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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하루소식 1천호 기획-문민5년 인권정책 평가> ③ 후퇴하는 주거권

“생존권 문제가 성폭행과 죽음으로”


1. 강제철거는 넓은 의미에서 인권, 즉 주거권을 침해하는 폭력임을 재 천명한다. 2. 정부는 강제철거 관행을 없애기 위한 모든 수준에서의 필요한 조치를 수행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특히 강제철거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의 정부는 삶의 자리를 즉시 제공해야 한다.

결국 한 여자의 윗도리를 벗기고 저희들끼리 히히덕거리며 젖가슴을 만지는 등의 추행을 시작했다. 이에 저항하자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집단으로 짓밟는 등의 폭행을 하여 실신 지경에 이르자, 개 끌듯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 아랫도리마저 벗기고 구둣발로 차는 등… 이를 말리는 여자에게 폭력을 휘둘러 벽에 머리를 부딪쳐 실신케 한 뒤에 음부를 움켜쥐고 뒤흔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앞의 내용은 94년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문에서 옮긴 것이고, 뒤의 인용문은 지난 9월 30일 서울시 성동구 행당 1-2지구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를 고발하는 주민들의 유인물에서 따온 것이다.

유엔의 결의문은 주거권을 인권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강제철거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유엔은 96년 이스탄불에서 열린 세계주거권회의에서 이를 더욱 발전시켜 모든 사람이 적정한 주거에 살아갈 권리를 인정했으며, 최저주거기준을 보장하는 국가의 의무를 명문화했다. 한국 정부도 이런 국제적인 흐름에 따라 주거권을 인정한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기에 이르렀다.


철거용역업체 등장

하지만, 위의 유인물에서 보듯이 철거현장에서는 매번 강제로 철거가 자행되고 있으며, 노태우 정권 때까지도 인정하던 공공임대주택(영구임대주택)의 건설을 중단하였다. 특히나 철거 현장에서 일어나는 빈번한 폭력은 이제는 단순한 철거를 위한 수단을 넘어서 인간의 생명권마저 침해하는 단계에 이른 지 오래다. 즉, 철거용역업체에게 행정대행권자의 권한이 주어지면서 재개발 사업업체로부터 철거시한을 독촉받는 철거용역업체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거를 단행한다. 폭력전과자들을 주축으로 하는 철거반들이 여성에 대한 성폭행을 수시로 자행하고, 96년 2월의 용인군 수지면, 97년 7월의 서울 동대문구 전농3동 지역에서의 철거민 사망과 같은 끔찍한 사건도 발생하게 되었다.


구청․경찰, ‘철거폭력’ 방조

이런 철거용역업체 중에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업체가 바로 (주)적준용역(사장 정숙종)이다. 적준은 서울시의 자료에 따르면 97년 4월 현재 시행중인 주택재개발 사업 96개 지구 중에서 42건을 입찰받았다. 서울시 재개발 현장의 거의 50%를 적준 한 업체가 독점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철거용역업체의 이런 폭력성은 행정관청과 경찰의 방조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구청직원이나 경찰은 외부 인력을 차단한 속에서 오히려 철거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이에 맞서 주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은 80년대 이래 철거반대투쟁이 주종을 이루었다. 철거반대투쟁은 87년 민주화운동이 최고조로 달했던 때에는 공공임대주택을 쟁취하기도 했지만, 이후 사회 전반의 보수화 경향에 밀려 그간의 성과는 모두 빼앗겼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시에서 4만2천호의 판잣집이 헐렸고, 이곳에 살던 주민 40여 만 명이 산동네를 떠났지만,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돌아온 경우는 3%도 되지 않았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의 한 재개발 구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개발 이익이 1백82억원인데, 여기다 시세차익을 보태면 1~2천억원의 개발이익이 재개발 사업을 통해 발생한다. 재개발 사업이 주민들의 생존과 주거환경이 개선이라는 관점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개발이익을 노리는 사업체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데 문제의 근본원인이 있다. 철거폭력도 이처럼 개발이익을 둘러싼 재개발조합과 재개발 사업체, 철거용역업체간의 삼각관계에서 발생하게 된다.


세계주거권회의의 약속

이처럼 문민정부에서의 주거정책은 오히려 주거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철거민들은 가수용단지마저 얻지 못한 채 노숙으로 지내다 결국 최빈민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처지에서 “모든 개발과 계획은 인간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각국의 토지, 기후, 환경 등의 상황에 따른 최저 주거 기준을 정해 정부가 최소한의 주거 환경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스탄불 세계주거권회의에서 주장한 민간단체들의 주장은 먼 미래, 남의 나라의 일로만 여기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