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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의 인권이야기] 공감들

잘려져 밑둥만 남은 나무에 아로새겨진 나이테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먼지에 덮여 있는 나이테에 담긴 살아내온 시간과 생명의 흔적들... 사람들은 무엇을 잘라내 버린 걸까? 사람들의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을 이유로 잘려나가는 수많은 생명의 시간들... “잘려져야만 드러나는 삶의 속살을 자르기 전에 공감할 수 있다면, 다양한 나이테의 무늬에 담긴 나무와 다른 생명들의 관계가 빚어내는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생명으로 공감한다면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에 사람들이 여전히 쉬고 있을텐데”라는 생각들이 맴돈다. 쓰임새의 관계에는 공감이 없다. 생명의 관계에는 공감이 흐른다. 나이테는 공감과 관계의 결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람살이 몇 장면이 떠오른다.

장면1.

A가 B에게 “교육급여 신청 대상이라고 교육급여 신청하라는 통지문이 수차례 오네”라고 했더니 B가 “잘됐네...”라고 하더란다. A는 B가 장학금으로 오해했나 싶어 설명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설명하는 것이 힘들어서도, 자신의 삶의 처지가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도 아니었다.

'공감'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고 한다. 서로의 언어가 달랐단다. 서로의 생각과 삶이 이어지지 않았단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단절을 만났단다. 일의 관계가 아닌 삶의 관계에서만이 공감이 흐른다는 생각이, 공감은 삶이 만날 때 솟아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A의 이야기를 들으며 술 한 잔을 들이키다 ‘나는 누구의 언어로 말할까? 어떤 이들의 삶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나의 공감이 상상하는 세상은 누구의 어떤 세상일까?’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장면2.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장애인복지일자리를 참여한 기초생활수급 장애인 39명은 2014년 11월 갑작스러운 환수통지와 부정수급자라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환수금액은 7만 원에서 최고 420여만 원에 이르렀다. 구청에서는 2014년 말부터 환수조치를 진행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구청에서 수급비를 깎겠다는 으름장에 지인에게 돈을 빌렸고 누군가는 그 마저도 여의치 않아 생계비를 매달 깎이고 있었다.

한 장애인 수급자 예를 보면 ‘환수금액을 내지 않으면 매달 생계급여 378,466원을 차감하겠다. 그러니 환수금액을 납부하라’는 처분사실을 공문과 유선으로 통보받았다. 매달 38만여 원(환수조치금액 416여만 원)을 11개월 동안 차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분한다는 사전 통지서를 보내기 전에 이미 1개월분의 생계비를 수급자의 동의 없이 공제했다. 다행히 장애인단체와 인권단체들의 적극 대응과 문제제기로 구청에서 구제조치를 약속하고 이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장애연금을 포함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남은 수급비로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80여만 원의 삶에게 38만 원을 내놓으라니!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80만 원의 삶을 상상할 수 없는 행정, 80만 원의 삶에 38만 원의 무게를 느낄 수 없는 공무원의 일처리... 수급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삶을 공감하지 못하는 행정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느 하나 배제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니 ‘바다’가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낮으니 모든 것이 모여들지 않을까? 모든 고통의 소리와 삶이 모이는 삶의 가장 낮은 곳, 삶의 고통과 생존의 절박함이 층층이 쌓여 무겁게 내리누르는 곳,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의 삶을 만나고 공감하는 것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바다가 아닐까... 공감이 변화의 시작이라면, 누구와 공감하는 게 모두의 변화의 시작일지도 한 번쯤 곱씹어 봐야 한다.
덧붙임

동주 님은 광주인권운동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