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 동기를 만났습니다. 2월에 함께 졸업할 친구입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많이 웃고 고민도 많이 얘기했습니다. 자유나 좋아하는 일에 대해 참 많이 얘기했던 것 같은데, 졸업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려보니 친구와 나나 둘 다 생각이 조심스러워진 걸 느낍니다. 친구는 대학 4학년에서야 무턱대고 힙합을 추겠다고 연습생으로 들어가더니 막상 졸업생이 되자 많이 갈등하는 것 같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철’이란 건 들지 않고 소신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대학졸업생이라는 딱지 앞에서 친구도 저도 갈팡질팡 합니다.
(아, 이제 우리도 졸업이다. 마지막 학기 학점은 확인했어?)
아니, 아직 안 떴더라.
(졸업 맞은 기분이 어때?)
시원섭섭해. 일단, 뭔가 의무교육과정을 마친 기분이야. 그래서 더 이상 학교를 더 다녀야 한다는 압박은 없어졌잖아. 완전 내 시간만 남아도는 거잖아. 그래서 좋기도 하고 약간 무섭기도 하고.
(완전 니 시간만 남아돈다고?)
그렇지.
(난 오히려 뭔가 다음 단계를 찾아가야한다는 압박감이 드는데..)
난 그게 기대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것 같아.
(주위에 졸업하는 친구들 많아?)
한 네다섯 명. 한 명은 간호사, 나머지는 임용고시 준비, 나머지는 그냥 직장 같은 데 들어갔지.
(바로 취직했네.)
응. 취직하려고 마음먹은 애들은 바로 하긴 하더라.
(너는 왜 바로 취직을 안 했어?)
못 한 거야.
(왜?)
별로 취직에 대해서 준비가 되어 있던 것 같지 않고 취업을 반드시 해야지 라는 생각도 학교 다닐 때는 없었던 것 같고. 준비가 부족했으니까 아무래도 취업이 힘든 건 당연하겠지. 취업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게, 아직 많이 되지 않았어.
(취업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은 왜 들었어?)
내가 춤을 추려고 그랬잖아. 춤으로 돈을 벌려고 했었는데, 그게 어렵다는 걸 알게 됐어. 뭔가 내 현실이랑 안 맞다는 거지.
(니 현실이 왜?)
나이도 있고……무릎도 아프고……무릎이 아픈데, 빡시게 추면 더 아플 거란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또 겁이 많잖아. 무릎에 대한 압박이 의외로 많이 컸어.
(대학생활은 어땠어? 대학은 꼭 가려고 했던 거?)
내 의지랑은 상관없었지. 다 가니까, 온 거지. 그 외 다른 길은 안 보였지 아예. 다른 길이 있는지도 몰랐고 생각도 안 해봤고. 그냥 많이 나태하기도 했고, 막 바쁘기도 했고, 그래도 대학생활은 나름 괜찮았던 시간 같아. 나에 대해 많이 고민할 수도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됐고. 그게 굳이 대학에서 생각하고 고민했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웃음) 아무튼 대학은 나한테 그런 곳.
취직, 노동, 자아실현
(대학생들보고 막 88만원 세대라고 하잖아. 그런 게 실감이 와? 사실 나는 88만 원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너무 궁핍해져서 그런가.)
실감나지. 왜냐면 이제 슬슬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잖아. 그런데 대기업들은 몰라도 그냥 중소기업에 들어가려면 그 정도 생각해야지.
(이제 취직 준비할거야?)
어. 해서 돈도 벌고 자기 발전도 좀 하고,
(자기 발전?)
그냥 일하면서 마냥 일만 하는 게 아니고 계속 생각도 하고, 이것저것 부딪쳐도 보고.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어.
(노동은 자아의 실현이란 말을 믿어?)
생각 안 해봤는데.
(니 발전에 도움이 되는 취업을 할 수 있겠냐는 거지.)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찾고 있는 일들은 좀 어렵기도 어려울 것 같긴 한데 많이 공부를 해야 되는 일을 하고 싶어. 그래서 내가 발전하는 게 보이는.
(그 취업이 쉬울 것 같다고?)
쉬울 것 같진 않고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아.
(딴 친구들은 대학 다닐 때 취업준비를 했잖아. 그런 거에 대한 조급증은 없어? 사실 나는 내가 덜 현명한 건 아닌가도 싶더라고. 대학 때 조금씩 취업준비를 할 수도 있었던 거지. 미리 준비한 친구들보고 나는 그러기 싫다고 말했던 게, 사실 되게 쉬운 말이었던 것 같아.)
어른들 말이 틀린 건 없는데, 어른들이 무슨 말씀을 해주셔도 내가 느끼기 전에 나는 안 움직이는 것 같애. 어른들은 나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는 그분들이 살아봤으니까 그런 말을 해준다는 생각은 들어. 후회까지는 아니고 나란 사람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 거지. 내가 부딪쳐봐야 깨닫고, 머리가 나쁜가.
