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 법원은 절차적 미비와 수사범위의 모호함을 이유로 윤석열의 구속 취소를 결정했다. 윤석열의 ‘방어권’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한 법원의 결정으로 혼란이 더해졌지만, 윤석열이 내란범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윤석열의 방어권 보장에 대한 논란은 앞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먼저 불을 지폈다. 지난 2월 10일 인권위는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관련 인권침해 방지 대책 권고 및 의견 표명>에서 헌법재판소와 법원, 검찰 등 수사기관에 윤석열과 관련 피고인들의 인권 보호를 주문하였다. 체포와 구속에 있어 모든 피고인의 기본권은 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하고, 공정하고 신속하게 재판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권의 원칙이 윤석열의 방어권을 옹호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인권’의 잣대 아닌 계엄세력 옹호 위한 정치적 결정
윤석열 방어권 보장을 요구하는 인권위는 현재 진행 중인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에서 적법절차 원칙을 말하며 피고인의 권리 옹호 결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는 국가권력 대 개인으로 권력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재판이 만들어온 문제를 제기하며 인권의 원칙으로 확립되어왔다. 법률에 근거한 절차에 따라야 하며, 자원이 없는 누구라도 차별 없이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인권위가 해당 안건을 상정하던 시기에 윤석열은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기 위해 대통령 경호처를 앞세우며 무력 충돌을 일으키고, 극우세력을 선동하며 대통령의 권력을 십분 활용해 방어권 이상의 권한을 남용해왔다. 체포된 이후도 마찬가지다. 윤석열과 그 일당들은 재판 절차 자체의 정당성을 흠집 내고, 법원에 대한 공격을 선동하며, 헌법재판소 흔들기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지금까지도 내란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방어권을 인권의 원칙으로 확인시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욱 정확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윤석열을 ‘사회적 약자’라 칭하며 피고인의 권리를 말하는 인권위의 판단은 방어권을 이야기하는 인권 원칙의 맥락을 철저히 삭제했다. 윤석열의 방어권을 특별히 주문해야 할 인권침해 문제와 내용이 무엇인지는 전혀 짚어내지 못한 채 말이다. 이번 인권위 결정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계엄 선포가 ‘고도의 통치행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계엄을 옹호하는 데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고도의 통치행위조차도 국헌문란에 해당할 때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판례는 누락하며 취지를 왜곡했다. 또한 군대를 동원한 계엄이 ‘탄핵소추로 권력을 남용한 국회’ 때문이었다는 주장에 동조하며, 탄핵 심판 결과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 내란 선동에 동참하는 주장을 인권의 이름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번 결정을 주도하고 동참한 6명(위원장 안창호, 상임위원 이충상·김용원, 비상임위원 한석훈·이한별·강정혜)의 인권위원들은 계엄을 옹호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인권’을 가져다 쓴 것에 불과하다. 나아가 인권위 결정은 극우세력의 정치적 효능감을 뒷받침해주었다. 이번 인권위 결정에 극우세력은 ‘첫 승리’라며 환호했다. 서부지법을 침탈하고, 인권위를 장악하며, 헌법재판소를 휩쓸자는 협박과 난동을 ‘국민 저항권’이라 부르짖는 극우세력의 준동을 ‘권리’로 승인한 것이다. 인권위 결정은 폭력을 선동하고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 신호탄이 되었다. 인권위는 “인권 보호와 향상으로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하는 목적(인권위법 1조)으로 설립되었다. 이런 인권위의 존재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며, 오히려 인권의 원칙을 왜곡하고 무용하게 만드는 데 앞장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충격적인 결정은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이미 인권의 이름으로 인권을 무너뜨리는 시도는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인권을 무너뜨리는 ‘권리’를 옹호해온 인권위
극우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는 수단으로 ‘권리’를 남용하고, 그 권리를 옹호하는 인권위의 호응은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있다. 수요시위를 방해하는 극우세력의 집회가 2021년부터 이어졌다. 이에 수요시위 보호에 대한 긴급구제 요청이 있었다. 2022년 인권위는 경찰의 미온적 대응으로 수요시위의 집회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판단했지만, 2023년에는 극우세력의 방해집회도 집회의 자유로 보장해야 한다는 억지논리를 펴면서 기각했다. 일방적인 기각 결정이 절차적으로 위법했다는 행정심판 결과가 나왔지만, 오히려 2024년 인권위는 기각 결정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운영규칙을 개정했다. 그리고 2025년 1월 아예 극우세력의 집회에 우선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해당 결정을 주도한 김용원 위원은 “빵을 살 때도 줄을 선다”며 먼저 집회신고를 했으니 우선권이 있다고 극우세력을 대변했다. ‘권’자를 붙인다고 정당한 권리가 되는 것이 아님에도 인권위가 스스로 권리가 서로 경합하고 충돌하는 문제처럼 왜곡에 앞장선 결정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토대로 하는 인권의 원칙에서 ‘권리를 파괴할 권리’, ‘차별할 자유’는 옹호될 수 없다. 극우세력에 의해 인권이 도전받는 시기라면 더더욱 맥락을 살피며 방향성을 세워가야 하는 것이 인권위가 해야 할 역할이었다. 그동안 인권위는 인권침해 사건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인권위원 간의 합의를 우선하며, 의견이 다른 경우 진정을 기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원위원회에 회부하여 심의·의결해왔다. 인권위 운영과정에 토론과 숙의가 강조되고, 합의를 지향해온 데는 인권위의 결정이 인권침해 당사자의 피해 구제와 회복을 넘어 인권의 기준을 사회적으로 확인하고 확립해가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극우세력의 권리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인권위는 수요시위의 보호를 ‘특혜’로 치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차별의 문제를 역차별로 맞받아치며 부정하고, 인권의 원칙이 다수결로 좌우될 수 있는 것인 양 곡해하면서 인권을 형해화시키는 데 앞장섰다. 인권의 보루로 국가인권기구의 역할과 기준을 세우지 않고, 폭력과 차별, 혐오를 ‘권리’로 승인하며 지금의 인권위에 이른 것이다.
