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새로운 치과에 다녀왔습니다. 기존에 다니던 치과에서 오른쪽 윗 어금니를 손 봐야 한다며 큰 비용이 드는 치료를 제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를 신경 치료하고 크라운까지 씌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때우거나 씌우지 않은 치아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이미 많은 치료를 받은 만큼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론에서 접한 소위 ‘양심’ 치과에서도 같은 진단을 내릴까 싶어 절박한 마음에 찾아갔습니다. 치과 의사는 제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반듯한 인상에 그렇지 못한 말들을 쏟아내었습니다. 치아 구조가 부실하기 때문에 오른쪽 윗 어금니가 음식물을 씹을 때 강한 압력을 받게 되고 따라서 치료를 해도 충치가 재발해 나중에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굳이 돈 들여 치료하기보다 그냥 놔둔 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조를 바로 잡으려면 어찌 해야 하냐고 물으니 교정으로 치아 사이를 벌려 임플란트를 새로 하나 박는 대공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많이 당혹스러웠습니다. 14살에 시작한 교정 치료와 치료 과정에서 발치한 오른쪽 위의 작은 어금니가 구강 구조를 부실하게 만들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설명을 들으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좌절감에 휩싸였지만 충치가 구조에 의해 생긴다는 점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제까지 구조적인 관점에서 사회 현상에 접근하고 비판해왔는데 정작 제 구강 구조에 대해선 무지했다고 생각하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한동안 충격에 휩싸여 있다가 그 치과 의사가 쓴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 앞에서 저는 또 한 번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책에 따르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과 올바른 양치가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간절한 마음에 이를 실천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 뒤로 삶의 낙으로 삼던 야식을 끊고 정확하게 삼시세끼만 먹고 있습니다. 배고프면 뭐든 집어먹던 습관도 버려 양치한 뒤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습니다. 최대한 치아를 필요할 때만 쓰고 항상 청결하게 두어 충치의 진행을 늦추려는 전략인 셈이죠. 이런 생활이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에는 밤만 되면 뇌가 보내는 신호에 맞서느라 고군분투했지만 이제는 나름 익숙해져 괜찮아 졌습니다. 대신 밥을 먹을 때 정말 많이 먹습니다. 치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이런 생활 방식이 건강에도 도움이 되겠거니 하고 위안을 삼아 봅니다. 실제로 가공식품을 줄이고 채식 위주로 식단을 마련해 먹다 보니 건강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같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가 깨달은 치아 구조와 관리의 중요성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사회 구조가 잘 조직되어야 모든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듯이, 치아 역시 구조가 잘 잡혀 있어야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28개에서 32개 사이의 치아가 오른쪽과 왼쪽에 동일한 개수대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이 가장 튼튼한 구조라고 합니다. 만약 치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으면 그 치아 역할을 주변 치아가 동시에 부담하게 되어 빨리 상한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오른쪽 위에 작은 어금니가 하나 없어 뒤에 큰 어금니가 이중 부담을 지고 있습니다. 씹는 힘이 더 가해지는 것이죠. 평상시의 관리도 치아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식사하고 가급적 3분 이내에 3분 이상 양치를 하고 양치를 하기 전에는 치실을 활용해 치아 사이사이를 정리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너무 세게 닦지 말고 양치를 다 한 뒤에는 여러 번 입을 헹궈 입 안에 치약 성분을 안 남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여러 군데의 치과를 다녀보세요. 견적이나 처방이 다를 수 있으며 치과의 과잉 진료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2.
일주일 전에 다녀왔던 집회 이야기도 짤막하게 해보려고 합니다. 햇볕이 쨍쨍하던 5월 30일, 사랑방의 활동가 분들과 함께 P4G서울정상회의 대응 액션에 참여했습니다. 몇 년 만에 참여하는 집회라 신나는 마음으로 집회 장소인 청계천에 도착했고 얼떨결에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1조였고, 한 조원 분께서 제게 맨 앞에 서서 녹색 깃발을 펄럭여주길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일요일 오후, 거리두기로 9명씩 짝지은 행진은 평화로웠습니다. 구호를 외치지 않을 때는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처럼 저도 꼭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P4G 행사가 열리는 DDP 건너편에 모든 참가자들이 도착한 후에는 다양한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든 생각은, 국가가 나서서 기후위기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골칫거리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온실가스를 공격적으로 감축해도 모자랄 판에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나 공항이 웬말일까요.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기후위기가 야기된 구조적인 원인이 자본 축적에 있다면 국가는 기업들을 주요 파트너로 삼아 기후 대응에 나설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기후 취약계층을 적극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곧 죽어도 경제 성장은 포기하지 못하나 봅니다. 그게 우리가 그날 한자리에 모인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는 기후위기를 대응함에 있어서 구조적인 접근방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온실가스라는 충치를 치료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충치를 만들어내는 경제 구조를 바로 잡고 충치로 인해 불공평하게 고통 받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그날의 행사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분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더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사랑방의 활동가분들과 집회에 참여할 수 있어서 제겐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정의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민들레 홀씨처럼 멀리 퍼져 나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