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미 대사관 앞 집회나 외국대사관이 들어서 있는 기업빌딩 앞 집회와 행진이 가능하게 됐다.
30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주선회 재판관)는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청사의 경계지점으로부터 1백미터 이내의 장소에서의 옥외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11조 1호 중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재판관 7: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 조항은 이날로 법률로서의 효력을 상실했다.
재판부는 이 조항의 보호법익으로 '외교기관에의 자유로운 출입, 원활한 업무 보장, 외교관의 신체적 안전'을 제시하면서 △외교기관에 대한 집회가 아니라 우연히 금지장소 내에 위치한 다른 항의대상에 대한 집회의 경우 △평화적 피켓시위와 같은 소규모 집회의 경우 △예정된 집회가 업무가 없는 휴일에 행해지는 경우 등 "보호법익에 대한 위험이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집회를 허용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2000년 2월 미 대사관과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백미터 이내라는 이유로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내 집회를 금지당한 전국연합과 같은 해 4월 외국 대사관이 있다는 이유로 삼성본관과 삼성생명빌딩 앞 행진을 금지당한 '삼성그룹 해고자 원직복직 투쟁위원회'(아래 삼성해복투)가 그해 8월과 11월 각각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는 "당연한 결정이 너무 늦게 나왔다"고 잘라 말했다. 헌재가 무려 3년 가량이나 결정을 미루고 있는 사이 이 독소조항으로 인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당하거나 집시법 위반으로 형사처벌까지 당한 피해자들이 대거 양산돼 왔다는 것이다.
또 이번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집회·시위의 자유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권 변호사는 "현행 집시법에는 11조뿐 아니라 5조 등 경찰의 자의적 법 해석을 가능케 하는 여러 가지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어 얼마든지 특정 단체나 특정 주제의 집회를 통제할 수 있다"면서 "이번 결정을 계기로 대폭적인 집시법 개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위장 집회신고를 통해 집회를 원천봉쇄하는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장치가 개정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당장 삼성해복투가 이날 헌재 결정이 나오자마자 삼성본관과 삼성생명 건물 앞 집회신고를 내려고 했을 때, 이미 삼성직원 명의로 '에너지절약 및 환경보호 캠페인'이 같은 장소에서 향후 1년간 신고돼 있어 집회를 또다시 봉쇄당했다.
집회 원천봉쇄 위한 위장신고 판칠 듯
헌법재판소가 이번 결정에서 "집회장소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된다"고 하면서도 1백미터 제한 규정에 대해서는 "필요 최소한의 것으로 허용된다"고 밝힌 점도 향후 넘어야 할 장벽이다.
이와 함께 집회·시위의 자유 수준을 현행보다 더욱 후퇴시키려는 갖가지 법 개악 움직임도 저지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집회금지 장소에 '종묘공원'을 추가하는 집시법 개정안 △집회금지구역을 1백미터에서 3백미터로 확대하는 집시법 개정안 △초·중·고교와 대학 부근의 집회·시위를 금지·제한할 수 있는 집시법 개정안 △집회·시위에서 80데시벨 이상의 소음이 발생할 시 이를 처벌하도록 하는 소음및진동규제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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