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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의 인권나무 키우기] 동성애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

만일 어떤 사람이 단지 성적지향이 주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흠씬 두들겨 맞은 뒤 산 채로 불에 타서 죽는다면? 만일 누군가가 오픈리 게이(커밍아웃한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깡패들에게 치명적으로 구타당한 뒤, 신체에 엽기적인 나치 문양이 새겨진 채 사체로 발견된다면?

불행히도 이러한 일들은 누군가의 괴기스럽고 엽기적인 상상이 아니다. 여전히 성적지향 때문에 잔악무도한 증오범죄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점증하는 증오범죄들은 피해자와 (유)가족,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의 끈질긴 주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단순범죄로 취급되거나 숫제 처벌조차 안 되기도 한다. 차별금지법이 존재하는 나라들에서는 일반 범죄에 비해서 증오범죄의 형량이 더욱 무겁다. 이 점을 악용한 가해자 측은 단순한 기회주의적(우발적) 범죄로 피해자의 성적지향 여부가 추호도 작용하지 않았다고 발뺌한다. 그러나 증오범죄 공격을 받은 대부부의 성적 소수자들은, 가해자가 자신의 성적지향을 여러 경로를 통해 명백하게 알았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그 마을에서는 누구나 피해자가 동성애자임을 알만한 공공연한 소문, 성소수자 전용공간에 출입했거나 동성애자 인권단체에서 활동했던 점 등, 또한 단지 ‘동성애자 같은 복장과 외모(?)’를 한 사람들에게 증오범죄 공격이 더욱 잦기 때문이다.

신나치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된 칠레의 동성애자

얼마 전 칠레에서는 25세의 청년이 네 명의 깡패들에게 폭행을 당해서 숨졌다. 이들은 다니엘 사무디오(Daniel Zamudio)의 몸에 나치 문양을 그린 뒤 도주했다. 2011년 영국에서는 바에서 일하는 스튜어트 워커(Stuart Walker)가 귀가 도중 혹독하게 구타를 당한 뒤 산 채로 불에 타서 죽는 일이 벌어졌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들의 주장과 달리, 피해자들을 죽게 만든 주된 원인은 동성애자 혐오였다.

동성애자들을 겨냥한 증오범죄가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세계에서 가장 바람직한 동성애자 정책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양질의 동성애자 정책이 오로지 백인 중산층들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빈곤한 흑인 성적소수자 여성들은 증오범죄에 야만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가해자들은 ‘동성애가 썩어빠진 백인문화의 구더기’라고 주장하며 레즈비언 활동가들을 납치해서 때려죽인다. 실제로 레즈비언 활동가 녹솔로 노그와자(Noxolo Nogwaza)는 짱돌에 급소를 여러 차례 맞은 뒤 칼에 찔려서 숨졌다. 몇몇 이들은 남자들과의 성경험 부재로 레즈비언이 됐다고 주절대며, 성적 지향을 급진적으로 바꾼다는 핑계로 납치해서 집단성폭력을 가장 잔인한 형태로 저지르기도 한다.

동성애자로 살기엔 너무 어려운 나라들

동성애자들이 생과 사를 가파르게 오가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역은 이슬람 국가들과 카리브 연안, 아프리카, 동유럽에 집중돼 있다. 예컨대, 이라크에서는 심지어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거나 말투나 행동이 ‘여성스럽다(?)’고 판단되는 남성들을 극심하게 때리거나, 심지어 살해하기까지 한다고 휴먼라이츠와치(Human Rights Watch: 인권감시)가 고발한 바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심각성과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수사된 후 응당 단죄되지 않은 채, 대부분 불체포 특권(impunity)의 만연 속에서 폭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구에서는 동성애자가 소위 ‘명예살해’를 당하는 일이 늘고 있다. 안전하게 정주할 곳이 사라진 아랍계 동성애자들을 이스라엘 군부가 회유해서 정보원으로 삼곤 한다. 군은 이용가치가 사라지는 순간 더 이상 동성애자들을 보호해주지 않기에, 이들은 결국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의해 끔찍한 보복을 당하며 비참한 생을 마감한다.