(근데 더 중요한 건, 취업 준비했다고 해서 졸업하면 바로 취직되는 것도 아니란 말이지. 이게 더 큰 문제야. 주위에는 막 이력서 몇 백 장씩 써도 안 된다고 하잖아.)
근데 나는 그렇게 눈이 높은 게 아니니까. 일단 면접은 보자고 연락은 오는 거야. 면접을 봤을 때 내가 부족한 게 있으니까 떨어지는 거란 생각이 들어. 면접 준비를 많이 해야겠고, 이력서 쓸 때 완전 쌩뚱 맞은 데 쓰는 게 아니고 내가 대학 때 활동한 걸 기반으로 내가 이런 사람이고 이 회사에 적합하다고, 내가 봐도 잘 쓴 이력서는 연락이 오더라고.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면……어쩔 수 없는 거고.
춤은 어쩔 거야? 먹고 사는 건 어쩔 거야?
(그럼 이제 취직준비를 시작하겠네. 춤은 어떻게 할 거야?)
춤은 내가 그만두지 못 하는 게 아니라 춤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만 못 두는 것 같애. 춤에 대한 내 마음을 모르겠어. 그만두면 후회할 것 같고, 춤을 추면 너무 좋다? 시간도 잘 가고 그 다음에 춤을 추지 않을 때도 춤 생각이 많이 나고. 같이 하는 사람들도 너무 좋고, 사람들이 아주 약간이나마 나에게 기대해주는 것 같고, 나도 내가 조금씩 느는 게 보이고, 결과적으론 춤이 좋다는 얘기야. 근데 좋다는 것 이외에 “내가 춤을 왜 추지?” 라고 질문했을 땐 잘 모르겠어. 좋아서? 이윤 잘 몰겠어. 그래서 내가 춤을 계속 춰야할지를 모르겠어. 연습실에 있는 사람들도 춤 왜 춰? 라고 물으면 좋아서 라고 밖에 못 할 듯.
(좋으니까, 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전부 아닐까?)
누가 이런 얘길 했어. 자기는 춤을 그냥 좋아서 추는 사람이 싫대. 그런 사람은 좀 생각이 없어 보인대. 나도 좋아서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춤을 왜 추냐고 했을 때 나는 춤을 평생 출거란 말을 되게 서슴없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대. 죽을 때까지. 근데 내가 지금 과연 그런 말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
(오히려 그런 사람이 드물지.)
근데 왠지……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아서. 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내가 이걸 다 가지고 갈만큼 춤이 가치 있는 건지 나중에 후회를 할지 그걸 잘 모르겠어.
(나도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계속 갈팡질팡 하겠지. 근데 사실 춤으로 먹고 살 수 있으면 별 걱정은 없는 거잖아.)
그렇기야 하지. 춤추는 건 돈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근데 내가 무릎이 좀 많이 아파. 별 거 아닌 거라고 생각하고 춤을 췄는데, 계속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계속 아프고 그러니까. 벌써 막 연골이 닳았다, 이런 말 나오니까. 춤추는 사람들 보면 허리 안 좋은 사람도 많아. 그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 추는 것 같다. 수술도 받고. 그런데 나는 수술할 정도로 허리가 아프면 춤을 계속 못 출 것 같애. 겁도 나고. 몸 아프니까 춤 춰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고. 근데 내가 무릎이 아파서 춤을 포기하면, 무릎 안 좋은 걸 극복할 생각을 안 하는 거잖아. 그럼 이게 약한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졸업을 앞두고 마음의 압박은 왜 그리 심했던 거야?)
춤을 내가 계속 춰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만둘 수 있을 때 그만둬야 하는 건지, 그게 고민이었어.
(니가 춤추는 거 아빠한테 말 안 했지?)
응. 맞을까봐. 통상적으로 아빠한테 안 받아들여질 것 같애. 4년제 대학도 계속 보내줬고 과도 법대 갔고 그런데 갑자기 그거 다 안 하고 춤을 추겠다고 말했을 때 아빠가, 당연히 화가 나지. 배신감도 느끼고. 이제 와서 말을 하려니까 그동안 속였다는 것도 다 말해야 하고.
(취직은 왜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독립하려고?)
앞으로 내가 더 잘 살기 위해서. 어디 의지하지 않고. 혼자 뭔가 선택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고. 다른 거에 구애받지 않고, 내 길을 계속 가려면 취직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애.
