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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헌법에 평화주의의 숨결을

인권단체연석회의 '헌법 기본권' 연속 세미나 ⑧ 평화적 생존권

한국 헌법에서 국민주권, 자유민주주의, 사회국가, 법치국가 등 헌법의 기본원리는 헌법의 이념적 기초가 되면서 전문과 본문에 명시되어 있거나 헌법전 가운데 추상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 기본원리는 △헌법 각 조항과 모든 법령의 해석기준이 되고 △입법권의 범위와 한계 그리고 국가 정책결정의 방향을 제시하며 △헌법개정에 있어서 개정금지대상이 된다. 이경주 교수(인하대 법학)는 지난해 11월 5일 열린 세미나에서 "유독 평화주의의 원리는 입법이나 국가정책 수립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인간의 평화적 생존은 모든 인권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이경주 교수

▲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이경주 교수



평화주의를 도입한 세계 각국의 헌법

제1·2차 세계대전은 모두 집단적 자위권 차원의 군사동맹이 일으켰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1차 세계대전 후 켈로그-브리앙 조약을 통해 "조약체결국은 국제분쟁 해결을 위해 전쟁에 호소하지 말 것이며, 또한 상호관계에서 국가정책의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포기할 것을 각자 인민의 이름으로 엄숙히 선언한다"(제1조)고 약속해 국가간 전쟁 위법화를 국제법의 일반원리로 확립했다. 또 2차 세계대전 후에는 각국 헌법에 다양한 형태로 평화주의와 침략전쟁 부인이 포함됐다.

먼저, 침략전쟁을 포기하고 이를 위해 스스로의 주권을 제한하는 형태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일찌감치 1791년 제1공화국 헌법에서 "프랑스국민은 침략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을 포기하고 인민의 자유에 대한 어떠한 무력도 행사하지 않는다"(제6편)고 선언했다. 급진사회당은 1945년 제헌의회에 제출한 인권선언 초안에서 "생존의 권리(Droit de la vie)는 인권 중의 제1인권"이고 "생존의 권리란 전쟁을 폐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못박았다. 1946년 제4공화국 헌법에서는 "프랑스공화국은…정복 목적의 모든 전쟁을 기도하지 않으며 어떠한 인민적 자유에 대한 무력행사도 하지 않는다. 상호성의 유보 하에 프랑스는 평화의 조직과 방위의 조직을 위한 주권제약에 동의한다"고 선언했다.

이탈리아는 1947년 헌법에서 "이탈리아는 타국민의 자유를 침해하여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전쟁을 부인하고 타국과 상호대등한 조건하에 평화와 정의를 확보하기 위한 질서에 필요한 주권제한에 동의하고 이러한 목적의 국제조직을 추진하고 조장한다"고 선언했다. 독일도 1949년 헌법에서 "국가간의 평화적인 공동생활을 교란할 우려가 있고 또한 그 의도로써 행하여지는 행위 특히 침략전쟁의 수행을 준비하는 행위는 위헌으로 한다"(26조)고 밝히고 "그와 같은 행위는 처벌한다"고 덧붙였다. 또 "연방은 법률에 의하여 그 주권적 권리를 국제기관에 인도할 수 있다"며 "평화롭고 또 영속적인 질서를 유럽 및 세계제국가간에 가져오고 또한 보장할 수 있는 주권작용의 제한에 동의한다"고 선언했다.

헌법에서 침략전쟁을 포기하면서 아예 비무장을 선언한 국가도 있다. 코스타리카 1949년 헌법 제12조는 △상설 군대는 금지한다 △경비 및 공공질서를 위해 필요한 경찰을 둔다 △국민방위군만을 둔다 △이 경우에도 군대는 문민에 복종한다 등을 규정했다. 일본의 현행헌법도 제9조에서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서는 이를 영구히 포기한다"며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은 이를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부인한다"고 못박았다.

