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도 일어나서 외칠 거라는 말에
“녹색평론에서 안미선씨의 글을 봤었어요. 4대강 사업으로 영주댐을 짓는다는데 그 댐이 만들어지면 평은면에 있는 대부분 마을은 수몰된대요. 천경배 신부님이 ‘현장에서 이 한을 기록해야 한다, 저 댐을 못 짓게 할 것이고 지어도 헐라고 얘기할 거다, 우리가 못하면 돌멩이들이 일어나서 외칠 거다’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서 참 욱하더라구요. 나도 잘 모르지만 정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은경씨는 대학을 다니면서 쭉 학보사에서 활동을 해왔었다. 취재차 갔던 새만금이 요근래 많이 생각난다고 한다.
“새만금 갔을 때 그 바다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아, 인간이 정말 바다를 메꿀 수 있구나.’ 전 경북 청송에서 12년간 살았는데 부안에 가보니 같은 지방이어도 많이 낙후돼서 70년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만금 반대하는 부안 주민 한 분이 전라도 사람에겐 한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 있었으니까 방조제 공사한 뒤 장밋빛 미래를 받아들였던 거겠죠. 정치라는 게 선거 표심 얻으려고 거짓말하잖아요. 이명박이 대운하 한다고 했을 때 표심 얻으려고 그런다, 잠깐 삽질하다 그만둘 거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운하가 실현돼서 뗏목을 타고 둥둥 떠다니는 꿈을 꾼 적이 있다는 은경씨, 눈을 떠보니 하필 그 날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개인적 이익을 떠나 공동체 파괴 문제, 환경 문제로까지 바라보고 끝까지 싸우면서 반대했던 어민들도 계셨어요. 취재 갔던 날 공사 때문에 물길이 바뀌어서 고기 잡으러 나갔던 배가 뒤집어지는 사고도 있었는데,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어촌이 다 파괴된다고 생각하니 참 슬펐던 것 같아요. 1박2일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 거짓과 싸우면서 살아가겠다’고 바다와 약속을 했었어요.”
금강을 만나다
4대강 중에 은경씨가 맡은 강은 금강. 왜 금강을 맡게 되었을까? “이름이 예뻐서요.” 은경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쭉 경북에서 살았으니까 낙동강은 봐왔었고 영산강은 르포 작업할 사람들이 같이 전체 답사를 갔었어요. 금강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가보고 싶었어요.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흐르는데요, 그렇게 밑에서 위로 올라온다고 반역의 강이라고 부르기도 했대요. 그런 것 때문에 전라도 사람을 주요관직에 안 뽑았다는 속설도 있고요.”
금강에서 그녀가 담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무얼까? “생태지평에서 했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강을 우리 몸에 흐르는 피로 빗대어 얘기하더라구요. 근데 이걸 하구둑이니, 보니, 댐이니 해서 뚝뚝 끊어놓으니 안될 일인 거죠.”
“금강도 이미 하구둑이 있고, 댐도 2개나 있고, 이미 막혀있을 대로 막혀있는데 거기에 또 보를 설치한다면서 불필요한 걸 굳이 한다고 하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거예요. 금강 주민들에게 하구둑 얘길 듣고 싶었어요. 하구둑으로 막히면서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생태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이런 얘기 듣고 싶었는데, 금강 지역의 주민들 대부분이 4대강을 찬성하는 분위기라서 얘길 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처음엔 보가 설치되는 현장을 주로 가서 상류 쪽은 생각하질 않았다고 한다. 우연히 들린 블로그에서 무주에서 활동하는 금강 지킴이 활동을 하는 분의 글을 보고 연락을 드린 게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갔다가 우연찮게 만난 동네 주민, 그 분의 말이 은경씨를 붙들었다.
