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직후인 1960년 7월 ‘집회에관한법률’로 모습을 드러낸 집시법은 신고 의무 등 단 3개 조항으로 이루어졌고 이를 위반할 경우의 벌칙은 벌금만 규정되었다. 이후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 이후 제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은 옥외집회 금지장소와 시간 제한, 경찰의 해산 명령에 응할 의무 등이 포함되고 처벌규정에 징역형을 규정하는 등 집회·시위의 자유를 훼손하는 틀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87년 민주항쟁 때 집시법은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는 법’이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싸우고 피 흘리며 민주주의를 외칠 때, 사실 법은 민중의 열망을 뒤쫓을 수 없는 종이쪽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덧 민주주의의 봄이 신자유주의의 된서리를 맞으며 골목길에 내 몰리자, 집시법은 화려하게 등장했다.
법전 안에 갇힌 인권…거리의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억눌린 자들을 수탈했던 법은 오히려 민주항쟁의 최대 수혜자가 되어 새로운 질서를 지배하고 계급적 이해관계를 철저히 대변하는 문서로, 건물로, 사람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어느 날 누군가가 집회신고서를 경찰서에 제출했던 그 순간부터 살아있는 법으로 생명을 얻게 된 집시법도 그렇게 부활신고를 마치고 민중의 열망을 법전에 가두기 시작했다. 헌법 21조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권리선언은 하위 규범인 집시법에 의해 철저히 망가져 버렸다. 집시법은 법 자체로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점점 더 악화일로에 처하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복면을 쓰고 집회 장소에 들어설 수 없다”는 정도는 그저 우스개로 여겨질 만큼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방식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법들이 국회에 즐비하게 계류되어있다.
이미 신종 손해배상, 가압류로 불리는 집시법 위반 벌금은 투쟁하는 민중들의 무릎을 꺾고 있다. 2007년 현재 장애운동 활동가들에게 부과된 벌금 총액은 1억 원을 상회하고, 평택 대추리 투쟁으로 인해 평화 활동가들이 떠안은 벌금액도 이에 뒤처지지 않는다.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부산과 광주에서 출발한 버스들은 각 지방경찰청의 조직적인 방해로 자기 도시의 고속도로 요금소를 빠져나올 수조차 없고, 신고된 집회의 행진로 마저 가로막은 경찰들은 전의경들의 방패만을 날카롭게 갈아놓았을 뿐이다.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익명의 젊은 경찰들은 곤봉과 방패에 의지해, 비명 같은 구호를 동시에 외치며 일반 시민도, 여성 참가자도 가리지 않는 날선 폭력을 연습하는 전쟁군인으로 배치되었다. 드러나지 않으면서 실제 범죄를 계획한 수뇌부를 처벌하기 위해 고안된 공모공동정범이론은 집회에 그래도 적용돼, 집회가 있다는 사실만 알고 참가했을 뿐인 사람조차 집회 현장에서 다친 전의경의 가해자로 둔갑시킨다. 악질적인 법 해석과 폭력적인 현실 모두에서 집시법은 집회·시위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무소불위의 도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왜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집시법 폐지안이 아니라 집시법 개정안을 제출하는가?
차라리 집시법 폐지안을 제출하고 새로운 제정안, 예를 들면 집회·시위 자유 보장을 위한 법률안을 제출하거나 집시법 자체를 폐기하고 지방자치단체 조례 등에 집시법 관련 규정들을 넣는 것을 고려했었다. 하지만 즐비한 개악안들에 대처하기에 집시법 폐지안은 무모하다는 의견들이다. 자본가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충실한 법원과 마찬가지로 국회도 철저히 지배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현실에서 집시법 폐지안은 국회에서 명함조차 내밀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유기준 의원안의 경우, 7일을 초과하는 장기집회의 경우 7일마다 집회신고를 갱신하고, 집회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24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더구나 개정안에는 단지 집회신고를 철회하는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최장 6개월의 징역까지 받을 수 있도록 처벌규정을 강화했다. 결국 집회 신청인들로 하여금 집회와 관련해 경찰을 힘들게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도를 매 시간마다 체크하며 관리하라는 의무를 준 것인데, 이것은 집회·시위 자유라는 헌법 기본권에 전혀 기반 하지 않은 법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법안마저 국회에 제출되는 실정이다.
이에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집시법 전면개정안을 제출하면서, 현재 계류 중인 집시법 개악안들과 사회적인 논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인영 의원(민주신당)을 통해 제출된 이 법안은 아래와 같은 주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집시법 개정안은 무엇을 담고 있나?
집회개념규정 신설
현행 집시법은 시위의 개념만을 규정하고 있으나 개정안에서는 집회의 개념을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일정한 때에 일정한 장소에 모여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이것은 최근 기자회견조차 집회로 간주하고 사법처리하는 등, 집회에 대한 개념 규정이 없음으로써 경찰의 자의적 판단 기준을 근거로 한 위법 발생 원인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집회에 대한 개념규정을 두어 그에 해당하지 않는 인간의 자유로운 행동을 더욱 보장할 필요가 있다.