특히 핵무장 거부를 헌법에 명시한 국가도 있다. 필리핀 1935년 헌법은 "필리핀은 국가이익에 따라 그 영역 내에서의 핵무기로부터의 자유를 정책으로서 확립하고 추구한다"(2조8항)고 선언했다. 1981년 파라오공화국 헌법은 아예 "전쟁에 사용할 핵무기 화학병기 가스 또는 생물병기 등 유해물질, 원자력시설 및 폐기물…국민투표 상 3/4의 찬성없이는 파라오영역에서의 사용 실험, 저장 혹은 폐기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영세중립국의 경우 스스로 군사동맹 가입을 금지했다. 오스트리아는 1955년 헌법에서 "오스트리아는 모든 수단을 다하여 영세중립을 유지하고 옹호한다…이 목적달성을 위해 어떠한 군사동맹에도 가입하지 않고 자신의 영토내에 어떠한 외국군사기지도 두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스위스는 전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전쟁에 휩쓸리지 않는 외교정책 확립의무 △군사협정·관세동맹·경제동맹 불체결의무 △전시 중 일방국에 대한 적대행위와 군대제공 금지 등을 스스로에게 부과하고 있다. '비동맹군축형'으로 분류될 수 있는 국가도 있다. 유고사회주의연방공화국 1974년 헌법은 "유고는 무력의 행사와 위협을 부인하고 전면적이며 완전한 군축달성에 노력한다"고 선언했다.

침략전쟁 부인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을 규정한 북 헌법도 독특하다. 1998년 헌법은 "국가는 자주성을 옹호하는 세계인민들과 단결하며 온갖 형태의 침략과 내정간섭을 반대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적 계급적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나라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한다"며 "무장력의 사명은 근로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며 외래침략으로부터 사회주의제도와 혁명의 전취물을 보위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과 평화를 지키는데 있다"고 선언했다. 이들 국가들에 비해 미국과 영국은 헌법 자체에 평화조항이 없다.

이 교수는 이런 흐름들에 대해 "평화주의가 국가와 국민간의 관계에도 적용되는 원리로 격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한 국가권력 제약의 원리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헌법은 자위권만을 인정

한국헌법도 1948년 헌법 전문에서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 평화의 유지에 노력하며"라고 국제평화주의를 선언하고, 제6조에 "대한민국은 모든 침략적인 전쟁을 부인한다. 국군은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해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대한 방위, 즉 자위권만을 인정했다.

헌법제정회의록에 따르면 헌법안을 기초한 유진오 전문위원은 1948년 6월 23일 열린 제17차 본회의에서 "전쟁포기에 관한 조약의 기본정신을 우리나라에서도 그것을 시인한다고 하는 것을 여기서 설명해 본 것"이라며 "그러나 전쟁을 포기한다는 것은 국가를 방어하는 그런 권리와 의무를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침략적인 전쟁은 부인하지만 우리 국가를 방위하는 데에 있어서는 강력한 국방군을 건설하지 않으면 안되겠으므로 침략전쟁의 부인에 이어서 규정한 바"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평화주의가 수사적 차원의 산물이 아니라 자각적으로 헌법규범화되었다"며 "오랫동안 전쟁의 참화를 겪었지만, 그것이 식민화된 상태에서의 전쟁경험이었기 때문에 자위권까지 부정하기는 힘들었고 다만 자위의 범위를 국토방위로 한정축소함으로써 자위권의 변질과 남용을 경계했다"고 분석했다. 이 조문은 현행 헌법 제5조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5.16 군사쿠데타 이후 만들어진 1962년 헌법에서는 제4조에서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있을 뿐 국군의 사명을 국토방위에 한정하는 규정은 삭제되어 개별적 자위권으로 한정할 수 있는 규정은 사라졌다. 이 규정은 1980년 헌법에서 다시 포함됐다. 하지만 1972년 헌법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의 제정은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한다"(제32조)는 규정에서 기본권 제한의 요건으로 '국가 안전보장'이 들어섰고 1980년 헌법에서 국군의 사명에 '국가 안전보장'이 추가됐다. 현행 헌법에도 이 조항은 여전하다.

