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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호의 인권이야기] 품위 있는 주거공간은 사치인가

18평 반지하 빌라에 살던 시절, 행인들 덕에 창문도 제대로 열어놓지 못한다며 투덜대시던 어머니는 급기야 동네의 3층 빌라로 이사를 가셨다. 군대에 가 있던 아들도 모르게 이사를 가신 통에 제대하고 집을 찾아가는 데 애를 먹긴 했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새로 이사 간 집은 신축건물이었는데, 그게 옆 건물과 손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세워진 것이다. 상식적으로 그렇게 촘촘하게 5층 건물을 세워버리는 게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옆 빌라는 우리가 입주한 건물 덕에 햇볕을 통째로 잘라 먹히고 말았다.

정작 문제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과 똑같은 문제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입장은 정 반대였다. 이번에는 바깥사람들이 우리 집을 쳐다보는 게 아니라 우리 집이 옆집의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버렸다. 이게 고약한 것이 꼭 옆집을 보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해도 창문을 여닫거나 바깥을 잠시 내다보려면 기어이 눈에 옆집 모습이 그대로 들어와 버리는 거다. 결국 우리 집 창문에는 시공사에서 차단시설을 설치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창문의 용도가 뭔가. 바깥공기와 환기를 시켜주는 것도 목적이지만, 외부풍경을 볼 수 있도록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게 창문 아니던가. 그 차단시설을 설치하고 나서는 통풍도 전만큼 시원치 않고, 바깥풍경이 아예 차단되어 창문이라기보다는 건물에 의도치 않은 결함으로 생긴 구멍처럼 보였다.

옆집은 오죽했을까. 차단시설을 설치하기 전까지 거실에서 제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했을 것이다. 창문을 닫으면 된다지만, 더운 여름날이나 실내공기가 텁텁할 때 일부러 창문을 꾹꾹 닫아놓은 채 살아야 한다면 그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언젠가 후배가 거주하고 있던 고시원을 가 본 일이 있다. 딱 한 사람이 누울만한 공간에 몸을 부리고 팔을 벌려 뻗으니 양쪽 벽에 가닿은 팔 길이가 남았다. 이삿짐을 나르기 위해 잠깐 들렀을 뿐인데, 폐쇄 공포증에 걸릴 것만 같았다. 나중에 후배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밤중에는 옆방에서 한숨 쉬는 소리까지 다 들려온다고 한다. 듣는 내가 다 오싹해질 정도였다. 결국 후배는 몇 달 견디지 못하고 고시원을 탈출했지만, 고시원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집’으로 성업 중이다.

옛날 문제나 남들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의 다세대 주택 역시, 창문을 열고 있으면 부엌 쪽으로는 옆집의 거실이 보이고, 거실 쪽에서는 옆집의 옥상과 마주한다. 설거지를 하다 무심코 바라본 바깥에 러닝셔츠 바람의 옆집 아저씨가 서 있기 일쑤였고, 거실에 앉아 일을 하다 빨래를 널고 있는 옆집 할머니와 머쓱하게 눈을 마주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날씨가 좋아도 왠지 주변을 살피고 창문을 열게 되는 이 상황이 꼭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너무도 많은 집들이 서로 불편한 시선을 주고받도록 맞물려 있다. 얄궂은 현실이다.

건축법상의 조항을 잘 모르지만, 최소한 이렇게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집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아니, 생각해보면 이것은 너무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국민들의 7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는 이상, 도무지 회피할 길 없는, 눈에 뻔히 보이는 문제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현실론은 언제나 강력하다. 또, 조건에 따라 그런 거주형태를 원하는 도시민들은 얼마든지 상존한다.

결국 이는 다시 돈의 문제로 환원되고 만다. 일정정도 이상의 화폐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인간적인 주거를 포기해야 하는 곳. 바로 우리가 그렇게도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의 일상풍경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좋다는 아파트를 꿈꿔본 적은 없다. 그만한 자금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공동주택은 기능에는 충실할지 몰라도 삶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주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라다. "주택은 살기위한 기계다”라는 말을 남긴 르 꼬르뷔지에가 지금 한국에 나타난다 해도, 저 아파트의 숲을 보고 기꺼워할 것 같지는 않다.



너무 뻔 한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 같지만, 얼마 전 모종의 조사차 들렸던 농촌마을의 집들은 흔히 말하는 어메니티(amenity, 쾌적함)가 살아 있었다. 널찍널찍한 마당과 집터는 이웃들과 담을 마주하고 있더라도 충분히 개인의 공간을 보장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곳을 지키고 있는 것은 초로의 노인들뿐이었다. 도시와 지역은 그렇게 다시 이율배반적인 아이러니의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해소할 수 없는 간극을 어쩌면 좋을 것인가. 쪽방, 고시원, 반지하, 다세대……. 그야말로 사는 것 자체가 전쟁 같은 치열한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이들을 두고 삶터가 조금이라도 품위 있어 지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사치일 뿐인가.

덧붙임

안태호 님은 예술과 도시 사회연구소 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