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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2] 인권에 기초한 주거지표 개발 시급

주거지표에 관한 국제·국내적 논의 분석

자고 나면 올라가는 집값 못지않게, 자고 나면 쏟아지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서 옥석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이들 정책이 실제로 ‘주거권’ 실현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떤 기준으로 입안되어 어떤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결정되는지 확인할 길도 막막하다. 이럴 때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주거권’에 기초해 평가할 수 있는 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무수한 정책 속에서 정부가 표방하는 ‘서민의 주거안정’을 점검하면서 주거권 실현을 위한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주거 상황은 주거권 침해로 연결된다. 서울의 포이동 모습.

▲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주거 상황은 주거권 침해로 연결된다. 서울의 포이동 모습.



인권지표, 권리이행을 위한 필수 요소

일반적으로 사회지표란 “가치 및 목표와 관련하여 현재 우리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계측하고, 특정한 정책내용을 평가하고 결정할 수 있는 통계 및 여타의 증거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유엔은 인권 실현의 척도로서 ‘인권지표 개발’에 관한 논의를 오랫동안 진행해왔다. 국제인권규약을 비준한 당사국은 규약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이행할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구체화하는 방안 중에 ‘인권지표’는 권리의 실질적인 이행을 위해 필요한 요소이다. 가령, 국가가 주거권 실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의 목표를 세우고 시간단위계획(time-bound plan) 속에서 “언제, 어떻게 주거권 실현에 도달할 것인가에 관한 계획”을 작성하는 과정이 인권지표 개발에 해당한다.

유엔의 논의에 비해 국내에서 주거권에 기초한 지표개발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다. 그 이유는 사회권이 아직 규범적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구체적인 권리를 도출하는 작업이 미약하고, 이에 따른 국가의 책임을 묻는 작업 역시 미진한 탓이다. 그럼에도 인권지표 개발은 △담론에 머물러 있는 권리를 구체화하고 △양적이고 질적인 권리침해를 드러낼 수 있으며 △국가가 이행해야할 구체적인 책임을 목록화 하는 등 사회권 실태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의 틀을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표는 인권 정책으로 유도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고, 인권적으로 가장 시급한 정책을 정부에 요구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주거권에 기초해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주거권 일반논평을 중심으로 마련된 주거지표를 소개하고, 국내 주거통계가 갖는 한계를 비판하고자 한다.

주거권 지표의 내용

주거권 지표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주거권에 관한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일반논평4 적절한 주거’와 ‘일반논평7 강제철거’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유엔 주거권프로그램(UN Housing Rights Programme)의 주거권 모니터링(Monitoring Housing Rights, 2003)에서는 ‘적절한 주거’와 관련하여 일반논평4의 구성요소를 중심으로 아래와 같은 지표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점유의 안정성’은 점유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강제 퇴거, 괴롭힘, 기타 위협으로부터 법적인 보호를 보장받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점유의 법적 형태와 상관없이 주거 자체의 중요성을 존중하여 현재의 주거상태를 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지표로는 △도시재개발·토지강제수용 등으로 주민들이 대안적인 조치 없이 강제철거의 위협 속에 놓여있는 사람의 수 △공공임대주택에서 임대료·관리비 등의 연체에 따른 퇴거자 수 △전반적인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해 현재보다 하향 이주하는 사람 수 등이 점유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사례에 포함될 수 있다.

빈민현장활동 참가자들은 공공임대주택 혹은 아파트를 요구했다.

▲ 빈민현장활동 참가자들은 공공임대주택 혹은 아파트를 요구했다.



둘째, ‘문화적 특성의 보호’란 주택 건축 양식, 사용된 건축재료 및 건축 관련 정책이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고 주거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주거 개발과 현대화를 향해 추진되는 활동은 주거의 문화적 측면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화적 측면에는 공동의 주거형태에 대한 경험과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의 관계도 포함된다. ‘문화적 특성의 보호’를 지표로 측정하는 일은, 질적인 성격이 강해 어려움이 있지만, 개발정책 과정에서 지역사회 공동체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민의 재정착율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최저 주거기준의 확보’에서는 ‘적절한 주거에 관한 기준설정’이 중요하다. 적절한 주거는 거주자에게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고 추위, 습기, 더위, 비, 바람, 기타 건강에 위협이 되는 요인, 해충으로부터 거주자를 보호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된 지표로는 주거의 질적 측면에서, △1인당 주거면적 변화 △3인 이상 단칸방 거주비율 △전체 주택 중 수세식 화장실, 부엌, 목욕시설 보급비율 및 그밖에 주택건설 및 인·허가에 있어서의 변화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넷째, ‘적절한 주거기반시설 및 서비스의 보장’은 건강, 안전, 편안함, 영양 상태에 필수적인 특정 시설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적절한 주거의 권리의 모든 수혜자는 천연자원, 공동자원, 안전한 식수, 요리·난방·조명에 필요한 에너지, 위생, 세면시설, 음식저장수단, 폐기물 처리시설, 하수시설, 비상 서비스에 대한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주거권이 단순히 물리적 주택에 한정하지 않고 관련한 기반시설 및 서비스가 함께 고려되어야 하며 환경, 건강 및 위생, 에너지 부분에서의 권리를 포괄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지표로는 저소득층이 단전·단수를 경험하는 ‘전기, 물, 가스등에 대한 체납가구의 비율’등이 중요하게 검토될 수 있다.