이 교수는 "헌법제정권자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간에 국군을 해외에 파병하거나 군사조약을 맺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로 삼아볼 수 있는 조항이 등장하는 셈"이라면서도 "침략전쟁을 부인한…(조항과의)…정합성을 위해서는 안전보장의 개념을 대단히 한정적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주의를 위한 헌법 개정 과제

세미나에서는 헌법에 평화주의의 숨결을 불어넣기 위한 과제도 제기됐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이 대표적. 이에 비해 북은 1948년 헌법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수도는 서울"(103조)이라고 규정했다가 1972년 헌법에서는 "…수도는 평양이다"(149조)라고 변경했다.

헌법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규정도 문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기본권 보장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등과 함께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하는 경제질서'를 의미한다. 이에 비해 독일의 해석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에 경제질서는 포함하지 않는다. 이 교수는 "(헌법 제4조에 따르면) 경제체제를 달리하는 북한과는 대결 또는 제압의 상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북 1972년 헌법은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전국적 범위에서 외부세력을 몰아내고 민주주의적 기초 위에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고 완전한 민족적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투쟁한다"(제5조)고 규정했다가 1998년 헌법에서는 "북반구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변경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헌법에서 보장하는 것도 과제. 독일기본법 제12조는 "남자에 대해서는 18세부터 연방국경경비대 또는 민간방위단에서 역부에 종사할 의무를 부가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양심상의 이유로 무기를 드는 것을 거부하는 자에 대해서는 대역에 종사할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한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평화주의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헌법 말고도 고쳐야할 점이 많다.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대표적. 조약 제3조는 "각 당사국은…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다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규정했다. 또 전문에서 "당사국 중 어느 1국이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무력공격에 대하여 자신을 방위하고저…집단적 방위를 위한 노력을 공고히 할 것"을 선언해 한미 사이의 집단적 자위권을 선언하고 있다.

최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강조되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과의 충돌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교수는 "뜻하지 않게 미국의 대중국·대중동 전쟁에 휩쓸릴 위험이 있다"며 "대한민국의 국토방위 또는 공동방위를 위해서만 주한미군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신속기동군으로 위상이 강조되고 그 임무와 활동범위가 재조정된다면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의구심과 상호방위조약의 헌법과의 정합성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법제도의 문제도 있다.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단체"라고 규정한 국가보안법 제2조는 북을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단체로 보고 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하에서 군작전수행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토지·물자와 시설 또는 권리의 징발과 그 보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징발법도 있다. 징발법은 전시에 현역장교 등이 징발집행관이 되어 △토지 △건물 △식량 △연료 등을 징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교수는 "현행 헌법의 평화주의는…이제까지는 규범력을 갖지 않는 정치적 선언 정도의 수준으로 이해하여 온 것이 솔직한 헌법현실이었다"며 "한국사회는 평화주의 원리의 복권화 또는 현재화 과정의 출발선상에 있다"고 밝혔다.


'평화적 생존권'을 위해

이 교수는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 뿐만 아니라 빈곤·기아 등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라며 "평화적 생존권은 모든 전쟁과 공포로부터 벗어나서 생존할 권리로 좁은 의미로는 징병거부권과 같이 전쟁과 군대없이 평화적으로 생존할 권리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넓은 의미로는 군사적 목적을 위한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항해 '군사적 목적을 위한 기본권 침해없이 사는 권리'도 포함된다.

이 교수는 세계 각국 헌법을 분석한 결과 평화적 생존권의 내용으로 △국가에 의한 침략전쟁의 부인 △집단적 자위권의 부인 △군비보유의 배제 △무기수출 등 국가에 의한 평화저해 행위의 배제 △징병제 등 국가에 의한 평화적 생존 저해 행위의 배제 △재산수용·표현의 자유 제한 등 군사적 목적의 기본권 제한 금지 △전쟁위험에 처하지 않을 권리 등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평화적 생존권은 국가를 상대로 평화를 요구하는 권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다른 국가를 상대로 전쟁위험에 처하지 않을 권리와 무력공격에 가담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권리를 포함한다"고 밝혔다. 한편 "평화적 생존권의 주체는 개인이 될 수도 있고 민족이 될 수도 있지만 민족자결권과는 다르다"며 "민족자결권이 수단으로 폭력투쟁을 포함하고 있다면 평화적 생존권은 폭력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