집회신고 접수, 통제 주체의 변경
현행법은 옥외집회 및 시위 신고 제출대상을 관할 경찰서장으로 하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관할지방자치단체장에게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집회·시위의 금지 등을 자기 맘대로 통고할 수 없도록 민주적 압력에 영향 받을 수 있는 여지가 경찰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 또 집회·시위에 대한 공권력의 행사와 관련하여 그 책임을 명확하게 물을 수 있다. 또한 이 조항은 이번 개정안의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집회규정 삭제(현행 집시법 제5조)
현행 집시법 제5조는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집회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집시법 제5조 제1항 제2호는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損壞),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집회나 시위로 규정하고 있는데, 경찰들은 이 규정을 과거에 물리적 충돌이 있었던 집회나 시위의 주최자들에게 적용하여 그 주최자들이 개최하려는 모든 집회나 시위를 제한하고 있다. 이렇듯 이 규정은 경찰들의 자의적인 법집행과 결합하여 집회의 자유를 폭넓게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폭력행위가 실제로 벌어진다면 형법에 의해 처벌하면 충분하다.
야간옥외집회 또는 주요도로 등에서의 집회자유 강화(현행 집시법 제11조 및 제12조 수정)
현행 집시법의 경우 야간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고(제10조), 주요도로에서의 집회의 경우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제12조), 국회의사당 등 주요공공기관 인근에서의 집회는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것(제11조)으로 규정하고 있다. 집시법에서 금지하는 주요도로 이외에는 실제로 집회나 시위를 할 공간이 없다. 또한 공공기관이야 말로 민의가 전달되어야 하는 곳이며, 야간이라도 원칙적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되기에 이러한 상황에서의 집회를 일정한 제한 하에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
중복집회의 원칙적 허용
현행 집시법 제8조 제2항은 동일한 장소에 2개 이상의 집회가 있는 경우 무조건적으로 후에 접수된 집회에 대해 금지 통고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개 이상의 집회가 신고되어 있어도 각 집회의 성격이나 진행방식에 따라 신고된 집회가 모두 허용될 수도 있는 것으로, 구체적인 사정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후에 신고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삼성 본관 앞 집회 신고과정의 문제가 발생하고, 실제로 집회를 통해 실익을 얻어야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집회·시위의 자유가 의도적으로 침해받고 있다. 이럴 경우 개정안은 집회 또는 시위의 시간과 장소가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신고가 있는 경우 관할경찰서장이 각 집회의 주최자를 접촉하여 인원·장소·시간 등 관련하여 조정 가능 여부를 먼저 점검하고 난 후, 그 목적으로 보아 서로 상반되거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어야 비로소 후에 접수된 집회에 대해 금지 통고할 수 있고, 일단 위와 같은 이유로 집회가 금지되었다고 하더라도 이후 허용된 집회가 개최되지 않는 등 사정변경이 발생할 경우 즉시 그 사정을 알려서 집회가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기타 집회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 삭제
소음기준에 따른 집회금지(제12조의3)의 경우 역시 시행령 등에 그 기준을 80db로 설정하여 거의 모든 집회를 금지시킬 수 있기에 이를 삭제하여 집회의 방법상 자유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경찰의 교통소통 의무규정 삽입
집회나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경찰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역할을 규정해야 한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집회나 시위현장에서 도로교통의 원활한 소통을 도와 집회나 시위가 사고 없이 진행되며 집회나 시위에 의하여 초래될 수 있는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미신고 집회 등에 대한 형벌규정 삭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헌법은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음에도 기존 집시법에서는 미신고집회 행위를 형벌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당연히 행정적 제제인 과태료 등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대표발의 의원조차 찾기 힘들었던 집시법 개정안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 준비한 법안은 안타깝게도 이번 국회 회기 내에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안 발의 마지막 순간까지 발의 의원을 찾아낼 수 없었을 정도로 힘겨운 현실에서 실제 국회 행정자치위 통과, 본회의 통과 과정 모두 험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계류 중인 이상열 의원안(집회 및 시위 시 신분확인이 어렵도록 위장하거나 신분확인을 방해하는 기물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함), 안상수 의원안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가 집회 또는 시위에 참가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금품 또는 향응을 제공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누구든지 이를 제공받을 경우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ㆍ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함) 등은 우리가 제출한 법안과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등 국회 안에서 집시법이 규제 법률인 아닌 집회·시위 자유의 보장 법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일방적인 잣대로 사회적 뭇매를 맞고 있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기본권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이번 개정안은 하나의 성과를 얻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대학로 문화발전위원회가 주최한 ‘대학로 문화지구 집회 시위 근절을 위한 범국민 캠페인’의 경우, 실제 집회·시위를 근절하자는 내용의 ‘집회’가 이루어 졌었다. 이들은 2시간 동안 ‘집회추방, 시위근절’이라는 구호를 연신 외쳤다. 한 참가자는 “시위하는 사람들을 죽창으로 찔러 버려야 합니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집회로 인한 소음과 쓰레기, 교통체증 때문에 재산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된다며 모인 이들이 집회를 반대하기 위해 집회를 열었다는 사실은 실제로 집단적 의사표현 수단인 집회의 존재의의를 잘 설명하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누군가 2,3명이 모여 집단적 의사를 표현한다면 그것은 집회일까? 그들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정치적 의사표현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문화제일까? 또는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구호를 외친다면 캠페인일까, 집회일까? 이 모든 것은 집시법의 적용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구도 정확하게 가르고 판단하기 힘든 이 모든 것을 경찰은 자신들의 손아귀에 쥐고서 집회·시위 자유의 생사여탈을 책임지려 하고 있다. 또한 집시법은 집회를 주최하고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검열 장치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집회·시위의 자유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삶의 조건이고 당연한 권리이다. 이것을 막지 못하게 하는 본래의 의무, 집시법은 거기에 복무해야 한다.
덧붙임
◎ 박진 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로 '인권단체연석회의 경찰폭력대응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