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9월 22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209일이 흘렀다. 그는 뇌의 절반 이상이 손상되어 자력으로 호흡이 불가능하다. 백남기 농민의 심장만이 간신히 뛰고 있는 상태에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지난 9월 12일 ‘백남기 농민 국회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국회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사실’
청문회를 통해서 경찰(충남 9호차를 조작한 경찰: 최아무개, 윤아무개)은 11월 14일 <살수차 운영지침>을 어긴 채 백남기 농민을 향해 직사살수를 했고, 살수차 안에서 조작을 하던 경찰은 이날 처음으로 집회에 투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경찰은 사람을 향해 직사살수를 할 때 가슴 밑을 겨냥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훈련과정에서는 주로 바닥을 향해서 직사살수 했다고 밝혔다. <살수차 운영지침>이 있지만 지침대로 교육받은 사실도 없었다. 그 훈련이란 것도 민중총궐기 하루 전날인 11월 13일에 이루어졌다.
또한 청문회에서는 경찰이 작성한 <살수사 운용결과 보고서(아래 보고서)>가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무게감 있게 제기되었다. 경찰은 보고서에서 ‘경찰이 경고살수와 곡사살수를 했다’고 작성하고 있으나, 충남 9호차에 부착된 CCTV 확인결과 모두 7차례 물대포가 처음부터 직사로 발사되었다.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은 청문감사실을 통해 자체 조사를 하였으나 이 조사 자료를 끝내 청문회에 제출하지는 않았다. 사건 발생한 직후에 작성한 보고서임을 감안할 때 ‘가리고 싶은 진실 혹은 조작된 사실’이 있음직하다.
청문회에서 밝혀진 물대포의 위력은 가공할만하였고 경찰의 조작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백남기 농민이 맞은 물대포는 1600cc 차량 4대가 당기는 힘으로 땅바닥에 넘어뜨리는 살인무기임에도 살수를 위해 바깥 상황 파악을 위한 모니터는 15인치 4분할 화면뿐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어두운 저녁 무렵 이었다. 게다가 경찰은 거리에 따라서 수압 조절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살수차 운영지침>을 염두 하지 않았다. 거리 측정은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눈대중으로 하고, 수압 측정은 발로, 감으로 해왔다. 물대포 CCTV 모니터도 제대로 화면이 보이지 않고 경찰CCTV규격에서 요구하는 것의 절반밖에 안 되는 화소였다.
결국 청문회에서 드러난 경찰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실전배치 경험이 전혀없는 경찰이 무기나 다름없는 물대포를 바깥이 잘 잘 보이지도 않은 상황에서 집회 참가자들에게 마구 쏘아댔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여전히 국가폭력은 없었다는 ‘경찰’
12시간 가까이 이어진 청문회에서 진압 책임자들은 거짓말과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불법폭력 집회로 인해 경찰이 불가피하게 물대포를 사용했음을 강변하면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두둔했다. 이에 질세라 경찰들 중에도 백남기 농민이 겪은 심각한 부상에 관해서 어떠한 책임이라도 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결과가 중요하다고 해서,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변하며 법적인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고 밝혔다. 충남 9호차를 조작한 경찰들도 “좌우로 왕복하면서 최대한 안전하게 살수를 했다”, “지침대로 안전하게 살수 하였다”라는 말만 읊조렸다. 청문회에 나온 경찰들은 어떤 질문을 받아도 마치 앵무새가 말하듯이 똑같은 대사만을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경찰이 쏘아대는 물대포가 직사로 사람을 향해 조준하고, 심지어 따라다니기까지 하는 물대포 영상을 청문회 장소에서 상영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끝내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다.
국가의 책임을 드러내고 만들어가야
집회시위에 참여했던 사람이 경찰 진압으로 목숨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경찰 주장대로 설령 진압이 정당했다 하더라도, 진압에 사용한 물대포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음을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거나 그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공안대책협의회, 갑호비상명령, 집회금지, 차벽과 물대포를 앞세워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적인 진압방식을 고수했다면 그 자체로도 정부에게 커다란 책임이 있다. 300일이 넘도록 백남기 농민에게 가해진 국가폭력의 책임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 역시 정부의 책임이다. 어떤 과정에서 백남기 농민이 위독한 상황에 직면했는지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책임을 드러내고 만들어가는 일과 연결된다. 그래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도 사법적인 판단도 이어질 수 있다.
시민의 생명을 담보로 행사되는 공권력에게 형사적 책임과 재발방지를 만들어갈 책임을 부과하자. 물대포를 조작한 경찰들이 있고, 물대포 사용에 대한 최초 명령자와 명령을 전달한 경찰들이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경창청장, 이철성 현 경찰청장은 경찰 최고 책임자로서 위치를 잡고 있다. 지금처럼 시간을 끌며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검찰을 통해서는 어렵다. 특별검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또한 지금까지 명백한 국가폭력을 외면하고 부정해온 정부의 최고책임자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도 필수적이다.
진실에 대한 권리는 정의를 세우는 일과 단짝 친구이다. 국회 청문회는 아주 작은 시작이다. 백남기 농민에 대한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히는 투쟁은 다시는 똑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정의와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덧붙임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