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은 ‘너희와의 싸움을 앞두고 너희에게 고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긴 글이 올라왔다. “… 유교시절부터 남자에게 강조되었던 부당한 남성성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자는 항상 강해져야 해’를 겸해서 우리에게 사내인 나에게 등 떠밀고 강요하는 못된 짓거리를 해 온 너희들 ….”
순간 글 쓴 사람의 뒷목을 잡고 거울 앞에 끌어다 세워 ‘너 자신을 똑똑히 들여다 봐, 정말 그래?’라고 묻고 싶었다. 이런 언설이야말로 가부장제의 문제, 남성연대의 조직방식, 그 내부에서 (동일하지 않은) 남성들 간의 차이와 갈등 문제를 여성혐오를 통해 해결하는 가장 비열하고 악질적인 방식이다. 그리고 너무나 익숙해서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모든 문제의 원흉은 ‘여성’인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여성혐오
여성주의 사이트에 와서 자신 역시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며 분노 폭발하는 남자들이 있다. 그렇게 강요된 남성성 때문에 괴롭고 화가 나면, 자신을 억압했다던 군대 선임 앞에 가서, 회사 상사 앞에 가서,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사회를 규탄한다!”는 전단지라도 나눠주지, 왜? (같이 전단지 나눠주러 가자고 제안한다면 기꺼이 연대하겠다만) 남성 연대에서 내쳐지는 것이 두려워 그 내부에서는 입도 벙끗 하지 못하다가 여성 집단에 모든 분노를 쏟아 붓는 남성들을 지켜보는 것, 페미니스트라면 말하기도 입 아프고 지긋지긋한, 너무나 뻔-한 경험담이다.
지난 주 16일 토요일에 광화문 앞에서 진행되었던 ‘잡년행진’(슬럿워크, Slut Walk)을 둘러싼, 논쟁이라고 부를 가치도 없는 남성들의 헛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자신의 토대와 위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얼마나 얄팍한지를 새삼 느꼈다. (매번 똑같은 말이 반복되는데도 매번 새삼스럽게 놀란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참 새삼스럽다!)
여성들이, 잡년(slut)들이 성폭행은 남성에게 내재된 고유한 성적 본능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고방식에 문제제기하며 ‘내 몸은 내꺼, 손대지마!’ 외치면서 행진하는 것만으로 ‘모든 남성을 잠재적인 성폭력 가해자로 전제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뒤따라온다. 그것이 조심스러운 우려이든 쌍욕을 포함한 비난이든, 되돌려 주고 싶은 질문이 있다.
‘만취상태’인 것을 감안해 성폭력 가해자가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은 판결이 나왔을 때,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구나 그 향기에 취하고 싶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세상의 섭리”라고 말하며 성폭력 가해자를 두둔하는 국회의원이 버젓이 나올 때, “예쁜 게 원죄다, 남자가 좋아하는 마음에 키스를 한 것이고 여자는 오히려 키스를 안 해주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경찰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을 때 - 남성들이 ‘왜 우리를 술에 정신도 못 차리는, 성욕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폭행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로 취급하느냐’고 벌떼처럼 달려들어 문제제기 했었나? 그동안 다 열거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수많은 남성들이 ‘당신도 잠재적 가해자임! 아니, 이미 가해자임!’이라고 남성들에게 낙인을 찍어 왔는데, 그런 남성들을 볼 때마다 이 나라가 너무 우려스러워서 잠은 어떻게 자고, 억울함에 가슴에서 열불이 나 어떻게 살았나?
어떤 순간에, 어떤 대상에 대해 ‘침묵’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자신이 남성중심적인 인식체계의 역사쓰기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으면서, 여성들이 ‘너네 문제거든?’ 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좀 낼라치면 여성들에게 폭력적이라며 비난하거나 ‘성찰’을 강요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더욱 재미있는 건, 오히려 ‘잡년행진’은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신’해서 ‘모든 남성은 잠재적 성폭행 범죄자가 아닙니다’를 외쳐준 행사 아니었나? ‘남성의 성욕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그래서 언제든 그 본능에 따라 성폭행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문제제기하면서 ‘나도 거기에 동의하지 않거든! 남성이라고 다 똑같은 남성이 아니거든?!’이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다른 인식공간을 만들어준 잡년(잡놈)들인데, 수고비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자신의 똥을 자기가 닦지도 못하는, 그렇지만 훈수만은 잘 두던 대단히 성찰적인 그 잘난 사람들은 다 어디 있나.
왜 이렇게 ‘훈수’ 두는 사람이 많아?
‘서구에서 슬럿워크가 유행이라고 하니 우리도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변질되어 버린 듯해서 안타깝다’, ‘여자의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의 원인이 아니라면 성폭력의 진짜 원인은 뭐고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지 고민된다’ 묻는 말들은 귀엽기까지 하다. 이것저것 ‘훈수’ 둘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다.
‘남성들이 다 그런 건 아닙니다.’
‘생각 멀쩡하고 착한 남자도 많아요.’
그런데 이 말만은 참을 수가 없다. 누가 ‘착한’ 남자 없다고 했나? 누가 ‘모든’ 남성들이 성폭행범이라고 간주했나. ‘정치적’인 문제를 ‘도덕적’인 문제로 ‘세탁’하면서 여성들의 문제의식에 물타기 하고 있는 건 누구인가. 여성주의가 ‘너랑 나랑 싸우지 말고 친하게 잘 지내보자’는 관계개선 프로그램인가?
한진중공업 사태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파업투쟁을 지지할 때, 계급과 노동의 문제를 자신의 삶의 문제로 고민하면서 ‘정리해고 철회하라’, ‘조남호를 규탄한다’고 외칠 때, ‘모든 자본가가 다 똑같은 건 아닙니다, 착한 자본가도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 봤나? (게다가 ‘사람들이 한진중공업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건 노동자들의 설득력과 근거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거죠’라고 코 풀듯이 손쉽게 분석하는 사람 봤나?) 외국인 노동자가 작업장 내에서 겪는 사장의 멸시와 폭행, 한국인 직원들에 의한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착한 한국인도 있는데요’라고 말하는 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얼마나 탈맥락적이고 탈정치적인가?
계급/노동 문제에, 인종 문제에, 장애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겸손하고 심사숙고하며 자신이 이 사안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자신의 변혁을 꾀할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여성 문제라고 하면 팔짱부터 끼고 ‘이런 게 우려된다’, ‘이렇게 해봐라’ 등 말만 보태는 광경은 너무 익숙하다.
자신은 절박하지도 않으면서 슬슬 건드려서 미친년 널뛰게 하고 온갖 진을 다 빼 놓더니 여전히 팔짱끼고 감상하듯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여성주의가 제일 만만하지?
덧붙임
몽님은 언니네트워크(www.unninetwork.net) 활동가입니다.
* 이 글은 여성주의 커뮤니티 사이트 ‘언니네’(http://www.unninet.net/)의 채널[넷]에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