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아침 원주행 시외버스를 탔다. 6월 10일부터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건강보험공단 원주본부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함께 하려고 나선 길, 로비점거와 함께 열흘간 이어온 파업을, 민간위탁사무협의회 참여를 보장하며 대화에 나서겠다는 공단의 약속으로 중단하게 됐다. 그동안 상담노동자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논의테이블에 함께 할 수 없다던 입장을 고수해온 공단 이사장이 ‘파국을 막아야 한다’며 맞은편에서 단식을 벌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단 스스로가 국민과의 ‘소통통로’라 표현했듯이 고객센터는 건강보험공단이 제 역할을 하는데 필수적인 노동을 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탓할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이라는 공적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관으로서 공단이 져야 하는 책임인 것이다. 하지만 이후 열린 협의회에서 직영화는 불가하다는 입장만 반복하며 시간 끌기에만 여념 없는 공단의 태도에 7월 1일부터 다시 파업 투쟁을 재개했다. ‘대화’하자던 공단은 사옥 주변을 차벽과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경찰과 정규직 직원을 동원해 가로막고 있다. 몸도 맘도 고될 텐데, 투쟁 소식을 나누는 메신저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웃고 있는 얼굴들 사진이 올라온다. 사진을 보다보니 원주 집회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동안 바보처럼 살았구나. 투쟁하면서 알았어요. 우리가 하는 노동의 가치를 지킬 거예요. 더는 바보처럼 살지 않을 겁니다.”
건강보험공단은 2006년 고객센터를 출범하며 상담 업무를 외주화 했다. 12개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1600여 명의 상담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11개 민간위탁업체에 소속되어 있다. 공단은 ‘콜 수’를 실적으로 평가하며 위탁업체를 선정하고, ‘건강보험 상담사’로 계속 일하지만 소속 업체는 입찰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상담 전화 1건당 2분 30초의 제한을 두고 통화가 길어지면 관리자로부터 압박이 들어온다. 실시간으로 평균 통화시간과 상담 건수가 기록되는 통제 속에 하루 평균 120건, 연간 3500건이라는 기록이 쌓인다. 개인/팀/센터별 실적에 따라 공단의 전산시스템에 순위가 매겨지고, 상세한 안내를 할수록 ‘저성과자’가 된다. 공단은 업무의 연계성을 부인하기에, 상담 과정에서 지사로 넘기거나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것은 감점 요소가 된다.
매뉴얼대로만 응대하면 되는 ‘상담 기계’가 아니라, 건강과 생명이라는 가입자의 권리와 연결된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감각, “자부심을 느끼면서 일하고 싶다”는 상담노동자의 바람은 처우 개선이나 좀 더 안정적인 일자리로의 변화를 넘어선다. 잘못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 그래서 고객센터 직영화 요구는 건강보험이라는 공적 서비스를 운영하는 공공기관인 건강보험공단에서 그동안 축소되어온 공공성을 다시 세우고 만들어가는 과정 위에 놓여있다.
그동안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은 누가 어떻게 전환되는지만 주목되고 특혜를 부여하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공정성’ 논란이 반복되었다. 공공기관이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논의의 방향이 전환되어야 한다. 이때 원칙으로 서야 할 것이 바로 공공성이다. 지금 상담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러한 전환점을 만드는 투쟁이다. 상담노동자들이 지키고자 하는 노동의 가치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할 때, 우리의 권리도 확장될 수 있다. 상담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닌 우리 모두의 투쟁으로 함께 하자.
*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TV 유튜브 채널에서 투쟁 소식을 나누는 라이브 방송을 매일 저녁 8시 45분부터 15분간 진행하고 있어요. 온라인으로 함께 만나 연대의 힘을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