춤 연습실 가잖아. 연습실 애들이 진짜 힘들게 살거든. 걔네들은 일단 집안 사정이 많이 어려워. 거의 다 가장이야. 그러니까 자기 가족들도 책임져야하고 책임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보탬은 돼야 하고 아니면 완전 자립했거나 하는 애들이 많아. 내가 그 틈에 껴 있었잖아. 내가 정말 너무 작아 보이더라고. 거기서는 내가 대학 4년제 다니고 있다고 하면 공부 잘 한다고 해주는데. 그럴수록 뭔가 더 작아지는 느낌 들어. 부모님 돈 계속 받고 있고, 내가 한 건 고등학교 때 걔네보다 좀 더 공부 열심히 한 거잖아. 걔들은 그때 춤을 더 열심히 춘거잖아. 걔들이 더 현명한 걸 수도 있지. 일찍이 좋아하는 걸 찾은 걸 테고. 걔들 보니까 내가 약해보이더라고. 아침부터 알바하고 연습실가서 춤추고 걔들도 만날 반복되는 일상이니까 되게 힘들어한단 말이야. 나보다 훨씬 어리고. 그런데 걔들은 뭔가 더 많이 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어른스럽고, 내가 걔들 나이 땐 생각하지 못 했던 걸,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활을 통해 알아가는 느낌. 나는 이제 그걸 시작하려는 거잖아.
부모님한테 가서 돈 걱정 안 하고 편안하게 살 수도 있어. 이번에 한 열흘 집에 갔다 왔잖아. 정말 돈 걱정 하나도 안 했어. 택시를 타도 괜찮았고, 먹을 때도 언니가 다 알아서 사주고, 옷 같은 것도 몇 백 원 더 쌀까를 하나도 고민 안 하게 되잖아. 그 와중에 공지영 책, 을 봤어. 니가 어떤 삶을 살든 널 응원하겠다. 그 책에 이런 게 있었어. “살아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 나도 살아지고 있는 것인가,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내가 김해에 있으면 왠지 살아질 것 같아서. 음. 근데 그것도 나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웃음)
(어찌 보면 사는 게 별 거 아닌데, 살아가는 건 자기 한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을 믿어서인지 나는 자꾸 어려워지고만 있어.)
우리 너무 어렵게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솔직히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만 딱딱 했으면 완전 쉽잖아. 내가 얼마 전에 친척 결혼식을 갔다 왔거든. 그 언니는 공부도 되게 잘 하고 학교도 되게 좋은 데야. 엄마 말 들어보니까 그 집 딸은 정말 엄마아빠가 시키는 대로 척척척 다 했대. 딱 그걸 보는데, 부모님 시키는 대로 하면 저렇게 살 수 있구나 싶었다. 하하. 나도 만약 대학교 때 춤 좀 덜 추고 영어공부 좀 많이 하고 학점 잘 받아놨으면, 나도 대기업을 노려보지 않았을까. 그런데 걔들은 과연 행복할까? 그건 모르는 거지. 근데 되게 행복해보였어.(웃음)
(아니야. 그렇다고 우리가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을까.)
못 했어도 욕심은 내봤겠지, 지금은 욕심도 안 나.
(하긴, 나도 그런 욕심은 안 난다. 넌 왜 시키는 대로 안 살게 됐어.)
내가 하고 싶은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계속 부딪치면서 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별로 후회도 안 해. 이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취업준비만 하고 내가 좋아하는 거 안 했으면 되게 무미건조했을 것 같기도 하고. 재미도 없을 것 같고. 힘든 게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 같고.
(어쩌면 니가 춤이나 이런 걸 해보지 않고 바로 취직준비를 했다면 더 안 좋았을 수도 있겠다.)
후회했겠지, 어쩌면 춤을 훨씬 더 늦게 시작했을 수도 있지.
(왜냐면, 니가 바라는 게 그렇게 큰 것도 아니고 소박한 거잖아. 니 마인드가 원래 그럴 수도 있지만, 그냥 대학 때 할 거만 열심히 하고 살아왔으면 오히려 지금은 청년실업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거지)
최악의 상황에 갔을 것 같기도 하고. 마음도 약하고. 자심감도 다운됐을 수도 있겠다.
“우리, 살아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요즘 내 화두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
응. 자신감을 잃으면 정말 끝나는 것 같애. 그걸 계속 지키기가 힘든 것 같애. 요 근래 취직준비하면서 많이 흔들린 것 같애. 면접은 아직 한 번 밖에 안 봤지만 한 번 보고 떨어졌잖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사람들이 날 크게 보지 않는구나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웃음)
면접 보는 사람이 나한테 해줬던 얘기가,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고 하더라고. 난 자신감 많았는데(웃음) 나는 내가 자심감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 보기엔 안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뭔가 많이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사회가 되게 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난 ‘사회’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말에 속지 말자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지금 억지로라도 고민해야 할 문턱에 서 있는 것 같애. 앞길이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잘 살아보자)
덧붙임
윤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