2005년 전 세계를 경악시킨 이란의 미성년자 동성애 사형집행은, 동성애가 몇몇 나라들에서는 살인보다 더욱 강경하게 처벌된다는 점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당시 이란 당국은 피해자가 남아를 성추행해서 사형을 시켰다고 주장했지만, 인권단체들은 체포 당시 청소년에 불과했던 사람들을 오로지 동성애를 이유로 살해했다며 강력하게 성토했다. 이란 당국은 이들을 처음에는 동성애 혐의로 기소했다가, 국제적 여론이 부정적으로 들끓으면서 도벽이나 어린이 성추행 등으로 둘러댔다. 사건 이후 스웨덴에서는 정치적 난민 규정에, 성적지향으로 인해 사형이나 장기구금 같은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도 전향적으로 포함시켰다.

동성애혐오로 뭉친 사람들

[사진: (왼쪽)이탈리아의 의원 마르코 카파토는 경찰이 어디에 있느냐, 왜 시위자들을 보호해주지 않는지 물었다 / (오른쪽)독일의 의원 폴커 벡이 호모포비아 공격을 당한 후 피를 흘리고 있다]

▲ [사진: (왼쪽)이탈리아의 의원 마르코 카파토는 경찰이 어디에 있느냐, 왜 시위자들을 보호해주지 않는지 물었다 / (오른쪽)독일의 의원 폴커 벡이 호모포비아 공격을 당한 후 피를 흘리고 있다]


2007년 모스크바에서는 “사탄의 짓”이라며 당시 모스크바 시장이었던 유리 루시코프가 성소수자 프라이드 행진 자체를 불법화했다. 시장뿐만 아니라 러시아정교회 사제, 백인우월주의와 외국인차별을 외치는 극우단체, 일반 시민들까지 합세해서 증오범죄에 스스럼없이 가세했다. 러시아 동성애자들과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유럽 각국에서 찾아온 활동가들은 계획대로 평화적인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러시아 경찰이 철저히 방조하면서 백주대낮에 숱한 동성애자들이 직접적인 증오범죄 공격에 방치되었다. 영국의 동성애운동가 피터 태첼(Peter Tatchell), 가수이자 동성애 인권운동가인 리처드 페어브라스(Richard Fairbrass), 이탈리아의 의원 마르코 카파토(Marco Cappato), 독일의 의원 폴커 벡(Volker Beck) 등은 호모포비아 시위대들에게 얼굴 등을 우악스럽게 가격당한 후, 모스크바 경찰들에 의해 되레 불법집회 개최 및 소란을 피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구금을 당하였다. 몇몇 동유럽 국가들에서 개최되는 성적소수자 프라이드 행진에, 극우단체와 러시아정교 신자들이 달려들어서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제 일상사가 되었다.

동성애를 ‘선전한다’고 비난받는 가수

최근 한국에서는 레이디 가가(Lady Gaga)가 동성애를 미화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입국과 공연을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도들의 캠페인이 논란이 되고 있다. 레이디 가가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는, 단지 그의 기발한 복장과 노래뿐만이 아니다. 그는 누구 못지않게 사회문제에 대해서 정문일침을 가하며, 특히 수난 받는 약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지로 일관해왔다. 반대자들은 레이디 가가가 국내에서 공연을 하면, 커나가는 아이들이 그릇된 것을 추종할 수 있기에 결단코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공연을 전후해서 협찬사 불매운동 등의 직접행동을 벌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처럼 일부 기독교 단체들을 중심으로, 청소년 교육을 빙자해서 동성애를 주된 탄압대상으로 삼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몇몇 극단적인 기독교 단체에서 청소년 모방이나 정상가족 해체, 에이즈와 성병 급증, 동성애자에 의한 성폭행 같은, 확인이 안 된 문제들을 과장해서 나열하며 동성애자들을 공격하는 일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증오 퍼뜨리기가 무한정 확대될 때, 한국에서도 온갖 사회병폐의 애꿎은 책임을 동성애자에게 투사한 후 증오범죄를 자행하는 일들이 증가할 수 있다.