“4대강 때문에 왔다고 하니 저를 붙들고 분노에 차서 얘길 하시는 거예요. 자신의 땅이 4대강 사업지역에 속해있는데 보상금도 없이 쫓겨나게 될 처지라고. 하천법이 개정되면서 보상금 지급되는 것이 달라졌나 봐요. 그래서 이후에 더 얘길 들으려고 그 어르신을 다시 찾아갔었는데 반가워하시면서 당시 민간사찰 논란 때문에 자신이 낯선 사람에게 열 받아서 얘기했던 것이 잘못 될까 잠도 못자고 두려우셨다고 얘길 하시더라고요. 죄송스럽기도 하고, 이 시대가 그 시골 어르신한테까지 공포를 일으키는 시대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어요.”
은경씨는 골짝인 무주까지 4대강 사업이 올 줄 몰랐다는 주민의 이야길 들으면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뺏기는 주민들, 어떤 과정을 통해 뺏기게 되었는지 그 이야길 담고 싶었다고 한다.
“읍내에서 일하시면서 작게 농사를 지으시는데 태어나 쭉 그 동네에서 사셨대요. 내년에 퇴직하면 쭉 농사지으면서 노후를 보내려고 계획했던 게 다 틀어진 거예요. 영농 보상을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에 대한 안내 과정도 전혀 없었대요.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4대강 사업이 조감도도 없어 다니면서 깃발 꽂는다’고 얘기하시는 걸 들었었는데, 진짜 급하게 하는구나, 막무가내고 어떻게든 끝까지 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록해야 한다
“4대강 사업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었잖아요. 제가 만난 주민은 직격탄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지만 한 개인의 억울한 사정들을 담고 싶었어요. 지역에서 4대강 찬성 분위기에 반대를 해도 겉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거라는 얘길 들었었는데, 그런 걸 발언하는 용기에 지지를 보내고 싶기도 했고, 또 그 시선이 참 순수하다고 느껴졌어요. 정권이 힘없는 농민들에게 가하는 폭력, 그런 부분을 보여주고 싶고, 이 정권이 끝나더라도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은경씨에게 기록의 의미는 무얼까?
“제가 르포 작업을 하면서 만난 주민들, 그 분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는 건 어떻게 보면 제가 그 분들의 삶에 개입하는 행위인거잖아요. 그 분들의 이야기를 글로 담는다는 것, 그 자체로 책임의식이 생기게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이 사회적 행위인 거잖아요. 글을 통해 내가 발언하고, 내가 인터뷰한 취재원이 발언하고, 그것을 이름 모르는 독자들과 소통하는 건데, 내가 현장에서 보고 느낀 그 감수성과 시선을 나누고 싶은 게 큰 것 같아요. 르포를 하면서 내 삶과 타인의 삶을 나눈다고 생각하고, 또 그 르포를 접한 사람들도 자신의 삶과 타인들의 삶을 나누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연결되는 거 아닐까요?"
말하는 것의 힘
“자료를 찾으면서 인터넷 카페에 많이 들어가 봤어요. 4대강 반대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해외에 있는 분들까지 자발적으로 모금도 하고 그런 것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런 게 연대의식이고, 그렇게 힘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걸 보면서 진짜 나도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자신에게 바로 보이지 않는 것들,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멀게 느껴지는 것이 은경씨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고 했다. “저도 현장에 다녀왔지만 갔다 다시 돌아오면 또 강이 멀어지는 거에요. 꾸준히 강에 간다면 덜하겠지만 힘에 부치기도 하고, 그러다가 인터뷰 했던 것 녹취 풀다가 번뜩 또 생각나기도 하고.”
은경씨는 자신이 본 진실을 얘기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 했다. “제가 4대강 반대를 위해 무언가 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말’인 것 같아요.”
“제가 현장에서 본 것, 들은 것들을 평상시 주변 사람들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통하기도 하고, 다르게 생각할 땐 그 이유가 궁금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을 많이 시키는 편이에요. 무언가 이야기의 물꼬를 대화로써 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가령 밥을 먹다가도 채소값 얘기 나오면 4대강 사업이랑 연관 지어서 얘기하고. 채소값 오르면 월급쟁이들은 대책이 없잖아요. ‘나’와 연결된 문제이고, 그래서 일상에서 얘길 풀어가는 거죠.”
