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회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평화’다. 이때 평화는 마치 ‘고요’, ‘침묵’과 같은 말로 쓰이는 것 같다. 어떠한 소음이나 폭력이 없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평화로 이야기하고, 평화 집회도 어떠한 물리력도 동원되지 않는 집회를 말하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지난 12월 5일 집회의 경우도 마치 그런 ‘평화집회’를 실험하는 자리인 것처럼 이야기되었고, 실제 경찰과 별다른 충돌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집회를 평화집회로 높이 평가하는 언론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예전에 대안학교 교사 면접을 볼 때 받은 질문 중 하나가 ‘평화란 무엇인가’였다. 그때 난 한 공동체 내에서 다양한 갈등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이것이 특정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누군가를 굴복시키지 않고 모두 함께 어울려 풀어내는 상황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렇기에 평화는 어찌 보면 수다스러운 난장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하고... 학교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이다. 그렇게 해서 조용해진 학교는 사실 제대로 들여다보면 집단 따돌림 등 갈등 상황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수많은 이들의 자살과 각종 사고로 우린 뒤늦게서야 확인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얽혀 살아가면서 아무런 갈등도 없길 바라는 것은 정말 바람을 넘어서지 못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함께 부대끼며 사는 와중에 갈등 상황은 생겨날 수밖에 없음은 그동안 살아오며 참 많이 겪게 된다. 늘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 없는 그런...
그렇기에 민주주의를 내건 사회에서 집회를 비롯한 다양한 표현의 장이 보장되는 게 평화를 위한 기본적인 권리일 수밖에 없다. 집회는 한 사회에 얼마나 많은 다른 의견들과 갈등이 있는지를 드러내고 이를 함께 해결해나가자는 요청을 담은 집단행동으로, 평화의 다른 표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들이 닫히고 있다. 언론은 다양한 갈등을 확인하고 그 해결책에 대한 여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이지만 점점 정권의 일방적인 목소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바뀌어 버렸다. 사적인 공간이라 여겨졌던 SNS와 각종 메신저들도 압수수색, 감청 등으로 인해 위축되고 있음은 이미 카카오톡 집단 이탈 사태 때 확인되었다. 또한 공무원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교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해서도 안 되는 존재가 되었고, 성소수자 등은 차별의 시선이 아직 강한 환경에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이처럼 일상적인 공간에서 갈등은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그 빈자리는 정작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고통을 만들어낸 기성 권력과 체계를 옹호하는 이야기들로 메워지고 있다. 그렇기에 상처 입은 사람들은 거리로 나오게 된다. 말할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함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집회는 그 의미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집회에 대한 경찰의 탄압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법원은 그동안 대체할 수 없는 다른 수단이 없을 때 한해 제한이나 금지, 차벽 설치 등을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같은 맥락에서 집회 장소와 행진 경로 등은 집회의 목적 달성에 있어 중요한 부분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광화문 사거리를 넘어서는 행진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표현의 장이 막힌 상황에서 광화문 등을 둘러싼 차벽은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나락인지를 보여주는 공간이 되었고, 집회를 통해서라도 말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마저도 막아서는 권력의 거대한 폭력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결국 그 집회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를, 공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분노가 또다시 막혀버린 집회로 인해 응집되어 폭발한다.
정말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집회가 아니라 모든 것이 허용되는 집회를 원해야 하지 않을까. 각자의 목소리가 함부로 막히지 않고 모든 공간에서 자유롭게 소통될 수 있는 사회를 꿈꿔야 하지 않을까. ‘폭력’이라는 현상에 주목하기보다 그런 상황을 만든 환경에 주목해야 정말 우리는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기고서 보여 지는 ‘평화’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오히려 모두에게 폭력이라는 우리의 공감대 속에 다시 평화에 대한 더 너른 이야기들이 우리 사이에서 오고 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