“동성애자를 죽게 해준 신, 감사합니다.”

몇 년 전 미국에서는 이라크전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의 장례식을 전후해서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하였다. 한 극단적인 기독교 교회에서 오바마 정권이 오픈리 동성애자들의 군복무를 허용하는 것을 빌미 삼아서, 미국군대를 동성애자 집단으로 매도한 것이다. 이들은 어린이 신자들까지 동원하여 장례식이 열리는 근처에서 “호모들을 죽게 해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피켓시위를 벌여서 커다란 논란을 빚었다. 당시 죽은 군인은 동성애자도 아니었다. 이들은 단지 동성애 군인의 복무를 허용한 군대에서 복무한 점만으로, 고인을 동성애자로 간주해서 황당무계하고 불경스러운 짓을 자행한 것이었다.

[사진 : (왼쪽)게이활동가를 괴롭히고 구타하는 호모포비아 /(오른쪽)동성애자 군인을 죽게 해준 하나님 감사합니다 피켓팅)

▲ [사진 : (왼쪽)게이활동가를 괴롭히고 구타하는 호모포비아 /(오른쪽)동성애자 군인을 죽게 해준 하나님 감사합니다 피켓팅)


최근 영국에서는 한 기독교 단체가 가정통신문을 통해서 아이들이 동성애혐오적인 시각을 갖도록 부추기는 소책자를 배포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증오와 편견을 키우는 책자를 어린 아이들에게 나누어준 것에 분노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지켜본 동성애자 단체에서는, “동성애 청소년들의 자살과 우울증이 우려할 만큼 높은 형국에서, 소책자 배포는 관련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레이디 가가 공연을 막으면 동성애자가 줄까?

필자가 아는 한 동성애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모님은 금슬이 너무 좋아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다. 한 달에 한 두 차례 오순도순 손을 맞잡고 전국을 유랑하곤 했다. 또한, 나는 이른바 모태신앙이어서 어릴 때부터 하루라도 기도를 빠뜨리거나 성경을 읽지 않은 날이 없었다. 교회 설교에서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주창에서부터 반동성애처럼 성인지적이지 않은 주장을 20년 넘게 들었다. 이처럼 보수적인 내가 고등학생 때 동성애자인 것을 알고 몹시 우울해서 숱하게 죽고 싶었다. 그러다가 대학 입학 후 동성애자 모임에서 좋은 벗들을 여럿 사귀게 되면서 몰라보게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제대 이후 식구들에게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후 형에게 두 시간 동안 공터에서 두들겨 맞았다. 이때 부모님은 알면서도 말리지 않고 방관했다. 이후 식구들과 절연하고 혼자 힘으로 산다. 나는 어릴 적 어떠한 동성애자를 만나본 적도 없고, 동성애 매체를 접촉해본 적도 없고, 동성애를 두둔하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이런 내가 왜 동성애자가 되었는가? 목사가 읊는 대로 내 안에 사악함과 정욕이 들끓어서 그런가?”라고 반문하며,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줄기차게 호모포비아적인 행동을 일삼는 것을 비판하였다.

