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알고 지낸, 지금은 고 3이 된 동원이를 지난주에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동원이가 고민이 가득한 찡그린 얼굴로 "쌤, 제가 꼰대가 된 거 같아요"라고 한다. 엥~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싶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동원이가 말하는 꼰대의 기준은 이렇다. "제가 요즘 정말 싫어했던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도 자주 쓰고요, 다른 사람들 얘기는 잘 안 듣고 내 얘기만 하려고 하고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꼰대는 나이랑 상관이 없는 거 같아요. 저 어떡해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나는 십대 때 저런 자기 성찰을 한 인간이었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은 안 나지만 십대 때 나는 별로 그런 종류의 고민을 하는 인간은 아니었지 싶다. 십대였던 나를 돌아보면서 "그때 난 그런 생각도 안 하는 사람이었는데, 뭐 그 정도면 너는 꽤 괜찮은 고민을......"이라고 얘길 시작하려 했지만, 동원이가 바로 한 말 때문에 더 이상 하지 못했다. "그런 식의 위로는 필요 없어요, 그런 고민을 하는 정도면 괜찮다는 말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하려던 말은 쏙 들어갔고 속으로 생각했다. 잉~ 까칠하기는....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꼰대'는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또는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구태의연한 가치에 집착하는 구세대'를 비꼬는 말로도 나온다. 연관 검색어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꼰대'라는 말은 나름 오래된 단어였다. 1964년 1월 동아일보 칼럼에서 등장한다. "중고등 학생들이 그들의 부모를 가리키는 은어로 된 좋지 않은 말이 있는데 그것은 암꼰대와 수꼰대"라고 한다는 내용이 있다. 꼰대라는 말을 주로 하게 되는 사람들이 청소년, 젊은이인데 반해 이 말을 듣게 되는 사람들이 부모, 교사인 것은 겉보기에는 나이의 경계 같지만 동원이의 말처럼 어쩜 나이만은 아닐 수 있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꼰대의 특성이랄까.
마주하는 현상에 대해 더 이상 질문하지 않을 때, 호기심을 갖기보다 판단이 앞설 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을 생각하기에 바빠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을 때, 현실논리를 내세우며 순응을 상대방에게 강요할 때 등. 저마다 자신이 '꼰대'가 되는 순간을 마주하며 깜짝 놀라기도 하고 잔소리 '꼰대'를 만나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웹툰 <송곳>의 대사처럼 "어디 가도 손색없는 꼰대로" 만들어버리는 허술하지 않은, 우습게 볼 수도 없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면서 적어도 '나는 꼰대일까'를 자각하고 질문하는 정도면 아직은 '꼰대' 명함을 내밀기 이르지 싶다.
그날 동원이와의 대화를 통해 위로를 받은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자신의 꼰대성을 질문하는 동원이에게 "니가 보기엔 난 꼰대가 아닌 것 같아?"라고 물었더니 "네 당연히 아니죠. 쌤 같은 어른만 있으면 뭐..."라며 웃어준다. 그 순간 '아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적어도 아직은 이들이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긴 하다는 점에 안심했달까. 이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건 요즘 느끼는 불안과 긴장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이 피곤해지고, 인간으로서 '그 사람'이 궁금해지기보다 빠른 분류기준이 만들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동원이와 얘길 하면서 어느새 그의 질문은 나에겐 온 질문이 되었다. 그가 자신의 꼰대성을 바라보고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듯 요즘 내가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되짚어 보곤 한다. 나를 보게 하는 질문들을 던지는 애정 어린 사람들이 내 주위에 많았으면 좋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어떤 어른들은 동원이에게 대학도 가지 않으면서 따 놓은 자격증도 없고 어떻게 살 거냐는 말을 한다. 하지만 자기 질문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그 질문이 누군가에게 자극이되기도 하는 고민을 하는 동원이는 나에게 참 고마운 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