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합민주당이 5.18민주화 운동을 폄하한 글을 올린 일간베스트 저장소(아래 ‘일베’) 사이트 운영자에 대해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고소고발 등 법률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보수논객과 일베는 ‘표현의 자유’를 방어수단으로 삼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마치 종교적인 교의를 지키려는 성스러운 전투를 하고 있는 것처럼.
혐오발언은 표현의 자유로 옹호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란 누구나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는 기계적 자유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는 위치에 놓인 이들의 목소리와 외침이 확장되면서 보편적 인권으로 위치를 잡아갔다. 따라서 권력을 가진 자와 사회적 소수자의 다른 위치, 사회적 권력 관계를 무시한 채 표현의 자유를 기계적으로 동원하여 강자의 억압과 차별, 불의를 정당화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있는 정체성을 혐오하고 공격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전면으로 어긋난다.
그런 맥락에서 일베에서 쏟아내는 여성, 이주민 등 소수자를 차별과 혐오로 대상화하는 어떤 것도 표현의 자유로 옹호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마치 이 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어떤 사회적인 관계와 권력도 고려하지 않는 초월적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 표현의 자유를 누가 어떻게 규제하고 있는지, 그 실태와 조건, 구조를 성찰하지 않은 채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만큼 공허한 것이 있을까? 우리 사회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없다. 어떤 이야기들은 구조적으로 들리지 않게/못하게 만드는 국가와사회 권력의 힘이 작동되고 있지 않은가.
일베의 선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것
광주학살의 발포 명령자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검찰은 아무런 반성이 없고, 학살자 전두환은 사면 받아 당당하게 대한민국 육군의 사열을 받으며, 국방부는 북한 개입설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과거 인권침해에 관해 불처벌이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광주는 단지 보상금 얼마간을 쥐어진 채 더 이상은 침묵할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 시민들의 시신을 홍어 택배로 비하하거나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일베의 선동은 권력자들의 학살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표현의 자유로 옹호될 수 있기는커녕 오히려 그 자체로 인종주의적 폭력이며 차별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통합민주당, 강제적 수단에 앞서 반성부터 해야
또한 사이트 폐쇄에 고소·고발까지 법적인 규제를 들고 나온 통합민주당은 무엇보다 일베 현상에 대해 근원적 책임이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통합민주당은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이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음에도 학살자를 사면하는 등 광주 시민들의 염원을 받아 안아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는 일에 태만했다. 일베 현상이 통합민주당을 비롯한 민주화 세력들의 위선으로부터 자라났다는 점을 뼈아프게 느껴야 한다. 이명박 정권 이후 표현의 자유를 급격히 축소시킨 법제들이 민주당 집권 당시 도입되거나 시도되었다는 점을 반성한다면, 당장 문제가 되는 일베를 제압하려고 표현의 자유에 독으로 돌아올 수 있는 즉자적인 강제 수단을 모색하기보다는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해야 했다. 민주당은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부터 차분히 듣기를 바란다.
혐오발언에 대해 법적인 규제, 차별금지법으로
지금 일베논란으로 촉발된 혐오발언에 대한 법적 제도적 방안을 고민한다면 그것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혐오표현으로 인해 어떤 사회문제가 발생하는지 우리 사회에 논의를 촉진하고 다양한 구제수단(조정, 화해, 시정권고 등)을 통해 혐오표현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과연 차별이 무엇인가를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소통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차별로서 해석하는 가운데 차별에 관한 공통의 근거와 기준점이 나올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차별과 폭력에 맞서 싸우고 이겨낼 수 있는 사회 공동체의 힘이 될 것이다. 사회적인 소수자라는 이유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차별과 폭력을 ‘차별과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자. 그 힘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