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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주노조 위원장, 불법체포 당했지만 석방은 안돼?

인권위 결정…분노한 이주노동자들, 위원장실 점거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과정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적법절차 위반을 지적하면서도 이후 구금은 적법하다는 어이없는 결정을 내놔 이주노동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5일 인권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 5일 인권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아노아르 서울경인이주노동자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 위원장은 지난 5월 14일 0시 50분경 귀가하기 위해 지하철 뚝섬역 출구로 나가던 중 출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아래 서울사무소) 직원들에 의해 강제로 연행됐다. 당시 이주노조는 출입국 직원들이 아노아르 위원장의 사진을 들고 "아노아르다! 잡아!"라고 외쳤고, 이에 놀란 위원장이 지하쳘역 안쪽으로 뛰어가려 했으나 그곳에는 이미 출입국 직원들이 뒤따라 오고 있었으며 지하철역 주변에 법무부 차량 5대가 대기하고 있었다며 '표적연행'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 바 있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제51조는 "(강제출국 대상)에 해당된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도주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는 경우 사무소장·출장소장 또는 외국인보호소장으로부터 보호명령서를 발부받아 그 외국인을 보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긴급을 요하여…보호명령서를 발부받을 여유가 없는 때에는 그 취지를 알리고 출입국관리공무원의 명의로 긴급보호서를 발부하여 그 외국인을 보호할 수 있다"고 예외를 두고 이 경우 "48시간 이내에 보호명령서를 발부받아 그 외국인에게 이를 내보여야 하며, 이를 발부받지 못한 때에는 즉시 보호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서울사무소는 단속 현장에서 긴급보호명령서를 발부했고, 같은날 오전 2시경 직원 명의의 보호명령서를 발부했다. 인권위는 서울사무소가 법령에 근거도 없는 내부위임규정과 구두 지시를 근거로 9급 공무원이 자신 명의의 날인으로 최초 보호명령서를 발부했고 여기에는 발부권한자인 사무소장의 직인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사무소장은 같은달 16일 보호명령서를 발부했지만 이미 48시간을 초과했고 서울사무소에서 청주외국인보호소에 보호를 의뢰하는 보호의뢰서 역시 사무소장의 직인이 누락되었다고 인권위는 밝혔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서울사무소가 헌법 제1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적법절차를 위반하고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소장이 사후 보고를 통해 단속·보호조치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사료되고 △아노아르 위원장이 불법체류자가 명백하며 △긴급보호된지 48시간이 경과됐지만 소장이 적법하게 다시 보호명령서를 발부했으므로 5월 14일자 최초 보호명령서의 하자가 무효사유에 해당된다고 해도 16일자로 재발부된 보호명령서에 그 하자가 승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발부 이후의 보호는 적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결정은 지난달 14일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의결됐고 이주노조는 지난 2일 결정문을 송달 받았다.

인권위원장실을 점거한 이주노동자들

▲ 인권위원장실을 점거한 이주노동자들



불법구금에 면죄부 부여한 인권위 결정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아래 이주연대회의)는 5일 오전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절차의 위법으로 인해 즉시 보호해제하여야 할 공법상의 의무가 발생한 상태임에도, 법정시한을 경과하여 발부한 보호명령서가 이미 개시된 보호의 불법성을 어떻게 합법화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주연대회의는 "사리에 맞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법률규정에도 배치되고 있어서 지나치게 국가기관의 행위를 두둔하기 위한 억지논리"라며 "적법절차 위반의 불법단속 및 구금 관행에 대해 오히려 합법성을 부여하여 면죄부를 씌워주는 결과"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서 민변 노동위원회 부위원장 권영국 변호사는 "불법체포라고 하더라도 추후 보호명령서만 발급받으면 적법해진다는 논리로, 법치주의를 흔드는 매우 심각한 결정"이라며 "전원위원회에서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만장일치로 결정한 인권위원들은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변호사는 "법무부는 불법구금된 아노아르 위원장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직위 남용한 불법체포로 형사처벌 대상"

아노아르 위원장 사건에 대해 법무부는 지난달 22일 해명자료를 내고 "보호명령서는 형사절차상의 영장과 달리…위임이 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라며 위임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보호명령서를 발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황필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는 "긴급보호명령서와 보호명령서의 발급주체를 달리해서 피보호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절차를 둔 것이 법의 취지"라며 "소장의 직인이 없는 최초명령서로 보호조치한 것은 그야말로 직위를 남용한 불법체포로 형사처벌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사·사법경찰관은 판사로부터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등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피의자를 긴급체포할 수 있다. 이때 피의자를 구속하고자 할 경우 체포시점으로부터 48시간 이내에 판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고, 청구하지 않거나 영장을 발부받지 못하면 피의자를 즉시 석방해야 한다.

이른바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긴급보호' 제도도 긴급체포와 유사하게 48시간 이내 사무소장의 보호명령서를 발급받지 못하면 해당 외국인을 보호해제 해야 한다. 황 변호사는 "적법절차를 어긴 체포를 용인하면 불법체포가 만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권위 이전 결정과도 배치

한편 이번 결정은 이주노동자 단속에 대한 다른 결정 사례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인권위는 "(출입국 직원이) 권한 행사시 검사의 지휘나 영장주의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어 인권 침해 논란이 있어 왔"다며 "특히 단속, 연행, 보호, 긴급보호 등 사실상 체포와 구금으로 작용해 신체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조치에 대하여는 형사사법절차에 준하는 수준의 실질적 감독 체계를 마련"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지난 1일에도 인권위는 "외국인을 고용한 사업장이나 외국인의 주거에 영장없이 무단으로 진입하여 외국인에 대한 단속 및 연행을 하고 있는 것은 출입국관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량권을 넘어선 행위"라며 법무부장관에게 재발방지를 권고한 바 있다. 이때 인권위는 출입국 직원이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업장이나 주거에 무단 진입하는 것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영장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황 변호사는 "이번 결정은 인권위가 이전 입장에서 후퇴한 것이거나 이전 결정에서 자신의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결정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농성자들이 위원장실 복도에 선전물을 늘어 놓았다.

▲ 농성자들이 위원장실 복도에 선전물을 늘어 놓았다.



한편 기자회견을 마친 이주노동자들과 이주연대회의 활동가 등 10여명은 인권위 13층 위원장실을 점거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샤킬 이주노조 위원장 권한대행은 "이주노동자도 사람인데 인권위에 와서도 차별 받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인권위는 전원위원회 결정사항이어서 (번복은) 불가능하고 해결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204일째 감옥에 갇혀 있는 아노아르 위원장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기간에 계속 갇혀 있어야 한다"며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아노아르 위원장은 이주노조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에 대한 취소소송과 함께 단속과정에서의 폭행에 대한 국가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