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물에 있던 화장실에서 위와 같은 ‘친절한 경고’를 발견했다. 여성들의 건강을 배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겠지만, 왜 ‘배려’가 기분을 좋게 하지는 않는 걸까?
‘여기 화장실 사용하시는 분들 나중에 출산하셔야 할 귀한 몸들입니다’라는 말에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모든 여성들은 출산을 전제로 하는 걸까? 마치 출산을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게다가 ‘출산하셔야 할 귀한 몸’이라……. 출산을 하지 않는다면 귀하지 않은 몸이라는 뜻일까?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 여성 혹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성과 아이를 낳을 ‘귀한’ 여성의 이분화는 사실 모든 여성을 옭아맨다. 아이를 낳는 여성이 정상적인 여성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비정상적인’ 여성들은 소외되고 ‘문제 여성’이 된다. 아이를 낳는(낳을) 여성 또한 ‘여성으로서’ 아이를 낳기 보다는 ‘여성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즉 임산부가 임신과 관련한 다양한 신체적 변화와 그에 수반하는 것들을 사회적으로 충분히 존중받는 게 아니라, 단지 ‘아이를 낳을 예비 엄마이기 때문에’ 배려 받을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예비 엄마’를 강조하며 여성은 출산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출산을 하든 안하든 귀한 몸’이라는 재치 넘치는 낙서에 그나마 슬며시 웃음이 흘러나온다. 우리의 몸은 모두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