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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의 인권이야기] 침묵이 말하는 것

최근에 다큐멘터리 두 편을 보았다. 가정폭력으로 남편을 살해한 미국 여성재소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침묵을 말하라>와 5.18 광주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을 다룬 <오월愛(오월애)>.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고통’, ‘기억’, ‘상처’를 자기 인생의 주제로 삼으면서 공부하고 있는 한 친구가 썼던 글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결국 진실은 증거의 문제가 아니라 ‘상처’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야기할 수 없음

<침묵을 말하라>에서 한 여성은 20여 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감옥 안에서 ‘폭력에 맞서는 여성재소자들의 모임’을 꾸리고 800회가 넘는 모임을 진행한다. 그동안 감옥 밖에서의 기나긴 투쟁으로 법이 개정되고, 2008년이 되어서야 가정폭력에 대한 전문가 의견이 고려되어 재심사를 통해 감옥을 나온다. 이런 이야기는 흔히 ‘여성들의 힘겨운 투쟁의 승리’라고 뉴스가 되던데, 정말 이런 결과를 정의라고,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난 후 영화를 보지 않은 한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이거 통쾌한 결말의 영화라며?”라고 물으며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을 의아해했다. 영화를 본 친구는 “이런 내용인 줄 몰랐어.”라며 씁쓸히 대답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말을 잇기 어려워했다. ‘남자는 은접시가 깨끗하지 않다는 이유로 여자를 때리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펜치로 머리를 맞지 않기 위해서 남자를 죽인다’는 것을 인정받기까지 피해자가 지나온 침묵의 시간, 그럼에도 법적 인정(혹은 처벌)으로 설명되지 않는 피해자의 치유, 여전히 인정받지 못한 채 다른 재소자여성들이 살고 있는 '완결되지 않는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대부분의 폭력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물리적 폭력 자체보다, 자신이 그 폭력을 이야기하고 호소할 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어느 누구도 이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가정폭력, 성폭력 생존자들은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믿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부분적으로 이야기하거나, 이중적인 감정 중 하나의 측면을 과도하게 부각시키거나, 의도적으로 침묵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Sin by silence(침묵으로 인한 죄)’다.) 폭력을 당하는 것도 고통이지만,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말하는 것’은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분열증’, ‘히스테리’, ‘피해의식’이라고 이름 붙여진다.

<오월愛>의 영어제목은 ‘No name stars(이름 없는 별들)’인데, 감독은 역사로 거의 기록되지 않았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들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시민을 위해서 죽는 것이 무서웠던 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가 사람이라서 죽는 것이 두려웠다는 시민군, 시민군이었던 아들에게 도청에서 빠져나오라고 매달렸던 어머니, 광주가 포위되고 나서 광주를 빠져나갔던 수많은 (소위 잘사는) 사람들, 취사조로 들어갔던 여고생들, 시장에서 솥단지를 걸어놓고 주먹밥을 만들었던 여성행상들, 총을 맞고 병원에서 지낼 때가 제일 마음 편했다는 남성, 버스에서 구호를 외치던 방직공장 아가씨들, 시민군이었던 남편 때문에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너무 힘들었다는 아내… 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다 5.18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오월愛>에서도 대부분의 등장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5.18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계속 이야기한다. 가해자가 법적·사회적 처벌을 받지 않았을 때, 자신이 경험한 피해의 ‘의미’가 논의되지도 못했을 때, 피해자가 충분히 고통을 이야기하지 못했을 때 혹은 그 고통이 부정되었을 때, 가해자 혹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완결된 과거’를 살지만 피해자는 ‘그 때 멈춰버린 시간’을 산다. 2008년 당시 전두환은 “우리나라도 참 대단히 좋은 나라가 됐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월愛>의 등장인물들은 TV에 전두환의 얼굴만 나와도 분노하며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5.18 당시 ‘내 옆’ 사람을 책 속에서 발견하고 눈물을 흘린다. 이런 것이 이해받지 못할 때, 그래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타자화시켜야만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다.

타인의 시간과 상처

그건, 그건요, 잊혀질 수 없는 기억이에요. ……

…… 심리적인 외상. 그것으로부터 사력을 다해서 도망가고 있는 거지요, 심리적으로. 그러면서 도망은 가지만, 도망을 가면 안전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심리적으로는 이렇게 도망을 가려고 사력을 다하지만 실제로는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그 안에 매몰되어 있고. 그런 과정에서 삶의 끈을 놓는 분들이 그렇게 많이 나타나고. 안을 들여다보니까 일상도 아, 심각하게 파괴되어 있고 훼손이 되어 있지요. ……

2011년 4월 20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중



쌍용자동차 사태를 겪은 노동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상담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씨의 인터뷰 중 위의 내용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경험한 사람들의 무기력증, 모멸감, 고통에 공감하면서, 그 당사자들이 다른 곳에 취업을 해서 다시 일을 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나마 좀 잊힐 수 있을 텐데 그게 안 되니까 더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다시 한 번 가슴이 먹먹해졌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혼자서 극단의 고통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가정폭력 생존자의 침묵, ‘씨얄데기(쓰잘데기) 없다’고 말하는 광주시민,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자살은 자기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과 과거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 사이에 갇힌 사람들이 우리에게 타인의 고통을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하기를 요청하는 간절한 행위다.

“모든 사람한테는 마음이 있거든요. 그 마음을 같이 보고, 돌보고, 그런 섬세함, 그런 민감함, 우리한테 참 필요한 것 같아요.”

정혜신 씨의 말처럼, 그리고 내 친구의 말처럼, 결국 나에게 어디에 서서 타인의 상처를 바라볼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덧붙임

몽님은 언니네트워크(www.unninetwork.net) 활동가입니다.
* 이 글은 여성주의 커뮤니티 사이트 ‘언니네’(http://www.unninet.net/)의 채널[넷]에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