강도보다 더욱 혹독하게 처벌되는 동성애자들

1990년대 말 헝가리에서는 한 동성애 커플이 슈퍼마켓에서 정담을 나누며 쇼핑을 했다. 이들은 간헐적으로 가벼운 스킨십을 하기도 했고, 여느 연인들이 그렇듯 정답게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누군가의 신고로 ‘품행에 중대한 문제가 있어서, 아이들이 보면 곤란한 문란한 행위를 일삼았다’는 이유로 급기야 보안요원들에 의해 쫓겨나고 만다. 여러 명의 직원들이 달려들어서 이들을 완력으로 끌어내는 동안, 어느 절도범이 매장에서 물건들을 대량으로 훔쳐서 도망간 일이 있었다. 얼마 후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가 이 사건을 패러디하여 몇몇 나라들에서는 단지 동성애자로 존재하는 점만으로, 강도 같은 중범죄자들보다 더욱 끔찍한 범죄자로 박해받는다는 점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한국, 동성애자로 살기에 무난한가?

한국은 동성애자들이 살기에 흔히 중간수준이라고 평가된다. 동성애자 인권이 상대적으로 존중받는 국가들에 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몇 국가들처럼 동성애자를 범법자화하거나 살해하는 것은 아니기에, 소극적인 차원에서 보면 동성애자로 살기에 그나마 무난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동성애자들은 상시적인 억압 속에서 불이익을 간신히 피하며 살아간다고 토로한다. 필자의 주변에는 동성애자로서 물리적 폭력이 동반된 봉변을 직접 당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에 필적할 만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동성애를 마구잡이로 비하하는 교수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다가 이후 수업조차 들어갈 수 없었던 레즈비언, 수업시간에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며 토론에 참여했다가 이후 마주친 타과생들이 노골적으로 멸시어린 눈빛으로 연거푸 쳐다봐서 공포를 느꼈던 어느 게이, 오픈리 레즈비언으로 활동하던 한 학생의 겉옷에 누군가 휘갈겼던 언어성폭력, 다니던 직장에서 동성애자인 것이 알려져서 고초를 겪다가 몇 달 후 스스로 퇴사한 게이 등이 기억난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투쟁에 가깝다고 얘기한다. 철저히 사생활을 비밀로 밀봉하는 한에서만 보호를 받는다고 말한다. 만일, 그것 이상의 것을 요구할 경우, 인생 전체를 망칠만한 상황이 불 보듯 훤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여전히 닻을 올리지 못한 상황에서, 성적소수자들을 제도적인 차원에서 보호해주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해 있다.

게이의 죽음을 발판 삼아 도입된 칠레의 차별금지법

칠레는 이번 사건을 빌미로 차별금지법을 비로소 가동시켰다. 인종, 종교, 성적지향, 젠더, 외모, 장애 유무로 차별을 가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 것이다. 동성애 인권운동가들은 한국 역시 조속히 차별금지법의 보호대상에 성적소수자를 포함시킴으로써, 성적소수자들에게 행해지는 온갖 차별과 폭력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호모포비아적인 발언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사회에서는, 동성애자들이 만만한 희생양처럼 수난을 받는 일이 흔하다. 성소수자 프라이드 행진에 난입해서 동성애자들에게 야유를 퍼붓고 돌과 달걀을 던지는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 대의명분을 갖는 일종의 확신범들에 가깝다. 일례로 게이활동가를 모스크바에서 거칠게 때린 한 남성은 언론 인터뷰에 응할 때 실명까지 밝히며, “사탄들”을 심판하는 데 어떠한 가책도 지니고 있지 않음을 드러냈다.

한편, 국가가 옴부즈맨 제도나 차별금지법의 실질적인 적용, 경찰이나 법원의 공평무사하고 성인지적인 접근, 성적소수자의 권리를 인권의 핵심으로 믿는 미디어의 보도 태도가 뒤따를 때, 호모포비아 집단들의 폭력은 제대로 성사되기 힘들다. 한국의 차별금지법도 애초의 취지를 적절하게 살리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서 미움과 불이익의 대상이 되기 쉬운 동성애자들을 반드시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서, 한국의 사법체계가 동성애자들이 소수자로서 겪는 불이익과 차별, 폭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엄격한 신호이기에, 그 파급은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덧붙임

나이테 님은 인권운동사랑방을 후원하는 자유기고가입니다.