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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논평] “집회는 교통, 보행자의 흐름과 동일하게 공적 장소의 합법적인 사용이다!”

1. 지난 금요일(5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김한성 판사)은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의 조직팀장이었던 안진걸씨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선고했다. 국민의 건강권을 무시한 정부의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묻지마’ 수입결정에 대해 항의하는 학생들의 집회로 시작된 2008년 촛불집회는 이후 유모차를 끌고 온 어머니들, 퇴근 후 참가한 직장인들, 친구들과 함께 온 학생들 등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하는 거대한 촛불의 흐름이 되었다. 국민들의 평화적인 집회를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검․경은 귀를 아예 닫은 채 촛불집회를 ‘불법·과격 폭력행위’로 규정하고 연행․구속과 과잉․폭력 진압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강압적으로 잠재우려만 했었다. 2008년 부당한 권력과 불통의 상징이 된 ‘명박산성’, 그리고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학생의 머리를 군홧발로 짓밟던 경찰의 모습을 우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2. 당시 검찰이 대책회의에서 실무를 함께 했던 사람들과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에게 씌운 죄명은 대부분 (1)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의 야간집회·시위의 주최와 참가 (2) 형법상 일반교통방해 (3) 미신고집회 주최 행위였다. 모두 위헌성이 강하게 의심되는 법이었고 그 사이 많은 조항이 실제로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2008년 당시 야간집회에 대해 허가제를 규정했던 조항은 헌법불합치 결정이 된 후 지금은 실효되었다. 행진을 수반한 야간시위에 대해 자정 전까지 전면적으로 처벌했던 조항도 위헌으로 선고되었다.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서는 집회로 인해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교통 방해는 처벌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있었다. 안진걸씨는 야간집회 허가제의 위헌성을 제기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당사자이기도 하다.

3. 이번에 법원은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거리에 있기만 하면 무조건 일반교통방해가 성립한다는 검찰의 기소에 대해, 도로의 일부에서 차량의 소통이 가능했다면(도로의 부분적, 병존적 점거) 교통방해의 ‘현저성’ 이 부정되어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하며 일부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경찰병력이 시위대의 행진에 앞서 미리 도로를 차단하여 차량의 통행을 원천봉쇄하고 있었다 하더라도(이른바 ‘차벽’ 통제) 이는 청와대로 행진하려는 시위대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이유로 일반교통방해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심지어 낮부터 ‘명박산성’을 쌓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광화문 거리로 모여들면서 통신불능 사태까지 생긴 바 있던, 2008년 6월 10일의 대규모 국민 집회에 대해서도 일반교통방해죄를 인정했다는 점은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몇 차선 점거인가’라는 점만을 기준으로 이루어진, 매우 기계적인 판결이라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대규모로 참여하면서 어쩔 수 없이 차량이 전면적으로 통제된 상황이나, 경찰의 불법·과잉 대응과 차벽으로 인한 차량의 전면적인 통제 상황이 어떻게 집회 실무진들이나 참가한 국민들의 불법 행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4. 시위는 일반인이 다니는 공원, 도로를 행진하는 것을 그 본질적 요소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위 중 도로에 있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생명·신체에 대한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에 한정되어야 한다. 평화적 집회의 보장에 대한 국제적 가이드라인에서도 “집회는 상업적 활동이나 교통, 보행자의 흐름과 동일하게 공적 장소의 합법적인 사용이다”라고 밝히고 있다(Guideline on Freedom of Peaceful Assembly, second edition, OSCE, ODIHR) 그러나 아직도 한국 법원은 도로에서의 집회 및 시위를 불온시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번 판결도 여실히 그 한계를 드러내었다.

5. 법원은 또한, 2008년 당시에는 야간집회의 허가제로 인해 집회를 신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고 실제로 합법적으로 신고된 옥외 야간집회를 개최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현실을 무시하고, 사전에 집회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신고 옥외집회 주최’라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대책회의가 촛불집회 초반부터 신고를 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모두 불허가가 났었다는 점이 일체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현실에서 집회와 관련한 경찰 행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신중한 숙고 없이 기계적으로 판단해버린 판결문을 읽으며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6. 그나마 법원이 “주최 측이 평화적으로 촛불집회를 진행하려고 노력한 점은 인정한다”고 밝힌 점은 의미가 있다. 정부와 검․경, 보수언론이 대책회의나 대책회의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들을 과격․폭력 단체로 마녀사냥한 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법원도 인정한 것이다. 정부와 검․경이 나서서 일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다닌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당시 촛불집회에 참가한 수백만명의 국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을 과격․폭력으로 왜곡하기에 바빴던 정부와 검․경, 이를 확대재생산 한 수구언론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책임 질 것인가?

7.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2008년 촛불집회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집회와 시위를 불온시하며 기계적으로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법원의 태도로 인해 많은 사건에서 너무나 쉽게 유죄가 선고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일반교통방해나 12시 이후 야간 시위 등의 이유로 주권자로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범법자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법원이라면 이런 부당한 관행에 즉각 제동을 걸고 주권자 국민들의 정당한 의사표현 행위에 무죄를 선고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야간집회 허가제가 실효되는 등 조금씩의 변화가 일부는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너무 느리다. 집회의 자유는 보호해야 할 중대한 기본권이지 불온시하고 처벌해야 할 범죄행위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집회에 대한 원칙적 처벌의 기존 입장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제21조는 ‘장식적 규정’일 뿐인가.

