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해
옛날에 소위 "데모"에서 행진이라면, 아주 질서잡힌 걸음걸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화 <1987>에서도 잠깐 보여주는 것처럼, 지하철역이나 큰 사거리 같은 곳에서 삼삼오오 모여있다가 누군가의 "가즈아~~" 신호에 와아아~ 하고 몰려나와서 큰 덩어리를 만들고, 경찰들과 부딪힐 때까지 여기로 저기로 뛰어다니는 시위, 집회. 위에서 보면 그건 마치 커다란 아메바 괴물과 같은 꾸물꾸물함이 아니었을까. 흐흐흐. 아메바 괴물 속에서 뒤엉켜, 이제는 없어진 서울의 고가도로를 뛰어서 넘어가기도 하고, 음습한 곳에 대기 중인 진짜 "백골단"의 포스도 느껴보던 그 시절의 행진.
ㅁ
내 인생의 행진을 꼽자면 매년 여름 가장 뜨거울 때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을 빼놓을 수가 없겠다. 제주 시내에서 출발하여 강정까지, 때론 강정에서 출발해 제주 시내까지 동진과 서진으로 나누어 제주의 반바퀴를 걷는데, 늘 서진 코스가 ‘그나마’ 덜 빡세다는 이야기에 난 언제나 서진을 택했었다. 행진 기간 동안 하루의 마무리는 발가락에 잡힌 물집을 터뜨리는 거였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 차량만 쌩쌩 달리는 길을 걷다보면 ‘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함께 행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평화가 뭘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저마다 품은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아가고 있음을 배운다.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몸으로 겪는 것이 주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기꺼이 그 시간을 내며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러한 사람들의 힘으로 강정해군기지 반대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해군기지가 완공되고 작년부터는 제주생명평화대행진으로 이름을 바꿔 성산 제2공항 반대 등 강정을 넘어 평화의 섬 제주를 위한 요구를 같이 내걸고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다시 찬성-반대로 주민들을 가르고 ‘평화’와 ‘민군상생’의 축제라며 국제관함식을 강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지금,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온몸으로 맞서며 답하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미류
2015년 1월,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19박 20일의 도보행진이 있었고 마지막 3일을 같이 걸었다. 마지막 날, 마지막 고개를 넘자 팽목항 바다가 눈앞으로 밀려들었다. 우리의 행진이 향하는 곳이 수백 명의 죽음을 품은 바다라는 사실이 새삼 뼈저리게 다가왔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그해 4월 유가족들이 안산에서 서울로 또 행진을 해야 할 줄, 그 때는 몰랐다. 삭발을 하고 영정사진을 들고 걸었던 길. 어느 행진이 더 서러웠을까, 지금도 모르겠다.
가원
행진, 친구의 첫 아이 이름이다. 두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의 발걸음이 어찌나 거침없고 힘이 넘치는지 아이의 부모가 그 뒤꽁무니를 쫓느라 어지간히 힘들어 보인다. 가히 그 이름값 한번 톡톡히 한다 싶다. 그래, 응당 행진이란 힘차고 거침없이 내딛는 맛이 있어야지. 암만. 가만 보자. 나는 언제 그렇게 힘주어 행진을 했던가? 아! 지난 8월이다. 안희정 도지사의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 판결에 분노한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면 내디뎠던 그 행진, 못 살겠다 박살 내자!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안희정을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어쓰
‘행~진~’ 하는 후렴구가 귀에 맴도는 들국화의 노래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ㅋㅋㅋ 사실 서 있는 것도, 밖에 오래 있는 것도, 사람 많은 것도 싫어하는 나같은 사람이 행진 역시 싫어하는 건 당연한 수순 같기도 하다. 내 속도대로 걸어가는 산책이 아니라 모두와 발을 맞춰야 하는 행진이기 때문에, 때로는 오랫동안 멈췄다가 또 때로는 빠르게 달려서 앞에 있는 대열을 쫓아가느라 힘들어했던 기억이 많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며 걸어가는 그 모습에 감동받은 기억 역시 많으니, 10월 20일 평등행진에도 살포시 내 한 몸 얹으러 나가봐야겠다.
디요
2008 촛불 행진은 나에겐 늘 불만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왜 맨날 청와대로 향할까. 방향도 뻔하고, 늘 경찰의 차벽에 가로막히고, 그 자리에서 허송세월 보내다, 해 뜨면 인도로 밀려 시청 앞에서 횡단보도 시위하다 집에 가는 이 뻔한 코스가 재미없게 느껴졌다. 그 시간에 방향을 뒤로 돌려 종로를 향하면 훨씬 사람도 많고 분위기도 좋을 텐데... 10년 동안 그때 생각했던 일들이 실현되는 그런 집회들이 생겼다. 차벽에 막히면 힘으로 뚫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가던 길 돌아서 행진하기도 하는? 그런데 왠지 모르게 막상 그런 집회를 가도 이제는 그때 행진이 가장 즐거운 행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주
"내 인생"의 행진이라기보다는 꼭 꼽아야 할 행진인 것 같다. 2016년 가을 부터 매주말의 행진들. 2008년 광우병 때의 광장과, 2004년 여의도에서의 행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무엇이 나에게 다른지 사실 정리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리긴 했는데, 단지 분노를 넘어선 어떤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매주는 아니지만 집회 뒤 행진, 이전까지 가보지 못한 길 위에서의 행진은 참 새로웠다. 차선 하나만 내주고 그것을 벗어나면 경찰들이 안으로 꾸겨 넣던 행진을 생각하면서, 커피숍에서 유리창 밖으로 행진 대열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순간 생각하면서. 이제는 함께 설 수 없는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이 길이 다시 언제 열릴까란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보낸 2016년 가을 겨울의 행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