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의 활동가로서 여러분께 부치는 편지가 벌써 두 번째네요. 아시다시피 지난 3월과 지금 8월 사이, 사랑방이라는 장소와 제가 맺는 관계는 달라졌습니다. 8월 1일 10시에 사랑방의 문을 열며 제게는 상임활동가로의 시간이 새롭게 시작되었죠. 그래서인지 다소 정신없는 하루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생각하거나 신경 쓸 일이 많아질수록 덤벙대거나 깜빡하길 잘 하는데요, 근래에도 크고 작은 물건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어깨에 맬 수 있는 검정 장우산, 앞머리를 자를 때 자주 사용하던 미용 가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인상 깊었던 대사를 적어놓은 종이 쪼가리 등.
그리고 하나 더, 이 편지를 쓰면서 잃어버린 물건이 있습니다. 집 가는 길 지하철에서 이 편지를 쓰다가 하마터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뻔했는데요. 어찌어찌 제때 내려서 다행이라며 한숨 돌렸지만, 결국에는 허둥지둥 댄 값을 치르게 되더라구요. 그렇게 꼬박 4년을 함께 한 지갑,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것들과 갑작스럽게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노점에서 군것질하려고 모아놓은 천 원짜리 지폐들과 서너개의 카드들, 대한민국의 필수템 주민등록증,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친구가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 제 가방 안에 마늘빵 과자를 몰래 보너스로 넣어준 동네 빵집의 쿠폰. 납작한 지면에 꾹꾹 눌러 담았던 추억들이 아쉬워 한참을 서성이다가, 마음을 다잡고 환승 개찰구를 통과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받아들이며.
살면서 제가 손쓸 수 없는 여러 이별을 맞이하며 뼈저리게 알게 된 사실은 ‘새로운 시작’이 항상 ‘새로운 끝’과 함께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새로운 끝’은 이전에 제가 선택했던 새로운 시작이 맞이하게 된 끝이기도 하고, 지금 제가 선택한 새로운 시작이 맞이하게 될 끝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시작의 의미라거나 끝이 오기까지 축적되는 시간들보단 단지 끝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모든 게 의심스러웠고, 불안해서 미련해졌고, 결국엔 무의미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까지 않는다고 해서 통조림에 든 파인애플의 유효기간이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작의 순간을 떠올리며 최선의 작별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은 유효기간까지의 순간들을 잘 조리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끝에 후회가 남지 않기 위해 지금 여기 제가 할 수 있는 걸 고민하는 것이겠죠.
“나는 늘 끝나는 순간에 대해 생각한다. 바라는 끝이 있어. 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으면 좋겠어, 하고 기대하는 장면들.
나는 아주아주 행복한 사람으로 죽을 거야. 아무도 그걸 못 막을 거야.”
- 김지연, 「사랑하는 일」 중
언젠간 제게도 여러분께 사랑방의 활동가로서 마지막 편지를 보내는 날이 오겠죠. 마지막 편지의 맺음말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약속이라면 좋겠습니다. 그건 결국 사랑방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끝을 맞이하기까지 제가 후회 없이 활동을 했고, 나아가 더욱 단단해진 희망을 만들어갔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그리고 제가 바라는 새로운 끝으로부터 저는 시작하려고 합니다. 소란을 피우고, 싸우고, 넘어지고 또 쓰러질 테지만 결국엔 웃고. 무엇보다도 믿고 사랑하려고 합니다. 저를, 당신을,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미움을 사랑으로, 수치심을 이해와 인정으로, 적대를 연대로 바꿔낸 끝을 만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