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의 출발
희망의 버스 탑승객중 20대로 보이는 한 참가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함께 져야할 짐을 김진숙 님 혼자 짊어지게 하는 것 같아 너무 미안해서 왔어요.” 그렇다. 우리는 미안했다. 혼자 외롭게 싸우는 김진숙 앞에서 우리는 양심을 비췄다. 그러니 큰일은 못해도 우리가 응원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 양심의 미안함이 발품 손품을 팔아 희망버스를 타게 했다. 그저 버스 타고 가서 놀고 온 것인데 사람들은 희망버스가 희망을 부활시켰다고 한다. 우리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문제가 싸우고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자 고통임을 함께 공유했다는 바로 그 점에서 희망이 싹을 틔운 것이라 믿는다.
오랜 시간 투쟁을 치열하게, 때론 외로이 버텨왔던 당사자로서 ‘희망의 버스’는 ‘우리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자신감과 희망을 주었다. 노동조합, 정당조직이 아니어도 우리가 이렇게 모여 함께 외친다면 그 외침이 역사의 호통이 된다는 희망, 우리의 투쟁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심장을 연결해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고 차별받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희망의 힘을 모아 우리는 금속노조 비정규투쟁본부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 희망버스’를 출발시켰다.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외치며 25일간의 파업농성을 벌였던 현대차사내하청노동자들을 비롯해 1000일을 넘게 투쟁한 GM대우차‧동희오토‧기륭전자 비정규노동자들, 77일 옥쇄파업을 벌였던 쌍용차, 기아차, 하이스코, 금호타이어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였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를 비롯해 차별받고 설움 받는 비정규직 인생을 끝장내자며 신발 끈을 질끈 묶었다.
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공장으로
‘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공장으로’가 우리의 기치였다. 우리 조합원만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비록 우리 조합원이 없어도 정규직 0명 공장에 가서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노동조합으로 단결해서 함께 싸워 나가자고 호소하기로 했다. 우리 비정규직 투쟁이 우리 희망버스가, 내 사업장의 문제해결만이 아니라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힘찬 질주임을 천명하기로 했다. 나쁜 일자리를 없애고 좋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자.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자며 지난 7월 18일부터 5박 6일 동안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 희망버스’는 전국을 돌았다.
울산에서 정규직 0명 공장인 현대모비스를 출발하여 현대차 울산공장, STX조선, 광양 포스코,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기아차 광주공장, 금호타이어, 현대차 전주와 아산공장,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기아차 화성공장과 쌍용차 평택공장, 시그네틱스 안산공장, 현대차그룹본사를 돌면서 현장 노동자들을 만났고, 지역의 시민들과 함께 하는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그중 가장 기억나는 두 곳이 있다. 현대중공업 군산공장과 시그네틱스 안산공장이다. 현대중공업 군산공장은 전라북도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여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며 100억 원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생산부서에 정규직은 고작 관리직 48명뿐, 2,700여명이 모두 사내하청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저임금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우리 비정규 희망버스는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전북도지사와 면담이라도 해봐야겠다며 도지사를 찾아 갔지만 도지사를 만나기는커녕 문전박대만 당했다. 도청 건물의 모든 출입문을 봉쇄해 버린 것이다. 국민과 소통하고 비정규직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겠다고 하는 민주당 소속 도지사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참으로 기가 막혔다. 비정규직과 함께 하겠다던 민주당은 어디로 간 것인지……. 우린 발길을 돌려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앞으로 가서 기자회견을 통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것을 촉구하고, 노동조합으로 단결해서 함께 싸워나가자고 호소했다. 정문에서 바라다 보이는 현장 안에는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기자회견 하는 방향으로 고개도 돌려보지 못하고 일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린 노동조합이 있어서 목소리라도 내지만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한 번 더 다짐했다. 내 사업장 비정규문제 해결만이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문제를 함께 해결하자고.
정규직 0명 공장에서 희망을 외치다
그리고 또 한 곳 기억나는 곳 시그네틱스 안산공장이다. 시그네틱스는 개인적으론 오래된 인연이 있는 사업장이다. 2001년 벌어졌던 시그네틱스 투쟁에 연대한 적이 있었다. 당시 서울 염창동에 있던 시그네틱스가 파주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도 현장 노동자들을 정리하려는 목적으로 안산에 가건물형식으로 공장을 만들어 놓고 안산공장으로 가서 일할 것을 강요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 5~10여년 근속을 가지고 있던 여성노동자들은 그럴 수 없다고 파주로 가서 일하겠다며 투쟁을 시작했고 회사 측은 안산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는 조합원들을 모두 해고했다. 긴 시간의 투쟁이 이어졌고 2005년 기륭투쟁이 벌어지면서 함께 연대해 왔다. 그러던 중 2007년 대법원에서 일부 간부들을 제외하고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힘겹게 조합원들은 복직을 했지만, 파주공장으로 가지 못하고 안산공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복직한 조합원들에게 2011년 초 회사 측은 ‘도급회사’로 전적할 것을 요구했고, 가지 않으면 정리해고 하겠다고 협박했다. 영풍그룹 계열사인 시그네틱스는 파주공장에도 생산부서에는 정규직이 거의 없고 모두 사내하도급 파견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실정인데, 안산공장마저 정규직을 모두 정리하고 비정규직으로 일을 시키겠다고 하는 것이다. 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은 비정규직이 될 수 없다고 버텼고 회사 측은 결국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정말 기막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린 시그네틱스로 가서 외쳤다. ‘동지들의 투쟁은 정규직 0명 공장 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공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정규직인 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의 정리해고투쟁과 순회 투쟁하는 비정규 조합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투쟁은 하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생산에서 정규직 0명이라는 것은 자본이 생산 노동을 노예노동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퇴행적 생각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실제 이윤을 내는 노동을 천대하고 그 노동을 문명세계 밖으로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리직 연구직 돈놀이 하는 것만, 다른 말로 하면 기생적 일자리만 존중하겠다는 거다. 자본의 퇴행이 인간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다다른 것이다. 뿌리 없는 꽃을 꿈꾸는 꼴이다. 반면에 우리의 투쟁은 이렇게 물구나무 선 세상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다.
거꾸로 선 세상을 바로 세운다
뜨거운 여름 꼭두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전국을 돌며 빡센 일정을 진행했지만 80여명의 우리 비정규직 동지들은 한 사람도 툴툴거리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날 서로의 소감을 나누는데, 쌍용차 비정규지회 한 조합원이 ‘그냥 서로 품앗이 투쟁을 또 하나 하는구나 생각했는데, 조합원이 없는 정규직 0명 공장도 방문해 항의성 기자회견 등을 하면서 너무나 뿌듯 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사실 나도 그랬다. 내 사업장만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더 열악하게 일하고 있는 우리 동료들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 그곳에 우리의 진정한 투쟁이 있고 훨씬 큰 감동이 있었다. 정규직 0명 공장에 노조도 없는 그 지옥 앞에서 우리가 사람임을, 사람답기 위해 용기와 연대를 외칠 때 이것이야말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임을 생각했다.
모두에게 ‘다시 한 번 힘내서 싸워보자’는 희망을 안겨준 비정규희망버스는 또 다르게 진화를 하며 김진숙 동지와 함께 4차 희망버스로 계속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덧붙임
김소연 님은 금속노조 기륭분회 분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