경북 청송에서 과수원을 하는 아버지한테 물어봤다고 한다. ‘만약 우리 과수원 쪽에 4대강 사업이 들어온다면 아빠는 어떨 것 같아?’ ‘어쩔 수 있나, 정부에서 하는건데’ 하더란다. 펄펄 뛸 것 같았는데, 예상과 다른 아버지의 말에 무주에서 만난 주민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국가가 하려는 것은 거역할 수 없다는 게 내면에 깔려있는 것 같아요. 만났던 주민 분 중에서 소송을 준비 중인 분도 계셨는데, ‘관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나’고 얘기하시는 분도 계셨어요. 사정이 비슷하신 분들이 같이 힘을 모으면 좋겠는데, 소송하는 과정에서 돈도 많이 들고 관 상대로 이기기 힘들다는 패배의식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참 아름답더라. 그러기에
바쁜 일상, 그래서 몇 년 만에 여행이란 것을 간 게 이번 4대강 현장에 간 것이라고 한다. 은경씨는 강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어렸을 땐 근처 강가에서 거의 놀고 살았어요. 이름 있는 관광지도 아닌데 주변 도시에 있는 사람들까지 피서철이라고 와서 휴가 보내고 그랬었죠. 그래서 그런지 풍경화 그리라고 하면 늘 강을 그렸던 기억이 있어요.”
“이번에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 강이 참 아름답구나, 시간 나면 강을 좀 보고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강이 주는 평안함이 있는 것 같아요. 금강은 구석구석 소소한 아름다움이 있더라고요. 여울이 뭔지 소가 뭔지도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유속(강이 흐르는 속도)에 따라서 물고기 사는 종류도 다르고, 주변 식물도 다르고, 날아오는 곤충도 다르고. 생태계가 그런 거구나, 자연풍경이라고 말했는데 그냥 풍경이 아니라 우리랑 더불어서 살아가고 있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을 돌아보면서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동행한 금강 지킴이 활동가의 곧 없어질 거라는 말에 ‘난 이제야 강을 봤는데’ 마음이 많이 안좋았다고 한다. 은경씨가 돌아본 지역은 생태공원을 조성한다고 한다. 자연스레 핀 코스모스, 흐르는 천을 인위적으로 일률적으로 정렬하는 것. “지역에서도 지금 이 강을 한강으로 만드는 거라고 말씀하세요. 상주에서 뵈었던 어떤 분은 앞으로 콘크리트 사발에서 잔뜩 우려낸 물을 마시게 될 거라고 말하시더라고요.”
취재를 마치고 글을 쓰고 있는 중인 은경씨가 바라는 것은 무얼까?
“제가 본 시선에 대해 소통하고 공감을 나누고 싶어요. 글을 쓸 때 전체적인 것을 보고 싶고, 그 중에서도 정말 다루어야 할 것이 무언지 분명하게 쓰고 싶은 욕구가 커요. 근데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하고 여건의 제한이 많다보니 ‘내가 이분들의 삶의 한 단면을 왜곡하지는 않을까’ 늘 조심스러움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나름 결론을 내린 것이 내가 본 만큼, 느낀 만큼, 실천한 만큼 쓰자는 거에요. 내가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그것에 충실하게 쓰는 거죠. 그렇게 결론을 내리니 타인의 삶을 취재하는 것에 조금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작업을 마치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은경씨는 현장을 지키고 있는 분들에 대한 후원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끈을 놓지 않으면서 관심을 이어가고 싶은데, 우선 작업을 마무리해야 본격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이번에 인터뷰 연락받으면서 <강은 사람들 사이로 흐른다>는 기사 꼭지 이름 보고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금강에서 만났던 주민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이야기들이 이야기들로 이어지면서 정말 강은 사람들 사이로 흐르는 것 같아요.”
덧붙임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