2015년 5월 20일

광우병위험감시및식품안전을위한국민행동(*), 인권단체연석회의(**), 2008년촛불집회실무자모임(***) 다산인권센터,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인권운동공간활, 인권운동사랑방, 원불교인권위원회, 진보네트워크, 천주교인권위원회, 친구사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희망을만드는법

첨부1 : 공동 논평 단체 설명

* 광우병위험감시및식품안전을위한국민행동 : 2008년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지원하고 실무를 담당했던 ‘광우병위험미쇠고기전면수입반대국민대책회의’가 일정한 역할을 다하고 해산한 후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결성한 후속 활동기구. 여전히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광우병과 관련한 위험을 감시하고 대응하는 활동 진행 중.

**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단체(총 42개 인권단체의 연대기구) : 거창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 구속노동자후원회, 국제민주연대, 광주인권운동센터,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다산인권센터,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불교인권위원회,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 사회진보연대, 서울인권영화제, 새사회연대,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안산노동인권센터, HIV/AIDS인권연대나누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울산인권운동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이주인권연대, 인권교육센터‘들’,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쟁없는세상,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주노동인권센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센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DPI,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KANOS

*** 2008년촛불집회실무자모임 : 2008년 촛불집회 실무를 함께 했던 실무진들의 모임으로 10명이 넘는 인원이 촛불집회 실무자로 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함께 받고 있음.

첨부2 : 선고결과 설명

1. 2008년 6월 25일 광우병위험국민대책회의 전 조직팀장이었던 안진걸씨가 경찰에 연행되면서 시작된 2008년 촛불집회 재판에서 지난 5월 15일, 안진걸씨에게 미신고 집회 개최 및 일반교통방해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이 재판은 무려 8년째 계속되었고(만으로 7년) 13번의 재판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1년 6개월 실형을 구형했고,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2. 2008년 대규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집했던 촛불집회와 관련해서 부분적 교통 통제나 교통체증 상황이 발생했다하더라도 부분적으로 교통 통행이 가능하고, 도로에 차량의 흐름과 시민들의 집회 및 행진의 흐름이 병존한 것에 대해서는 일반교통방해가 아니라 무죄라고 선고한 것과(부분적인 도로 상에서의 집회 및 행진 행위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 집회 주최 측이 평화적인 집회 진행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인정한 부분에는 의미가 있지만, 차량이 전면적으로 통제된 상황에 대해서는 기계적으로 유죄를 인정하고, 야간집회가 원칙적, 실제적으로 완전히 금지된 상황에서 집회 신고도 받아주지 않던 정부와 경찰에 맞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집회에 대해 ‘미신고 집회’라고 유죄를 선고한 것은 매우 부당한 판결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특히, 재판부가 야간집회 개최 건과 관련해 신고를 하고 이의신청 등 구제절차를 밟아야 했는데, 그런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것이니 미신고집회가 되어 유죄라고 선고라 한 부분은 큰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MB정부와 경찰이 아예 야간집회는 신고 자체를 안받아주어 모조리 금지하던 실정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모순적인 판결인 것입니다. 결국 집시법 상의 야간집회 금지 조항이 헌법불합치가 되어 야간집회 참가 시민들의 경우 모두 무죄가 선고되거나 공소가 취소되었는데, 이 야간집회의 실무진들에겐 유죄를 선고한 것인데, 그렇다면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연인원 수백만명의 국민들이 야간집회에 참여한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야간집회 자체는 불법이었다는 이 부당함을 누가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와 검․경이 처음에는 수백만 국민들의 집회 참가 자체가 불법이라고 몰아가더니, 문제의 야간집회 금지 조항이 위헌이 되자 이제는 집회에 참가한 것 자체는 불법은 아니지만 미신고로 개최한 불법 집회에 참가한 것으로 사실상 단죄하는 꼴이 돼버린 것입니다. 정부와 사법부가 주권자인 국민들의 정당한 의사표현 권리와 주권자로서 국민들을 끝까지 불온하시고 모독․폄훼하고 있는 것입니다.

4. 2008년 촛불집회 실무진들은 처음엔 실제로 집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계속 금지되자, 문화제·콘서트·종교행사 등 집시법상 신고의무가 없는 합법적 형식으로 법을 존중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까지도 이번 판결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구름떼처럼 모여들면서 벌어진 차량의 전면적 통제 상황이나 경찰의 과잉·폭력 진압과 차벽으로 인한 차량의 전면적 통제 상황에 대해서까지 집회 실무진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 할 것입니다. 집회 장소에 모일 수 있는 인원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교통이 통제된 상황이라면 이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 시민이나 차량 양측의 안전을 고려했을 때도 당연한 조치일 것입니다.

5. 이에 그동안 우리 국민들의 인권 신장과 헌법상의 중대 기본권인 집회·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온 인권단체들(인권단체연석회의)과 2008년 촛불집회의 실무를 실제 진행했던 연대기구, 그리고 당시 촛불집회 실무진 모임은 공동으로 이번 판결에 대한 비판 논평을 발표하게 되어 있습니다.

6. 한편, 이번 재판의 당사자인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어제 5월 20일 변호인들과 함께 항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모여들었던 수없이 많은 집회 참가자들과, 민주국가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한 부당한 권력에 정당하게 항의했던 촛불 시민들과 함께 했던 촛불집회 실무진들의 행위는 지극히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기에 항소심에서는 꼭 무죄가 선고될 것을 믿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