다섯째, ‘접근 가능성 및 취약계층의 우선보호’는 주거가 모든 사람에게 접근 가능해야 하고, 특히 권리가 쉽게 침해될 수 있는 집단에게 적절한 주거권의 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인, 아동, 장애인, 불치병환자, HIV·AIDS 감염인, 만성질환자, 자연재해의 피해자, 재해 다발 지역 거주자에게 주거영역에 대한 일정 정도의 우선순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적절한 주거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임시적인 주거(판잣집, 비닐집, 움막, 동굴, 건설공사장 임시막사, 업소의 잠만 자는 방, 쪽방, 시설, 고시원)에 거처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지표에 포함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지표로는 △홈리스(주거가 불안정하고 적절한 주거권을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와 홈리스에 대한 제도적 주거 보장 장치의 유무 △저소득층에 대한 공공 주택의 확보 및 접근 가능성의 여부 △주택 등 건물에 대하여 장애인 등 이동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의 법적규정 여부가 중요하게 고려될 수 있다.

여섯째, ‘경제적 적절성’은 개인 또는 가구가 주거에 쓰는 재정적 비용이 다른 기본적 생필품을 확보하고 충족시키는 것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수준을 의미한다. 당사국은 일반적으로 주거 관련 비용의 비율이 소득 수준에 적합하도록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고,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주택 보조금 및 주택 수요를 적절하게 반영하는 주택 금융의 형식과 그 수준을 확립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지표로는 △연소득대비주택가격(PIR) △월소득대비임대료(RIR) △전체 공공부문임대주택의 비율 변화 및 가격변화 △거주가능 계층의 경제적 적절성 △주택 및 토지관련 지니계수의 추이가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적당한 위치’는 적절한 주거공간이 직장, 의료서비스 기관, 학교, 탁아시설 및 기타 사회적 시설에 근접한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출퇴근의 시간적, 재정적 비용이 빈곤가정의 지출에 있어서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는 대도시나 외곽지역에 모두 적용된다. 이와 관련된 지표로는 △영구임대주택의 위치 △통근거리 등의 변화가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주거관련 통계, 추상적 수준

국내에서 정부 관련기관이 생산하는 주거관련지표는 대표적으로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 <사회통계조사보고서>, <주택업무편람>, <주택도시통계편람> 등 4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통계청이 5년마다 전수조사를 통해서 생산하는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는 주거부문에서 사용방수, 점유형태, 아파트·단독주택 등 주거시설형태, 면적, 부엌·화장실·목욕시설을 일컫는 편의시설 등을 담고 있다. <사회통계조사보고서>는 역시 통계청이 그 조사주체이기는 하지만, 표본조사를 통해 매년 생산하고 있는 지표이다. 주거부문에서 주택소유비율, 주택마련시기, 결혼 후 내 집 마련까지의 이사 회수, 원하는 주택형태, 원하는 입주형태, 현 주택 거주년 수, 현 주택의 상태, 주택에 대한 만족도 및 불만이유, 거주지역에 대한 만족도 및 불만이유 등을 조사해서 수록하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매년 조사하여 발표하는 <주택업무편람>의 통계부문에는 주택보급률, 가구현황, 재고주택현황, 주택건설현황, 임대주택재고현황, 국민주택기금 등이 있으며 특히, ‘주거수준의 국제비교’에는 주택보급률, 자가점유율, 면적 등 협소한 기준만 비교평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한주택공사가 매년 생산하는 지표인 <주택도시통계편람>은 주택보급률, 주택현황, 아파트현황, 주택건설, 주택투자, 주택금융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위의 항목들에서 보듯이 현재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주거관련지표를 통해서는 국민이 실질적으로 어떠한 주거수준을 누리고 있는지 지극히 한정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주거취약집단의 주거 향상은 물론, 전체적인 주거수준 향상을 위한 우선적인 정책 방향의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하다. 주거에 관한 인구학적 분포와 주거의 양적 확대에 따른 변화의 추이는 살펴볼 수 있으나 주거권을 구성하는 요소에 기반한 질적 평가는 현행 지표 수준으로는 어림없다.

곧 철거될 예정이라고 알려진 서울의 미아 6지구

▲ 곧 철거될 예정이라고 알려진 서울의 미아 6지구



가령, 정부가 생산한 통계 어디에도 강제퇴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점유의 안정성을 평가하는 지표는 없다. 이 문제는 2001년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사회권규약 2차 보고서 심의 후 발표한 결론적 의견에서 “강제 철거되는 사람의 숫자와 강제 철거 발생 시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생산하는 주거관련 지표가 얼마나 인권에 기초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최저주거기준을 통해 주거의 물리적 형태(침실, 등 방의 개수와 총주거면적/화장실, 목욕시설을 포함한 필수적인 설비)에 관한 측정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주거권 일반논평에 기초해 보았을 때 “적절한 주거(‘적절한 주거기반시설 및 서비스의 보장’과 ‘적절한 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항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권에 기초한 지표개발은 주거권의 양적·질적인 인권침해를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자 당사국 의무이행의 잣대가 될 것이다. 오랫동안 주거정책의 지표로 활용되었던 주택보급율이 100%를 넘어서고 있지만, 주택보급율 100%가 현실에서 주거권 실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양적 주택보급에 대한 통계만으로는 주택의 평등한 분배나 질적 조건 등과 같은 실제 주거권 실현에는 다가서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에서의 앙상한 주거권 침해 현실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정치적 효과만을 낳고 있을 뿐이다. 다른 문제에 대한 대책 없이 공급에만 집착하는 주거 정책을 넘어 실제 주거권 실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권적 주거권 지표가 필요하다.

(*) 점유 : 점유는 임대(정부/개인), 공동주택, 자가, 임시주택 및 토지 또는 재산 점유의 비공식적 정주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