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안식년을 갖게 됐습니다. 막연하긴 하지만 인생 계획에 없던 시간입니다. 주변에 말하고 다니기도 했지만 (그래서 매우 민망하지만) 2024년부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아닌 다른 시간을 예비하고 싶었거든요. 그만두는 고민을 꺼내놓으면 다들 다른 하고 싶은 게 있는지를 물어보곤 했는데요,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끝'이라는 기한을 갖고 싶었어요. 저라는 사람의 성향상 (다른 말로는 '게으름'으로) 끝이 있어야 다른 시작을 그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날이었어요. 인권운동사랑방 30년 중 15년, 어찌하다 보니 절반의 시간을 함께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떠날 때를 알려주는 신호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제게 '사랑방 활동가?'라고 할 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는데요, (지금은 다른 곳에서 운동을, 삶을 일구어가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이들이 사랑방에서 머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제가 보내고 있다는 게 무겁게 그리고 버겁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끝을 정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20년 동료들과 쉼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랑방의 휴가제도를 살피는 시간이 있었어요. 사랑방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조직에서 뒷받침하는 시간으로 안식년의 의미를 확인하면서 그런 시간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안식년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었습니다. 미리 말하고 정리할 준비를 서로 할 수 있다면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일방의 마음만이 앞섰다는 것을 이후에야 알게 됐던 것 같아요. 한편으론 제게 지난 첫 번째 안식년이 그랬듯 묵혀두었던 질문들을 마주하고 통과하는 데는,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거든요. 누구에게나 요청되어야 할 시간인데, 그런 기회를 닫아버리는 거일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후회하기도 했었습니다.
돌고 돌아 2024년 2월부터 일 년간 안식년을 가집니다. 연말·연초 평가 논의 일정이 빼곡했는데요, 바쁜 일상에서 평소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고 안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됐던 것 같아요. 작년 한 해 2년 치를 산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동료들이 짊어져 온 무게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나누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올해도 그 무게가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 걱정되지만, 안식년 잘 쓰고 오라고 하네요.
운동이, 조직이 무얼까 할 때 '이어달리기'가 떠올려지곤 합니다. 앞서 뛴 이의 바통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면서, 내 바통을 받아줄 이를 믿으며 모두가 나누어 달리는 이어달리기랑 닮은꼴이 운동, 조직인 것 같습니다. 올해는 '체제전환'이라는 닻을 올리며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하고 있는데요, 동료들이 일구어갈 시간 위에서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준비의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사랑방 운동과 조직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의 동료들과 바통터치가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궁리하고 움직여갈 날을 기약하며, 안식년 잘 다녀오겠습니다.
2/1(목)~2/3(토), 3일간 진행된 「2024 체제전환운동포럼」 준비단까지 함께한 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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