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들은 공권력감시대응팀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경찰폭력대응과 감시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가리지 않고 생존권 투쟁은 벌어졌고, 이를 탄압하는 최일선의 물리력인 경찰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제나 인권단체들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조금은 다른 변화가 감지된다. 정부는 경찰개혁위원회를 꾸려 지난 정권시기 경찰폭력진상조사와 함께 재발방지를 위한 개혁방향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맞물리면서 경찰관련 구조개혁법안들이 발의되고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참여연대, 민주노총,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과 함께 경찰개혁네트워크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경찰개혁의 두 축, 권력분산과 민주적 통제
그 동안 경찰개혁에 대한 요구는 많았으나, 실제 개혁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개혁을 표방한 정부라도 막상 집권을 하고 나면 경찰만큼 정권의 집행력을 담당하는 실질적인 물리력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검찰개혁이라는 정권의 가장 큰 목표에 경찰이 결부되면서 구조개혁 움직임이 구체화되었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과거 독재정권을 떠올리게 하는 경찰에 의한 선거개입이 확인되면서 정치적 중립 요구가 구체화되었다.
경찰개혁네트워크의 경찰개혁은 크게 두 축으로 고민되고 있다. 11만 명이 넘는 거대한 물리력 기구인 경찰의 권력분산과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구조 만들기이다. 경찰의 권력분산은 먼저 정보경찰의 폐지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3,000여 명이 넘는 경찰들이 오로지 정보수집 활동에 투입되고 있다. 아, 물론 범죄수사를 위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아니다. 온갖 시시콜콜한 증권가 찌라시부터 정치인 뒷조사, 시민사회단체 동향, 집회시위 첩보 등을 수집한다. 지난 정권 시절 민간인사찰과 큰 틀에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고위공직자 인사정보 등을 수집해야 한다며 존치 입장이다. 국정원의 국내정보파트를 없애거나 축소하면서 경찰의 정보 집행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권력분산의 두 번째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조직을 나누고, 각 경찰 조직 역시 업무 성격에 따라 행정경찰과 수사경찰로 구분하는 것이다. 경찰, 검찰, 국정원, 군대와 같은 권력기관들의 특징은 일사분란한 명령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상명하복식 조직이라는 점이다. 이 명령체계는 대부분 대통령의 인사권을 중심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래서 가장 거대한 사법행정기관인 경찰은 조직이 쪼개지고 각각의 목적과 역할에 맞는 조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 정권에서 우리는 사법부마저 법원행정처의 인사권에 휘둘리면서 ‘정치화’되는 것을 목도했다.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경찰위원회와 경찰옴부즈맨
검찰과 국정원 권한을 축소하면서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이 경찰로 향하게 됐고, 이를 의식하게 된 정부와 경찰도 권력분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호응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게 자치경찰제이다. 물론 자치경찰제도 이런저런 자리만 더 만들어서 경찰력의 비대화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영 마뜩찮아 하는 분위기다. 경찰이 개혁위원회를 꾸리면서 앞으로는 알아서 잘하겠다고 공표하는 것과 구조개혁을 통해 상설적인 통제기구를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경찰개혁의 성패는 민주적 통제기구를 얼마나 실효성 있게 구성해내느냐에 달려있다.
민주적 통제는 경찰위원회 실질화와 옴부즈맨 설치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경찰위원회 실질화를 중심으로 법안이 발의되고 정부도 이에 발맞추려는 모양새다. 경찰위원회는 현재 대통령-행정안전부-경찰청으로 이어지는 인사예산통제라인을 대통령-경찰위원회-경찰청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과거 정보통신부가 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뀐 것을 떠올리면 쉽다. 위원회 형태를 갖춘 중앙행정기구를 꾸리고 경찰청을 산하 집행기관으로 둔다. 민주적 통제의 경로는 이 위원회 구성에 여야 정당의 추천, 시민사회 추천 인사들이 진입하게 되는 방식이 된다. 적어도 선거개입으로 줄줄이 구속된 조현오,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같은 사례는 막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추진되는 것이다.
반면 경찰옴부즈맨과 같은 외부의 독립적 조사통제기구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경찰 민원 사건에 대한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조사권이 보장되지도 않고 빈약한 인력과 예산으로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용산참사, 쌍용차 파업 폭력진압, 밀양, 백남기 농민 사망, 디지털 성폭력 수사 문제 등을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와 책임자 처벌을 목표로 하는 독립적 기관이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함에도 말이다. 스스로가 사법행정기관인 경찰에 대한 조사와 통제는 결코 경찰이 할 수 없으며, 검찰에 의한 견제도 한계가 분명하다.
검찰개혁, 수사권 조정과 같은 정세로 인해 경찰개혁이 그 어느 때보다 현실화되고 있다. 이 개혁이 위원회, 자치, 분권과 같은 미사여구로 간판만 바꿔다는 게 아니도록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야 할 책임이 오랫동안 경찰과 싸워 온 인권단체들에게 더 무겁게 느껴지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