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인 5월 1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코로나19 긴급행동 집회를 열 예정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해고 위협을 겪고, 무급 휴직을 강요당하고, 노동기본권이 박탈되고, 지원 정책에서 배제되는 문제를 알리며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 착용을 비롯한 참가 수칙을 정하고 여러 곳에 분산해 집회를 진행하려 했지만 경찰은 “공공의 안녕 질서에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집회 금지를 통고했다. 방역 대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지금, 감염병 확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집회 금지는 정말로 당연한 조치일까?
가로막힌 집회시위의 권리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나타난 2월 말,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은 집회 금지 고시를 발표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49조에 따라 집회를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시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집회 금지 고시 직후, 고 문중원 기수의 분향소를 비롯한 농성장이 모두 강제철거 됐다. 당시 시민대책위는 예정했던 집회를 취소하고 보건당국의 지침에 협조하며 분향소를 운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른 아침 수백 명의 공무원과 용역, 경찰의 합동작전 속에 강제철거가 이루어졌다. 철거를 폭력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뒤엉키고 다쳤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후 거리 곳곳에는 집회 금지 현수막이 걸렸고, 광장에는 이를 알리는 방송차가 맴돌았다.
동시에 국회와 경찰은 집회시위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3월 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권력기관 앞 100미터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국무총리공관 앞 집회 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해당 규정은 효력이 상실된 상태였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의 절대적 집회 금지 원칙을 유지하되 예외적 허용 규정을 신설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3월 24일 경찰청은 집회·시위에서의 소음 기준을 강화하는 집시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소음 규제의 범위, 시간, 조건을 더 확대해 적용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려는 시도가 넘쳐나는 만큼 집회시위의 권리가 가로막히고 있다.
공권력이 허락해야 집회할 수 있다?
국회와 경찰은 법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로 권력기관의 기능 보호, 소음으로 인한 피해를 말한다. 시민들의 집회에 단서를 달고 그에 부합하면 집회를 허용해준다는 것인데, 그 단서란 권력기관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온건하게, 소음 기준을 벗어나지 않고 조용하게 하라는 식이다.
집시법 11조 개정을 두고 “원천적 금지에서 예외적 허용으로 나아갔으니 개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이 규정한 예외적 허용 조건에 부합하려면 해당 기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어야 한다. 무엇을 침해로 볼지 모호한 상황에서 집회로 인해 어떤 지장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집회를 신고하는 과정에서 집회의 성격과 내용을 경찰이 미리 검사하겠다는 말과도 같다. 또한 대규모 집회나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어야 한다는 규정 역시 규모를 어떻게 판단할지 기준도 없다는 점에서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클뿐더러, 한국 사회에서 대규모 평화집회를 해온 숱한 경험이 있음에도 집회의 규모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왜곡한다. 이러한 두 가지 우려를 공권력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집회 허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경찰은 집회로 인한 민원이 증가한다는 이유로 소음 규제의 필요성을 말한다. 집회는 다중이 모여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이고, 이러한 집회의 특성상 일정 정도의 소음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집회 소음 규제 논의는 소음으로 인한 피해와 집회시위의 권리를 대립항인 것으로만 다룬다. 이러한 대립 구도 아래에서 집회를 하는 이유, 집회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사라지고 집회로 인한 소음 ‘문제’만 부각되며 이를 어떻게 규제할지가 논의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음량 수치를 통한 일괄 규제는 경찰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자, 동시에 집회를 통해 터져 나오는 이야기를 억압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집회를 통해서만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소음 규제 앞에서 다시 가로막힌다.
공권력은 집회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어떠한 피해를 가정하면서, 이를 방지한다는 핑계로 집회시위의 권리를 제한하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는 결국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기준을 설정해 공권력의 집회 관리를 용이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공권력이 규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집회만이 공권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또 다른 메시지가 된다. 공권력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집회시위의 권리가 좌우된다.
방역과 집회는 대립하지 않는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여러 조치가 시행되고, 피해에 따른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모두가 코로나19를 겪고 있지만 생계의 위기라는 무게는 저마다 다르게 작용하며 아파도 쉴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등, 누군가가 감염병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그렇기에 국가는 대응 과정에서 다양한 형편과 조건을 고려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와 대책에 대한 의견이 소통되고 조직되며 표출되어야 하며, 그러한 구체적인 모습이 바로 집회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감염병 예방을 이유로 집회 금지라는 강제조치가 정당화 됐다. 이러한 국가의 강력 대응은 집회가 곧 방역에 해가 되는 것처럼 인식하게 한다. 하지만 방역과 집회시위의 권리는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방역이라는 제약 조건에서도 어떻게 집회시위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배제된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막힘없이 터져 나올 때, 더 나은 방역 대책도 나올 수 있다. 모여서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모일 수 있을지, 어떻게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취해야 할지를 찾는 일은 공권력의 의무이기도 하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모인 사람들은 긴 밧줄을 따라 표시된 2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행진했다. 이날의 행진은 서로의 안전을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도 그것이 곧 모든 권리의 중단이 아니며, 코로나19로 다시금 드러난 차별의 문제에 맞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물리적 거리두기로 표현을 바꾼 데에서 드러나듯이, 방역을 위해 요구되는 거리두기가 그저 단절과 고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더더욱 사회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감염병 위기 속에서 집회시위의 권리를 북돋는 일이 더욱 중요한 이유이다.
지금 집회시위의 권리가 필요하다
집회는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성원으로서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하는 계기이자 소수자의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기 통로다. 그렇기에 집회시위의 권리는 민주주의의 토대이자 기본권이 된다. 그러나 집회시위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 국가는 언제나 집회시위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지보다 어떻게 통제할지에만 골몰해왔다. 집회 참가자와 일반 시민을 구분하고, 집회로 모인 이들의 목소리를 소음으로 치부하고, 집회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을 강조하며, 마치 집회가 사회의 ‘해악’인 것처럼 위치 지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집회를 손쉽게 통제하는 방향으로 공권력에 의해 광범위한 제한과 금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집시법을 비롯해 각종 법제도를 활용해왔다.
얼마 전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코로나19 위협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집회결사의 자유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어떤 국가, 정부도 이 위기를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고 시작하는 성명은 공중보건의 위기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인권 존중 의무, 시민사회와의 소통, 정보 접근과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국가의 강제적이고 일방적인 조치는 오히려 감염병 상황에 효과적인 대응일 수 없으며, 긴급한 상황일수록 더욱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집회시위의 권리는 금지되거나 제한되는 게 아니라 더더욱 보장되어야 한다. 감염병 대응 과정에서 배제 없는 조치를 취하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권력기관에 의견이 전달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과 수단을 강구하며, 소음으로 인한 갈등을 조율하는 것이 공권력이 해야 할 역할이다. 전면 금지 및 위반 시 처벌이라는 ‘협박’이 아니라 집회시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고민과 실천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