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권운동, 어디어디 숨었나
복덕방이 열렸다. 이 복덕방에 초대된 사람들은 살만한 집을 구하는 홈리스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들이 모두 ‘집없는’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다. 이들 중에는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아직까지 집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보지 않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도 있었다. 그러나 ‘살만한 집 빙고게임’을 하는 동안 쏟아져나온 이야기들을 보면, 적어도 이들은 ‘살만한 집이 없는 홈리스’들이었다.
집주인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집,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 장애인도 접근하기 편한 건물... 좋은 이웃과 주변 환경의 쾌적함까지 짚어가다 보니 살만한 집은 우리의 삶과 떨어뜨려놓을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주거문제가 오로지 집값논쟁으로만 환원되는 요즘, 살만한 집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 복덕방에서는 각자의 경험을 담은 다양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번져나왔다. 거기가 바로 주거권운동의 자리였다.
전술의 급진성으로는 운동의 진보성을 담보하지 못해
주거권운동의 자리에,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주거권을 가장 많이 외쳐왔던 철거민운동은 어떻게 자리잡고 있을까. 주거권운동워크숍 기획단은 준비과정에서 <활동가 100명에게 듣는 주거권운동 이야기> 앙케이트를 진행했다. 지금까지의 철거민운동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주거권운동에 대한 기대를 물어본 앙케이트였다. 철거민운동에 대한 앙케이트 결과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철거민운동의 현재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들을 짙게 드러냈다. 뭔가 절박하고 치열해보이지만 무엇을 요구하는 투쟁인지 잘 와닿지 않고 함께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 간극을 좁히고 사회운동과 철거민운동의 새로운 관계맺기를 고민하는 징검다리 워크숍도 거쳤지만 잘 풀리지는 않았다. “철거민투쟁이 가지는 전술의 급진성이 운동의 진보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가를 나누는 정도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철거민투쟁이 ‘본질적으로’ 그렇거나 ‘역사적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문제가 많은 개발사업이지만 이나마 개선된 것은 철거민투쟁이 이룩한 성과이며 모든 철거민투쟁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다루는 것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철거민투쟁이 보편적인 주거권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로 제시된 것은 지역운동이었다. 그러나 징검다리 워크숍을 거치며 만났던 철거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지역운동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읽지는 못했다.
지역, 주거권운동, 그 은밀한 유혹
오히려 철거민투쟁의 바깥에서 드러난 기대가 예상보다 강렬했다. 지역에서 주거권운동을 한다는 것, 주거권을 고민하며 지역운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상은 없었지만, 어쩌면 구체적이지 않은 모호함이 더욱 매혹적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기획단은 들뜬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지역에서의 주거권운동 경험을 함께 나누는 정도로 말문은 틔웠지만 진행의 미숙함으로 전체토론 시간이 확보되지 않아 참가자들과 많은 고민을 나누지도 못했다. 여전히 지역운동과 주거권운동의 관계, 지역과 주거권의 관계는 모호한 채로 남아있다. 그러나 주거권은 공간적 특성을 강하게 띠기 때문에 지역을 늘 바라볼 수밖에 없고 지역운동은 주민의 삶과 호흡하려는 운동인 만큼 주거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유 없이 빠져들기만 하는 유혹은 배반당하기 십상이다. 기획단은 워크숍에서의 고민을 이어가기 위해 당분간 내부워크숍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역에서 주거권운동의 의제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지역과 주거권의 관계를 어떻게 보면 좋을지, 주거권운동은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지를 모색할 것이다. 차근차근 고민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유혹이 운동으로 자리잡아갈 수 있지 않을까. 조만간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공개워크숍도 준비될 것이다.
홈리스, 세상을 바꾸는 기획으로서의 주거권운동이 쥔 화두
그런데 지역에 대한 고민만으로 주거권운동의 전망이 충분히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기획단이 준비한 <홈리스? 홈있수?>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은 새로운 풍경을 열어주었다. 성폭력피해여성쉼터에 입소한 20대 여성, 쪽방에 사는 노숙인, 사회복지시설의 뇌병변 장애인,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십대 레즈비언 등 다양한 상황에 놓여있는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이 된 참가자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사실, 기획단은 ‘홈리스’라는 화두를 다소 공격적으로 던진 셈이다. 주거권이 보편적 의제가 되기 위해서는 ‘시설/쉼터’에 사는 사람들과 ‘가족’의 범위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주거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가자들의 입을 빌어 등장한 이들은 심각한 주거권 침해를 경험하지만 한번도 주거권의 관점에서 접근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주거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집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함이 확인된 것이다. 기획단은 단신가구와 비혈연 공동체의 주거권 보장방안을 고민해보자는 정도의 실마리를 남겼다. 워크숍 당일 높은 관심을 보였던 이들과 함께 고민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물론 홈리스의 개념확장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월급 100만원으로 월세를 부담하면서도 돈을 쪼개 청약을 붓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독립하고 싶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35세 비혼여성과 같은 조건카드는 쟁점이 많았다. 인간다운 삶을 위협할 정도의 주거비 부담이 문제이고, 집에서 지내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세입자를 홈리스라고 부를 것이냐,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 않냐는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나 ‘같은 상황이라도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주어진 조건카드와 참가자들의 직접경험이 만나면서 터져나온 울림은 홈리스를 화두로 주거권운동의 담론을 재구성하자는 제안의 설득력을 더했다.
“돈만 있으면 뛰쳐나오고 싶은 공간”, 그 절박함을 담는 운동
‘보편적 의제로서의 주거권, 그 운동의 내용과 형식으로 이런 건 어때?’ 기획단은 그 내용과 형식에 대한 답을 내보이며 참가자들과 의견을 나누기 위한 워크숍을 준비했다. 지역에서의 주거권운동, 여성·소수자의 관점을 담아내는 주거권운동 정도를 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뭘 하자는 건지, 어떻게 하자는 건지 구체적이지 않다. 결국 질문만 다시 남은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주거권운동이 만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그 질문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워크숍의 의의는 충분하다. 건설노조의 활동가, 레즈비언 활동가, 시설장애인 인권문제를 고민하는 활동가, 지역운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들 등 다양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으로서 사회운동포럼은 제 역할을 했다.
워크숍 1부를 통해 주거권운동을 고민하기 시작한 참가자들이 한창 말하고 싶은 것들이 쌓여갈 때 워크숍은 끝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답을 찾아가는 것이 기획단의 몫으로만 남아있지 않게 된 듯하다. 정답일지, 오답일지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들도 필요하다. 새로운 기획도 필요하다. 앙케이트에서는 현재 개발사업의 생태 파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생태적 접근의 필요성이 강렬하게 제기되었지만 워크숍에서는 다루지 못한 채 남겨져 있다.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뛰쳐나오고 싶은 공간에 있는 사람은 홈리스”라는 한 참가자의 이야기는 긴 울림을 준다. 왜 돈이 없으면 안되는지, 우리는 돈이 아닌 무엇으로 공간을 확보할 것인지, 그리고 ‘돈만 있으면 뛰쳐나오고 싶은’ 경우가 왜 여성들에게, 소수자들에게 더욱 많이 생기는 것인지. 워크숍이 충실히 일구어낸 소통을 각자의 삶의 조건에 뿌리내리며 구축되는 연대로 이어갈 실마리는 이것일 것이다.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을 때 주거권은 사회운동의 보편적 의제로서, 주거권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기획으로서 자리잡아갈 것이다.
인권오름 > 사회운동포럼이 낳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