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노조법 2·3조 개정은 되면 좋고 안되면 실망하는 그런 차원이 아닌 운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진짜 사장과 교섭하여 좀 더 나은 근로조건에서 일하는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 아니면 지금처럼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하면서 노예적 삶을 이어나갈지 노조법 2․3조 개정은 그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2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 절박함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의 발언이 귓가에 꽂혔다. 가을부터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을 위해 국회 앞 농성을 하면서 수차례 단식이 이어지고 있었다. 11월 초 빠르게 국민동의청원이 성사됐지만 국회의 법안 논의는 공청회 이후 진전 없이 멈춰있는 상태였다.
지난 여름, 51일간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 투쟁에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불황기에 깎여온 임금을 호황기로 전환했으니 원상회복 하자는 정당한 요구는 묵살됐고, 스스로를 철창에 가두며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외침은 최저시급으로 평생을 일해도 불가능한 손해배상액으로 돌아왔다. 조선하청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오랜 시간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가로막아온 ‘원청의 책임 인정’과 ‘손해배상’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됐다. 지난 9월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함께 모여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를 꾸리고 활동해왔다.
노동3권 보장과 거리가 먼 노조법
“노동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더 많은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의 운영 원리에 따라 임금과 노동시간을 비롯해 고용안정성, 재해위험 등 노동조건이 정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헌법은 노동3권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노동조합으로 함께 뭉치고, 사용자와 노동조건에 대해 교섭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노동3권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이 바로 노조법이다. 하지만 노동3권의 보장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노조법이 기능해왔다.
지난 20년 동안 비정규직, 특수고용 등 불안정 노동이 급증했다. 복잡한 노동형태의 변화 속에서 일하며 이를 통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법이 규정하는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이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노동조건을 좌우하며 실질적 책임이 있는 원청은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책임을 면제받아왔다.
지난달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CJ대한통운에 부당노동행위라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2020년 시작된 재판이다. 코로나19로 택배물량이 급증하며 CJ대한통운을 비롯해 택배기업들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는 그해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소식이 잇달았다. 위태로운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택배노조의 요구에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의 사용자는 대리점주이기에 교섭에 응할 이유가 없다며 외면했다. 이번 판결은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의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명확히 한 것이고, 이미 2010년부터 비슷한 판례가 쌓이고 있지만 또다시 CJ대한통운은 불복하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이미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지난한 소송을 해야 하고, ‘진짜 사장’임에도 원청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노조법 2조 정의 조항을 더욱 폭넓고 현실에 맞게 바꾸자는 것이 개정운동의 요구였다.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살자 외치며 파업투쟁을 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인한 고통에 연대하며 일명 ‘노란봉투법’ 캠페인이 시작됐다. 2003년 두산중공업의 노조탄압과 손해배상·가압류에 항의하며 자결한 배달호 열사 20주기를 맞는 올해까지 손배가압류는 기업에 노동자를 탄압하는 주요 수단이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의 삶이 흔들려왔다. 노조법 3조 손해배상 청구 제한 조항은 노조법이 규율하는 모든 기준을 통과해 ‘불법파업’이 안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아무런 작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헌법에 따라 폭넓게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며, 단순파업으로 인한 손해 배상은 금지하고, 노동조합 이외에 조합원 개인에게는 배상 청구를 하지 않도록 하면서 손해배상이 노조를 탄압하는 수단이 될 수 없도록 노조법 3조를 개정하자는 요구를 해왔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넘어
하지만 이러한 개정운동의 요구를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 채 15일 법안심사소위에 이어 21일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2조 2호 사용자 정의 개정으로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명시했고 3조 손해배상에서 ‘공동불법행위’로 손해배상 전체 책임을 다 지우던 것을 배상의무자별로 책임범위를 정하도록 했다. 한 걸음 진전한 개정안이지만, 20년의 무게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지난한 소송에 나서야 하는 상황, 그리고 손해배상이 노조를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상황도 여전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앞서 ‘대통령 거부권’부터 운운하며 기업만을 대변해온 고용노동부와 국민의힘은 ‘노사관계 파탄’이고 ‘불법파업 조장’이라며 반대하겠다고 한다.
부족하지만 이번 개정안이 꼭 통과되어 한걸음 진전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더 잘 싸울 수 있는 날을 열어야겠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넘어 노동3권이 현실에서 모든 노동자의 권리가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노조법을 바꾸는 것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법의 한계 안에 갇히지 않고 갇힐 수도 없는 노동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세우고 확장하기 위해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힘을 모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