참사 100일은 인권운동이 더 이상 임무를 방기하지 않을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대의 과제를 외면하지 않는 인권운동이기를 바란다.


덧붙임

박래군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이자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