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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우리의 목소리가 커지고 그 말에 힘이 있길!

-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를 함께 하고

12월 말 태안에 다녀왔다. 고 김용균 님의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는 동료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 님의 소식이 전해지고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인권실태조사단을 꾸렸다. 일하다 죽어도 원청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그 ‘목숨값’은 터무니없이 가벼워 기업은 쉽게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이래 전면개정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국회는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여당 대표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진 발전소에서는 고인의 흔적을 지우기에 바빴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도 안전점검을 강화하겠다는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를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구조적 살인이고 사회적 타살인 고 김용균 님의 죽음에 대해 유가족과 동료 노동자들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싸워야 했다.

 

위험한 일터에서 일하다 죽은 동료들을 숱하게 떠나보내면서 “더 이상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동료 노동자의 참담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한지 3개월 만에 죽음에 내몰린 고 김용균 님의 곁을 지키면서 무겁고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동료 노동자들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고를 수밖에 없기에 막막했다.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 것이 이들에게 고통을 더하는 것이 될까 두려웠다. 고 김용균 님을 이렇게 떠나보내게 된 이 상황은 그저 우연히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가 아니었다. 그동안 일하면서 숱하게 현장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좌절됐던 경험에서 예견된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 이 투쟁에 나서면서 동료 노동자들은 오히려 너무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이자 도리로 그 이야기들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를 하게 되었다. 연말로 들떠있는 시간과 전혀 다른 결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료 노동자들을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4조 2교대로 24시간 빽빽하게 돌아가는 화력발전소 작업과정 전반에 대해 들었다. 석탄 이송을 하는 컨베이어 운전원, 중장비를 다루는 중기 운전원, 모든 상황을 체크하며 기기를 작동해야 하는 제어실 운전원 등 업무는 나누어져있지만 이는 하나의 과정으로 모든 업무는 매우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었다. 어둡고 위험한 환경에서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는 것이 유일한 안전장치였다. 업무 파악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 없이 현장에 투입된 노동자들은 서로에게 물어보고 스스로 찾아 공부하면서 일을 해나갔다. 반드시 그날의 작업량을 채워야 하는 조건에서 문제가 생기면 내 일 네 일 구분 없이 모두 손을 거들었다. 이곳에서 일하게 된 배경부터, 현장에서 일하는 과정이 어떻고, 위험한 상황을 겪었다면 어떤 경험인지, 업무에 필요한 장비부터 설비의 부실함, 문제를 풀기 위해 한 요구와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어떤 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원청인 서부발전은 현장에서 체계를 무시하고 업무의 우선순위를 바꾸며 작업지시를 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노동자들은 TM(트러블 메모)을 올리면서 부실한 설비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서부발전은 이를 묵살하며 하청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떠넘겼다. 문제는 위험의 외주화만이 아니었다. 계획부터 외주화를 전제한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는 1~8호기, 그리고 다른 화력발전소들과 비교할 때 훨씬 열악하고 부실하게 만들어졌다. 외주화가 위험을 더 증폭시킨 것이고, 그 위험에 하청 노동자들이 내몰려왔던 것이다.

 

위험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지키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돈이 들어서 안 된다’는 말에 좌절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설비 개선을 요구하고, 급한 대로 서로의 노하우를 나누며 업무에 필요한 장비를 개조해 사용하면서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왔다. 그렇지만 외주화라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자신들의 개선 요구를 묵살해온 원청 때문에, 가격을 하락하며 그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최저입찰 제도 때문에,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위에서부터 일방적으로 하달된 전기생산량을 어떻게든 달성하게끔 강제한 에너지 정책 때문에 고 김용균 님, 그리고 이전에도 숱하게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다. 가해자가 된 것 같아 자책감이 든다던 동료 노동자의 이야기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이 죽음에 책임 있는 자들이 침묵하고 외면하는 동안 동료 노동자들은 슬퍼하기도 벅찬데 스스로를 책망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헤아려지지 않는 고통 앞에 먹먹해졌다. 그래서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더 커졌다.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가 약속될 때 그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아온 것이 바뀌는 시작이 될 것이고, 그것이 동료 노동자들만이 아닌 나를 포함해 남은 자들의 몫이겠다 싶었다.

 

“우리의 목소리가 커지고 그 말에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어떤 게 바뀌어야 할지 물었을 때 들은 이 이야기는 조사단에서 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고 이를 속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회에 들리게끔 해야 한다는 동력이 됐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실태 보고서를 많은 분들이 함께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듣는 귀가 많아질 때 고 김용균 님, 그리고 동료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해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말들에 힘이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힘 있는 말들이 됐을 때 안전한 사회로 더 나아갈 수 있다.

 

*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 보고서 : https://sarangbang.or.kr/writing/72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