인권위의 ‘정상화’만이 목표일 수 없는 이유
독립적인 기구로서 인권위는 행정부(대통령), 입법부(국회), 사법부(대법원)에서 11명의 인권위원들(위원장1, 상임위원3, 비상임위원 7)을 나눠 지명하고 대통령이 임명해 구성된다. 윤석열 비호 결정을 주도하고 찬성한 6명의 위원은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지명한 이들이다. 이를 이유로 지금 인권위 문제의 핵심을 문제적 위원들로만 본다면, 시간이 지나 정권이 바뀌고 위원회 구성과 비중이 점차 달라져 인권위가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차별과 혐오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평등과 민주주의를 선언하지 않는 사회에서 인권위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이는 지난 문재인 정부의 경험이 말해준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며 전임 정부들에서 흔들리고 축소되어온 인권위의 위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권리의 현실을 달라지게 만드는 일은 뒷전으로 미뤄둘 뿐이었다. 성소수자 인권은 “나중에”로 미루었고,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는 ‘종교계 등의 이견이 큰 상황’을 이유로 성소수자 항목을 삭제했다. 예멘 난민 논란에서도 ‘국민 대 난민’으로 구도화 하는 차별과 혐오에 편승하며 “국민 보호를 최우선”한다는 메시지로 답했다. 오랜 시간 인권과제로 제기되어온 국가보안법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사형제 폐지에 대해서도 유보했는데, 사회적 논란이 있다는 이유였다. 인권을 수사로만 말할 뿐, 여론을 탓하며 인권을 논란거리로 방치해왔다.
같은 시기 인권위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인권기구로서 인권 실현과 증진의 방향으로 국가를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2019년 체육계 성/폭력 문제가 제기되며 인권위 직권 조사가 있었고 폭력 근절 방안을 대통령과 관련 부처에 권고하기로 결정했으나 정치적 부담을 고려하며 권고를 미루었다. 그 사이 고 최숙현 선수의 죽음이 전해졌고 뒤늦게 권고가 이루어졌다. 또한 문재인 정부와 국회가 모두 외면하는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핵심과제로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밝히면서도 정작 정치권 일정에 논란을 가중하지 않도록 소극적 행보를 보일 뿐이었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는 인권기구가 정권에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만 인권 실현에 나서는 모습으로 인권위는 존재 의미를 잃어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이다. 인권의 방향에 역행하는 정치, 여기에 분명한 선을 긋지 못하고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데 그쳐온 인권위, 그 틈을 파고드는 차별과 혐오가 ‘의견’으로 승인되어온 경험들이 오늘날 극우세력의 토양을 제공해왔다. 인권의 보루 역할을 하지 않고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움직이는 인권기구가 윤석열 정부 이후 극우세력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인권위가 제 자리 찾는 것 넘어 인권의 자리 넓히는 투쟁으로
인권위 결정에 이어 법원의 결정은 여전히 내란이 현재진행형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내란범이 석방되어 혼란을 더욱 부추기는 일이 없도록 조속한 파면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윤석열 파면과 함께 내란세력을 옹호했던 인권위도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계엄을 옹호하고 인권의 원칙을 저버린 인권위원들을 당장 사퇴시켜야 한다. 인권위가 극우세력의 보루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사퇴를 요구하며 이들과 맞서는 목소리가 인권위 안팎에서 더 크게 조직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권위원의 교체와 인권위의 정상화만으로 인권이 도전받는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세력화된 극우정치는 윤석열이 파면된다 해도 인권을 위협하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이어갈 것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지금 광장을 지키며 파면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요구들로부터 인권의 자리를 넓혀가야 한다. 차별금지법으로 평등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모든 노동자가 진짜 사장에 책임을 물으며 노조할 권리가 보장되고, 평화를 외치고, 기후정의를 실현해가는 시간 위에서 인권의 현재가 달라질 수 있다. 인권위가 찾아야 할 자리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더 확장된 권리를 위한 실천 속에서 ‘재건’해가야 할 인권위의 의미도 찾을 수 있다. 지연되어온 우리의 권리를 기입해가는 투쟁 속에서 내란의 종식도, 인권의 원칙을 다시 세우는 일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