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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꼼지락거리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까마득해진 것 같습니다. 제가 안식년 복귀를 한 지 반년 남짓에 불과하고, 작년 이맘때쯤엔 아르헨티나에 있었다는 사실을요. 복귀를 앞두고 가장 무서운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체제를 전환하자고 말하는 동료들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느새 안식년이 까마득하게 녹아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녹아드는 과정이 가히 부드럽지만은 않았습니다. 제가 활동하며 가장 두려워하고 난관이 많았던 활동이 사랑방의 글쓰기 ‘인권으로 읽는 세상’이었는데요. 잘 모르는 주제는 찾아보고 배워가며 내 글만이 아닌 동료의 글을 함께 살피는 편집 담당을 두 번째 맡으며 분에 넘치는 글쓰기 담당을 계속하고 있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안산에서 공단 노동자를 조직하고 지역을 조직하는 활동을 하던 제가 올해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담당하며 기존에 가진 틀로 해석하기 어려운 조직화를 시도하며 열심히 몸을 굴리기도 하는데요. 배우고 또 배우지만 어느새 배우기만은 할 수 없는 역할임을 절감하며 땀나게 뛰어다니니 어느새 11월을 지나 보내고 있네요.

그렇게 뛰어다니면서 숨이 차오를 때 무엇보다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가 무엇 때문에 사랑방 활동을 하게 되었나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사랑방 활동을 시작할 때 상임활동가라는 것을 얼마나 하게 될지는 몰라도 안식년 즈음까지는 해보면서 나의 활동을 전망을 가늠하고 점쳐봐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안식년까지 다녀오고 나니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이 없어도 제가 해야 하는 역할, 기대 등에 대해서 달라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전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이제는 그 말, 주장들을 실천하고 조직하기 위해 움직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달까요. 다르게 이야기하면 숨차게 뛰어다녀야 하는 게 제가 지금 활동하며 마주한 조건이라면, 왜 뛰어다니는지는 분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에 사랑방 활동의 처음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지요.

돌이켜 생각하면 저는 사랑방의 토론을 좋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긴 회의도 끝나지 않는 토론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사랑방이라는 조직이 가진 고유한 토론 문화는 여전히 좋아합니다. 다루어야 하는 사안의 옳거나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현실의 쟁점을 가지고 추상적인 가치의 논쟁까지 연결된 맥락을 확인하는 토론. 반대로 뻔하게 구도가 형성되어 있는 쟁점이지만 그 쟁점이 담고 있는 현실의 복잡성을 충분히 고민하며 발 딛는 입장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를 나누는 그런 토론 말이지요. 이런 고민과 관점을 나누고 토론하는 사랑방의 동료 관계가 저의 활동 동력이었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너무 열심히 토론하고 북돋아서일까요. 사랑방 활동가들이 서로 참 너무 바쁩니다. 그저 바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 발짝씩 서로의 고민을 내딛도록 독려하다 보니 어느새 사랑방의 동료들 사이에 활동의 자리가 넓어지고 간격도 그만큼 벌어진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옛말로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분명 운동의 고민은 나누는데 서로를 살피는 시간은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 올해 ‘청진기팀’이라고 사랑방 동료들 간의 관계를 사랑방 운동에 대한 고민과 연결지어 가며 현재를 잘 진단해보자는 팀을 만들었는데요. 대외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팀이 아니다 보니 너무 수면 아래서만 고민을 이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랑방 동료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지금의 고민과 앞으로의 전망을 교차시키며 앞으로 사랑방이 움직여 나가는 방식을 업데이트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청진기 팀이 조금은 잘 안 보여도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며 저에게도 동료들에게도 의미 있는 과정을 차근히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서로의 고민과 토론은 계속해서 잘 이어가되 관계를 살필 틈도 함께 만드는 사랑방을 잘 만들어서 사랑방에 매력을 느끼는 동료도 더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야 저도 숨이 차더라도 좋은 동료들과 계속해서 서로에게 힘 받고, 또 내어주는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아직은 이 팀이 어떻게 현재를 진단하며 공동의 전망을 그려나갈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숨차지 않게 길게 보며 이어가는 중입니다. 어느 순간엔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하기도, 어느 순간에는 가랑비에 옷 젖은 줄 모르게 변화를 만들며 사랑방 운동이 갱신하고 재생산되는 과정이 있기를 기대하며 꾸준히 진행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